[더불어 생각하며] 맹인가수 이용복과 뇌성마비 소녀 > 지난 칼럼


[더불어 생각하며] 맹인가수 이용복과 뇌성마비 소녀

본문

맹인가수 이용복씨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아마 10년도 넘었을 것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TV. 화면에 나와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특유한 모습과 맑고 톤이 높은 음성은 어딘가 애처로운 구석까지 있었다. 해변의 여인, 아낙, 눈감으면...., 물장구 치고 진달래 먹고...., 등 노래들은 도톰한 얼굴이며 익살을 떠는 모습과 어우러져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좋아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의 노래 뒤에는 맹인으로서의 길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온 듯한 인생 여정과 영혼의 울림 같은 감성이 녹아 흐르고 있었기에 더욱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어느 날인가 슬며시 TV. 화면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더니, 그래서 노래조차도 가물가물하게 있고 있었는데 근 10여년이 흐른 지난 장애자 올림픽기간 중에 모습을 나타냈다.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의 도톰한 얼굴을 드러내며 그간의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털어 낸 것이다.

그랬었구나.
재수 없으니 장님을 TV.에 출현시키지 말라는 항의 때문에 결국 무대를 빼앗기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는 이용복씨, 물고기가 물을 잃으면 어떻게 되나하는 물음은 굳이 던질 필요가 없다. 지금 이 마당에도 맹인에게 길을 터놓은 직업이란게 침술·점술·안마·지압, 그리고 극히 부분적으로 특수학교 교사, 피아노 조율사, 전화교환원이 고작인데 맹인이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웁고 격려를 해 주어야 될 일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격려는커녕 단지 맹인이라는 이유로 노래하는 무대, 그 생존권을 무참히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무대를 잃고 노래를 잃은 이용복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가 조상 대대로 태어나고 살아온 조국 대한민국을 버리고 멀리 선진 타향으로 떠날 때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했을까.
비정한 폭력!
그런데 그 비정한 폭력 운운하기 전에 아, 자신은 이 시대의 폭력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거나 방조한 공범자는 아니었는지.

작년 8월, 동경의 은좌 거리에 위치한 기독교백화점을 오르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만난 안내원은 뇌성마비 소녀였다. 손과 발이 제대로 말을 안 듣고 제복을 입은 몸매의 균형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소녀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님들이 원하는 번호를 정확히 누르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거리라고 이처럼 땅과 하늘같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엘리베이터 안내원은 누가 보아도 쉽게 수긍할 정도로 지극히 단순노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섭섭하게도 서울 시내 어느 백화점이나 빌딩 내에서 장애인 안내원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두 다리 쪽 빠지고 몸매가 날씬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멀겋게 서서 버튼만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외형의 모습이나 획일적인 능력에 우선해서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있을 찾아주고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일본 사회의 단면은 이용복씨의 "물장구 치고 진달래 먹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그 아련한 노래와 더불어 다시금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작성자문기룡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