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보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 대학생 기자단


[징소리]보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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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늘 기다리곤 한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한 통의 글 또는 전화 그리고 그들이 보다 아름답고 강건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의 근황을 알려오기를.
 이는 내가 이웃들을 진정 사랑하며 그들의 삶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서라기보다는 이 사회와 뭇 이웃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아름답기는커녕 놀라웁고 때로는 슬프며 괴롭기 그지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약한 이웃들이 수년동안 거의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는 이 사회의 높고 두터운 편견의 벽에 대한 소식, 좀 더 따스한 사회복지제도와 배려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말고 격앙된 심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일부 장애우들을 무관심과 멸시의 눈으로 흘려보며 이들의 곁을 지나쳐가는 이웃들의 냉랭한 눈길에 대한 소식, "이 나라에서 장애인 올림픽마저 치루었는데도 말입니다. 일반인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을 편견이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더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털어놓는 장애인 복지기관 담당자의 솔직한 고백… 이뿐이던가? 우리는 얼마전 여권의 정치인이 경쟁 정당 지도자의 신체적인 약점을 공격하던 비열한 발언에 의해서 여지없이 드러났던 장애우에 대한 불신과 편견의 실체를 목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심신이 멀쩡한 대학 졸업자도 취직하기가 어려운 세상에 어디 몸이 성찮은 사람들의 취업 걱정하게 되었습니까?" 장애인인들의 취업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이렇게 반응하는 이웃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이는 단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슬픈 소식들을 자주 들어야 하기에 나는 더 건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곤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웃들을 위한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바람직한 복지제도와 정책이 운용되고 있다는 소식이나 갖가지 어려운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자신이 꿈꾸었던 삶을 일구어내는 장한 이웃들의 성공담과 승리담들을.
 
바로 얼마전 그러니까 성탄절이 가까워오는 어느 날 나는 한통의 성탄카드겸 서신을 받아들게 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있는 장애이웃들의 집인 "소망의 집"에서 살고 있는 여자 자매 ㅇ씨가 보내온 성탄카드였다. 나는 반가움과 함께 기이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30대 초반에 들어선 처녀인 ㅇ양의 서신을 겸하고 있을 카드의 봉함을 열었다.
 내가 그녀의 서신을 읽기 전 반가움과 미묘한 부담감을 느꼈던 이유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서신은 그녀가 내게 쓴 최초의 글이었기에 무척 흐뭇했음은 물론 과연 그녀가 이 글을 통해서 그녀의 삶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적어내려갔는지 몹시 궁금했기에 일말의 불안감까지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얼마 전까지 그녀 자신의 손으로 글을 쓸 수 있기는커녕 자신의 손으로 식사마저도 할 수 없는 장애상태에 놓여 있었으나 의료진의 진료와 치료를 통해서 급기야는 내게 편지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편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 집사님! 
 산다는 것(삶)에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집사님! 살아있다는 것은 더욱 더 아름다운 일이고 또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장애를 가졌던 내육신이 조금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 작은 사랑으로 집사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 작은 기도와 격려의 얘기 등 아주 미미한 일을 해주었을 뿐인 나에 대한 사랑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다짐으로 이어진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진정 기뻤다.
 어느 덧 나의 뇌리 속으로 스쳐지나가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사연과 주고받았던 전화내용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고 그녀가 나를 처음 본 것은 1991년 12월 어느 날 기독교 방송국 주최로 열렸던 공개 신앙간증회 초청 강사로서 내가 대전에 내려갔을 때였다.
 천명이 훨씬 넘는 청중을 앞에 두고 강단위에 올라섰을 때 가장 먼저 내 시선에 들어온 이는 20여명에 이르는 특별한 청중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성장에 대단한 장애를 지닌 장애이웃들이었고 그중의 한 이웃이 바로 ㅇ씨였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얼마동안의 기간이 지난 다음 그녀는 내가 다만 작가요 소망교회 집사라는 사실만으로 소망교회 사람들을 통해서 내 연락처를 찾아냈고 내게 연락을 취해 온 것이었다.
 
그와 같은 전화를 종종 받는 지라 특별한 느낌도 갖지 않은 채 때때로 시간이 나면 나에게 편지를 달라고 얘기했던 나를 그녀는 그 즉시 부끄럽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녀는 지체의 장애로 인해서 글은 물론 홀로 식사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내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위해 그러니까 나의 글쓰는 일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위해 기도하겠노라는 것이었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사람을 찾아 나서는 그녀의 적극적인 삶과 사랑의 자세였으며 사람은 어떤 처지에 놓여있어도 그의 이웃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내게 다시금 일깨워 준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사랑과 격려를 주는 자로서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인간 사랑에 그리고 믿음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녀의 그 같은 삶에 격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홀로 서는 삶"을 위해서 정든 가족과 집의 품을 떠나 "소망의 집"으로 떠났다는 독립심 강한 그녀의 성숙한 마음가짐은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노라고 또는 많은 혼수를 가져오지 않았노라고 또는 복지 혜택을 더 많이 주지 않는다고 이웃을 삿대질하며 부모와 아내까지 구타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온전치 못한 이 시대의 사악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의 준엄한 경고요 시위가 아닐까?
 내게는 ㅇ의 성탄카드가 진정 기쁜 성탄의 선물인 것이다. 새해에도 나는 앙망해 본다. ㅇ씨와 같은 수많은 익명의 이웃들의 삶이 ㅇ씨의 것처럼 더욱 아름다워지고 강건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글/안혜성  

작성자안혜성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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