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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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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불빛으로 채색된 도시의 거리를 뒤로하고 어둡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나의 이곳 생활은 시작되었다.

지금의 발걸음이 정녕 나의 길을 가는 올바른 걸음인가! 밝은 불빛이 시야에서 차츰차츰 멀
어지고 어두움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순간마다 나이 마음은 두려워지기 시작
했다. 지금까지 만남이란 분명한 이별보다 즐거운 것이고 설레임과 희망을 준다는 생각과는
달리 두려움을 먼저 느낀 이유는 최소한 만남에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법인데 정신지체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이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있으
며 앞으로 나의 생활에 중심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자고 일어나면 방 이곳저곳에 똥이 널려져 있고 이불은 소변으로 축축하고 한밤중엔 아이
들의 괴성소리,
말만 들어봤던 간질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아야 했다.
싸우거나 다쳐서 피가 나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아픈 곳을 긁어대는 아이.
이곳을 아이가 뛰쳐나가면 아이를 찾으러 거리를 헤매이면서 온갖 불길한 생각에 휩싸이던
일.
옆방 보모 선생님께서 다 큰 아이 목욕시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연질색 했던 일.
정신지체아라는 사실을 가끔 망각해서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 하다가 시
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지체아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던 일들 나로서는 한번도 상상해보
지도 않았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이곳 생활.

옆에서 지켜보시는 선생님들께서는 그래도 환경에 빨리 적응한다고 말씀하시고 용기도 많이
주셨지만 어린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함께 뒹굴며 호흡하기엔 얼마나 많은 갈등과 시간이 필
요했던가.
2, 3일 이곳에서 생활하시다가 힘들어 낮에 그만 두기엔 아이들에게 죄스러워 아이들이 잠
든 저녁 잠깐 나갔다 오신다고 하시고는 다음날 아침에도 돌아오시지 않던 바로 전 사람과
같은 절차를 밟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의 무관심과 나 자신과의 싸움도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이 일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기 마련이듯 결코 어려운 일만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내
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없었으리라.

휴가를 갔다오면 반가이 맞아주는 어린 친구들.
대소변 가리지 못했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인가 조금씩 가리기 시작하던 일
아파서 누워 있을 때 마음 써주는 친구들.
용돈을 모아 선생님 생일이라면서 선물을 해줘서 나의 눈시울을 붉게 했던 일.
이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행동하는 순진한 이 아이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맛
볼 수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작성자황길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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