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권리도 중요하다 > 지난 칼럼


소수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권리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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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우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이상한 판결
동아일보 11월 30일자에 ‘오아시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이 칼럼은 얼마 전 법원에서 판결 내린 한 여성장애우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고, 내용이 길지만, 칼럼을 인용해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9월 어느 날 밤. N(50)은 7, 8년 전에 알던 M(35·여)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M은 1급 정신장애우, “저녁은 먹었니? 밥 사줄 테니 가자.”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여관으로 갔다. N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M과 두 차례 성행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M은 가족들에게 추궁을 당했다. M은 ‘어젯밤 일’을 모두 자백했다. 가족들은 신고했고 N은 체포됐다. 조사가 시작됐다.

M이 진술할 때는 보호자들이 늘 옆에 있었다. M이 지능이 낮고 판단력이 떨어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성폭력’ 관련 단체들도 거들었다. M은 “무서워서 N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N을 구속 기소했다. 혐의는 ‘심신미약자 간음’. 심신미약 상태인 M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재판이 시작됐다. N은 혐의를 부인했다. 합의하에 성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올 2월.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N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장은 대전고법의 한기택 부장판사. 한 부장판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M은 N을 따라 순순히 여관으로 갔다. 오전 1시 1차 성행위가 끝난 뒤 N이 잠깐 여관을 비웠는데도 M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전 2시에 다시 성행위를 했다. M은 지능은 떨어졌지만 기본적인 판단능력은 있었다.

한 부장판사는 M을 판사실로 불렀다. 한 부장판사는 M을 달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했다. M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N은 좀 착한 사람 같았어요.” 한 부장판사와 M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그것 할 때…스트레스가 풀렸어요…. 상쾌하고 기분도 좋았고요….”

M이 두려워한 것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었다. M은 ‘그 짓’을 하면서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그런 짓 하면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다시 정신병원에 넣을까 무서웠다고도 했다. 7월 말. M의 이야기를 한 부장판사는 더 들을 수 없었다. 휴가 여행에서 심장마비로 숨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배석판사들이 들었다.

11월 18일. N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내려졌다. 무죄였다. 이 사건에서 정작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M을 둘러싼 ‘비장애우’들인지 모른다. M이 ‘강간당했다’고 진술해 주기를 바랐던 사람들, M에게도 ‘상쾌하고 기분 좋을’ 본능과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 M의 인생을 자신의 체면과 명분으로 바라본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위선’ 또는 ‘오만’이라는 난치의 장애가 있는 진짜 장애우 인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알고 지내던 한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여관에 들었고, 둘은 성관계를 맺었다. 날이 밝아 집으로 돌아간 여자는 가족들에게 “간밤에 어디 있었냐,”는 추궁을 당했다. 여자는 남자와 같이 있었고, 성관계를 맺었다고 실토했다. 여자 가족들은 즉시 남자를 경찰에 고발했는데, 성관계를 이유로 남자를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정신장애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목은 남자가 장애를 가진 여성을 성폭행 했다는 것이었고, 얼마 후 남자는 심신미약자 간음 혐의로 체포돼 구속됐다.

뭐, 새로운 이야기도, 그렇다고 충격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자꾸 이 기사에 눈길이 머물고, 일종의 혼란감마저 느끼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는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고전적인 시각으로서의 접근이다. 비장애우 남성이 장애를 가진 여성을 성폭행 한 사건이 벌어졌다. 남자는 죄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어쨌든 여성은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우다.

남자가 사탕발림으로 아니면 몇 푼의 돈으로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여자를 여관에 가자고 꼬드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행위를 거부하는 여성을 윽박질러서 자기의 욕심을 채웠을 수도 있다. 이건 전형적인 여성 장애우 성폭행 사건의 시나리오다. 그래서 남자는 유죄고 나쁜 놈이다.

또 하나의 시각은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시나리오인데, 장애를 가진 여성이 한 남자를 좋아했다. 장애 여성은 판단력보다 우선하는 감정에 이끌려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때도 남자는 유죄고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흔하게 벌어지는 여성장애우 성폭행 사건을 접할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대부분 전자의 시나리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판단이 현실에서 전적으로 옳기만 한 것일까? 말인즉슨 판단력이 떨어지는 여성장애우는 무조건 피해자라는 생각이 지나쳐서, 여성장애우는 성 문제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하고, 성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터부시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냐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쩌면 사람들은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수의 인권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유독 판단력이 떨어지는 여성장애우의 성 문제는 일방적인 시각, 즉 애정문제가 아닌 파렴치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나아가 여성장애우는 어떤 감정을 갖고 있던 말던 철저하게 무시하고, 가족과 장애우 단체들이 나서 상대 남성만 가해자로 몰아 지탄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수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권리도 중요한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장애우에게 너는 성에 관해서는 눈을 뜨지 말아야 하고, 너랑 이상한 짓을 하는 놈들은 전부 나쁜 놈들이야 라고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이 과연 여성장애우를 보호하는 최선의 길일까?

확실하게 이 문제는 이렇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심정이 답답하다. 어쨌든 앞에서 인용한 판결은 인간의 권리 측면에서 볼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산에도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뉴질랜드 정부의 신선한 발상
연합뉴스 11월 26일자에  ‘뉴질랜드, 산에도 휠체어 승강기 설치하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왜 이 외신이 눈길을 끄는 걸까, 

우선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뉴질랜드 마오리 부족단체가 운영하는 나이 타우 관광회사가 남섬 웨스트랜드 국립공원 숲 속에 산책로를 겸한 도보 관광코스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부가 장애우도 다닐 수 있도록 가파른 곳에는 휠체어 승강기를 설치할 것을 요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인데, 이 회사는 약 2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전체 길이 300m가 넘는 고리 모양의 도보 관광 코스 건설을 추진하면서 높이가 14m 정도 되는 급경사 지역에는 계단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뉴질랜드 건설 당국이 계단을 설치하는 구간에는 휠체어 승강기도 설치해 장애우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산에 장애우들이 오를 수 있도록 승강기를 설치하려면 10만 뉴질랜드 달러 이상이 추가로 소요돼 계획을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그뿐 아니라 “성한 사람들도 이틀 동안 걸어서만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조그만 숙박시설을 하나 갖고 있는데 행정당국은 그 곳의 화장실에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요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장애우 편의증진 관련법이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외신에 보도된 대로 법이 강력한 힘을 갖고 시행되고 있다면 뉴질랜드는 장애우들이 살만한 나라라는 평가를 해줄 수 있겠다.

무엇보다 산에도 장애우가 혼자 다닐 수 있도록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뉴질랜드 정부의 발상이 무척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우들은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산인데,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산이 왠지 가깝게 다가온다.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는데, 휠체어가 산을 오르고, 산에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언제나 우리는 이런 발상이 현실로 가능해질 것인가,         

경제력 있는 장애우에게 혜택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 제기돼
국민일보 11월 15일자는 ‘돈타령 하면서도 씀씀이 헤픈 복지정책’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정부의 복지예산 씀씀이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며, 이런 지적이 제기된 데는 장애우,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세금 지원이 소득 유무를 가리지 않은 채 오히려 경제력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거나 효과가 의문시되는 사업에 돈을 쏟아붓는 등 문제점을 낳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사는 조세연구원이 낸 ‘저소득·취약계층 지원 현황’을 인용하고 있는데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여성 아동 장애우 등 이른바 4대 취약계층에 대해 비과세·감면을 통한 세금 지원은 2003년 기준으로 총 7851억원에 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노인 지원이 3553억원으로 전체의 45.3%를 차지했으며 이어 장애우 지원이 2946억원으로 37.5%였다고 한다.

이어 4대 취약계층에 대한 비과세·감면 제도는 총 21개이고, 이 가운데 장애우 대상이 장애우용 차량 등록·취득세 면제,장애우용 승용차 특소세 면제,장애우의 생계형 저축 비과세,장애우용 보장구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 등 13개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데, 장애우 차량 구입에 대한 세금 감면액은 1676억원에 달해 전체 장애우 조세 감면액의 57%를 차지했다는 게 조세연구원 발표다.

조세연구원 보고서는 “장애우의 차량 구입에 대한 지원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장애우에게 혜택이 집중됐음을 의미한다”며 “반면 경제 능력을 크게 잃은 중증 장애우에 대한 지원은 취약하다”고 지적하면서 “갈수록 복지지출 비중이 커져 재정이 압박받고 있는 상황인데 조금이라도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움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지원이 갈 수 있도록 정책의 변별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체 장애우 조세 감면액의 57%를 차지하는 게 장애우 차량 구입 세금 감면액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조세연구원 지적대로 현재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장애우가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대신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저소득 장애우에게는 한 달에 고작 6만원의 수당만 주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장애우들 사이에서도 조만간 양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장애우보다는 저소득 장애우들이 우선 정부의 지원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태가 드러난 만큼 정부는 이제라도 서둘러 장애우 지원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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