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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한 젊은 의사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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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의(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가정의학과 임상훈련의 마지막 해인 3년차 때 부천 한 종합병원의 정형외과에 몇 개월간 파견 나가 일 할 때이다.

  여느 전공의들과 마찬가지로 대학병원을 벗어나 중소병원에 파견 나가 일하게 되면 대학병원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임상 증례들을 경험할 수 있기에 나는 파견 근무를 매우 좋아했다. 다행히 당시 정형외과 과장님은 전공의의 이러한 심정을 잘 헤아려 주셔서 가능한 한 내가 직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응급실에 찾아오는 정형외과 환자를 전공의 3년차인 내가 일차적으로 진료하게 된 것도 그러한 배려 덕분이었다.

  정형외과는 근육, 뼈, 관절 등의 질병을 진료하는 전문과목이므로 응급실에서 만나는 정형외과 환자들이 대부분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다친 사람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들은 병원 근처에 있는 플라스틱 성형 공장, 전자제품 공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응급실에 하루에 10명씩 찾아오는 환자들을 며칠동안 치료하고 난 뒤 나는 산업재해 피해자가 매일 몇 건씩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대개 플라스틱 성형 사출기나 프레스기에 손가락이나 손등을 찍히거나 잘리는 사고였다. 급하게 동여맨 수건에 흠뻑 젖은 선홍색 피를 병원 현관에 뚝뚝 떨어뜨리며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나타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고통과 공포에 질려 창백한 모습으로 울부짖는 모습을 매일 몇 번씩 보아야 하는 것은 마치 고문과도 같았다.

  그 많은 환자들 중에 아직도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키가 자그마하고 얼굴이 복스럽고 귀엽게 동그란 16살 먹은 여자 아이, 플라스틱 장난감 제조 공장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어 야간 상업학교에 다녔다는 그 아이도 여느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피가 흥건하게 젖은 손수건에 손을 감싸고 울면서 응급실을 들어왔었다. 오른손의 수건을 조심스레 벗겨보니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남기고 검지, 중지, 약지가 손바닥 가운데 부분과 함께 사정없이 으깨어진 상태였다. 아아, 이 아이도 그 망할 놈의 플라스틱 사출긴가 뭔가 하는 놈에게 손을 물린 것이다! 하필이면 오른 손을!

  손상 정도가 워낙 심하여 손상 부위는 재생이 불가능한 것이 확실했지만 차마 그 아이에게 오른 손의 손가락 셋을 한꺼번에 절단해야 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병실에서 매일 아침 붕대를 새로 감는 치료를 할 때마다 이 소녀에게 제발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날이 갈수록 손상 부위는 점점 까맣게 죽어 들어갈 뿐이었다. 일주일 쯤 지나 죽은 부위의 범위가 분명하게 되어 아무래도 절단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소녀는 죽은 손가락이나마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지 자꾸만 절단 수술을 거절하였다.

  입원한 지 거의 이 주일이 지나 빨리 절단을 하지 않으면 세균이 번식하여 성한 부위조차 상하게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어서야 소녀는 절단 수술을 승낙하였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그 소녀를 수술실로 데려 가면서 나는 이제 지체장애우로 평생을 살아갈 이 소녀의 장래가 눈에 선해서 자꾸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수술이 끝나고 문자 그대로 갈쿠리 손이 되어 버린 손의 붕대를 풀고 감으며 치료를 할 때마다 나는 목이 메었다. 한참 분홍빛 꿈을 꾸며 이성에 대해 호기심을 키우고 부모님에게 투정이나 부릴 사춘기의 나이에 이 아이는 어쩌다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떠안고 살게 되었나? 대한민국의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죄 하나 때문에? 내가 이런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으깨진 손가락이 새까맣게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이나 잘하고 환자의 치료비에서 나오는 두툼한 월급봉투나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 내 할 일을 다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나는 서서히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 들고 있었다.


 
글/ 김록호(서울대학교 보건대학교 조교수)

작성자김록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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