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의 세상형편 ] 환멸의 90년대를 건너가는 장애우들 > 대학생 기자단


[장애우의 세상형편 ] 환멸의 90년대를 건너가는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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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장애우의 고통으로 살아있는 5.18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 군대를 동원한 폭력적인 탄압, 30년 통치자의 하야, 부통령의 집권.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마치 우리의 과거사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사태를 보는 우리 언론의 태도는 메마르기 짝이 없다. 우리에게 언제 저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인도네시아 민주화 투쟁의 배경에 대한 분석보다는 폭도들의 상점 약탈을 포함한 사회의 혼란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우리 국익에 미칠 여파를 계산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런 면도 중요하지만 같은 과거사를 가진 나라로서 인도네시아 민중에 대한 격려의 시각 정도는 비추었어야 마땅했다.

  다시 우리나라로 시각을 돌려보자.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광주민주화항쟁 18주년을 맞이했다. 5월 17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항쟁 18주년 전야제에선 UN총회의 세계인권 선언 50주년을 맞아 18개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 인권헌장’이 선포됐다. 영문 35페이지에 이르는 이 헌장에는 장애우등 소외계층의 인권 문제도 포함되어 있는데 차별과 억압을 받기 쉬운 계층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기구를 조직하고 국가간 인권 협약이 맺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15 무등)

  18년 전 광주의 악몽은 수많은 장애우를 발생시켰던 사건이란 점에서 장애우 문제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지금도 광주에는 그때 입은 장애의 고통에서 시달리고 있는 5.18 장애우들이 많다.

  전신마비 장애우 장주인 씨(59)는 80년 5월23일 전남대 앞길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한 대학생을 부축하다 계엄군의 트럭에 치어 장애를 입은 후 18년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조선대 병원에 1년 동안 입원했지만 폭도로 몰리면서 병원비 지원마저 중단되었다. 장씨는 네 차례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전 재산을 병원비로 날려야만 했다.(5/18 서울) 올해 22세의 김내향 씨는 18년 전 네 살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고향을 빠져나가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척추 관통상을 입었다. 수십 차례의 수술을 치렀지만 중증장애를 면치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85년 총상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아버지 역시 함께 유탄에 맞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문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정신 병원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5.18로 인한 부상자는 모두 2천6백여 명에 달한다. 이들 중 1천여 명이 각종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문민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광주에서 열리는 각종 국가적 행사와 정부 고위관리들의 방문 때마다 경찰버스에 강제로 태워져 다른 지역으로 격리되는 수모마저 당했다.(5/15 서울)

  이들은 이유 없는 폭력에 희생당한 것도 부족해 폭도의 오명마저 뒤집어썼으며 여기에 장애우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편견을 감수해야 했던 80년대의 난쏘공의 주인공이었다.

 

  무자비한 폭력철거, 98년에도 난쏘공은 유효한가

  다시 얘기를 돌려 보자. 18년 전 이처럼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비로소 이 정도나마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일각에서는 90년대가 80년대 못지 않는 환멸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80년대의 투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은 이 땅에서 사라졌지만 우리가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득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은 더욱 교묘해졌고 차별의 구도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특히 장애우들의 인권은 그때나 지금이나 커다란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열망이 불을 뿜던 시절에도 노동자의 권리. 빈민의 권리, 양심수의 권리, 통일 문제를 거론했을 지언정 아무도 장애우의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 장애우의 인권은 가장 낙후된 상태에서 머물고 있다. 난쏘공의 상황은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21세기에까지 대물림할 것으로 보인다. 난쏘공의 탄생기반이 빈민굴과 철거 촌 이었듯 98년 현재의 난쏘공의 상황도 빈민촌과 철거 촌에서 여전히 빚어지고 있다.

  지난 3,4월 각 컴퓨터 통신 게시판은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 있었다. 용산구 도원동에서 벌어졌던 강제철거 사건이었다. 재개발 지구인 이 지역 주민들은 철거에 반대하면서 서울시 재개발법에 의하여 주민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가수용 단지(임시 아파트등)를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공업체인 삼성건설과 계약한 철거 전문용역업체인 (주)적준(현 다원)의 철거반원들은 지난해 4월 이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폭력행사를 해왔다. 이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중상을 당했고 아이들은 하교 길에 협박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부녀자에 대한 성폭행도 자행됐다.

  올 3월에도 이들은 어린아이들만 자고 있는 집만 골라 유리창을 깨며 난동을 부렸다.(나우누리 plaza 게시물 발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도원동 일대가 경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화 되어 주민들이 수십 차례나 신고했음에도 경찰이 단 한 차례도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철거가 임박한 지난 2월 7일부터 도원동 주민 40여명은 골리앗(철탑)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항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27일 철거 용역 2백여 명은 1차 철거 시도를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골리앗 위에서 4일 동안 물대포 세례를 받으며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으며 이범휘 씨(61)와 백석호 씨(28)는 중태에 빠졌다. 특히 백석호 씨는사제 화염방사기에 화상을 입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통신상에 철거상황에 대해 시시각각 게시물이 올라오고 비판 여론이 비등하는 동안에도 한겨레신문과 국민일보 외에 대부분의 언론과 방송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SBS가 4월 14일 뉴스추적이 도원동 사건 등 철거용역업체들의 재개발폭력이 소개되면서 비로소 이 사건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나 경찰 측은 철거업체를 징계하기는커녕 공권력의 투입을 서둘렀다. 결국 지난 4월 23일 용산구청은 1천여 명의 공권력을 동원해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대대적인 행정 대집행으로 이 싸움은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3백여 명의 폭력배들이 동원돼 주민을 거리로 완전히 내쫓고 비닐 천막조차 세우지 못하게 해 주민 30여명은 노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5/10 평화신문) 이들 철거의 현장에는 98년 판 난쏘공의 상반 된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서 자녀 둘을 키우며 식당을 운영하는 뇌성마비 장애우 권화순 씨는 토평택지지구 조성사업 착공을 앞두고 강제철거반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협 속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곳이 택지지구로 지정된 지난해 초부터 그나마 식당도 장사가 안돼 월세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집 주인만 달랑 보상금만 받고 마을을 떴고 권화순 씨는 밀린 월세로 보증금을 모두 삭감당해야 했고 이사비용 40여만 원만 달랑 받았다. 4월부터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 35만 원을 받고 있지만 알량하기만 하다. (5/21 국민일보)

  또 다른 주인공은 지난 4월30일 성북구 정릉 4지구 재개발 지역 철거에 동원된 장애우 들이다.

  철거용역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조합측이 장애우 20여명을 재하청 용역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들 장애우들은 “용역을 불러 철거하면 사회문제가 되므로 우리가 왔다. 우리는 경찰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다.(5/10 평화신문)

  과연 이러한 세상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그늘진 곳의 소외된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그런 세상이던가. 경제공황의 시대에 장애우들은 누구보다 먼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사회문제를 줄곧 노래해 온 모 가수의 노래가사처럼 장애우들은 온갖 고통을 싸 짊어 안은 채 환/멸/의/9/0/년/대/를 건/너/가/고 있다. 21세기의 허무한 희망을 품고....
 


  솔루션스 저널리즘

  이번에는 언론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앞서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과 도원동 철거 사태를 대하는 언론의 모습을 언급했듯이 대자본과 결탁한 언론과 방송의 한계는 명백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언론은 죽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언론은 앵무새처럼 사건이나 현상을 읊어댈 뿐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때는 흥밋거리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미국에서는 그 대안으로 솔루션스 저널리즘(Solutions Journalism: 해법 저널리즘)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문제점 지적에서 한 단계 더 나가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는 저널리즘의 새 경향으로서 96년 유니온트리뷴의 ‘정보만이 아닌 희망과 도움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언론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일례로 LA타임즈 경우는 총기 소지자로부터 총기를 되사는 방법으로 총기소지를 근절한 호주 발라라트 지역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50만정의 반자동소총과 엽총을 회수하는 개가를 올렸다.

  ABC방송의 월드 뉴스 투나잇은 7백만 달러의 예산을 모아 레스토랑, 이삿짐 센터 등을 전과자들을 주축으로 설립한 델런시 스트리트의 한 수용시설을 소개했는데, 그 결과 델런시 스트리트 거주자 9천여 명이 교도소와 마약을 피할 수 있었다.(5/22 중앙일보 ‘미디어 파일’) 솔루션스 저널리즘의 요점은 구체적인 문제해결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사회적인 변혁을 꾀하는 것이다.

  시설설립 반대, 고용 차별, 교육 차별, 열악한 편의시설 등 장애우에 관련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적용해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한 장애우 학생을 위해 편의시설을 설치한 안양시 산본동 신흥초등학교의 사례를 소개한 경향신문의 기사를 들 수 있다. 교장의 직권으로 4학년 학생인 김민정 양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3층의 교실을 1층의 교실에 배정했고 교문에 가까운 계단에 새로 경사로를 만들었다. 교장의 솔선수범으로 학생들이 자원 활동을 자처하는 등 학교전체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요점이다.(5/6 경향)

  5월 10일 열린 갬대중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여성이 에바다 농아원의 문제점을 고발한 후 에바다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부각되는 등 다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도 방송의 위력의 한 단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진상 조사 후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정부부처와 경찰 등 관련 당국이 즉각 사태파악에 나섰고 급기야는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에바다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법인 이사 교체 등 운영개선 방안을 보건복지부와 평택시에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에 2백80여 차례나 거론되는 동안 강 건너 불보 듯 하던 관계기관의 뒤늦은 호들갑에 대해 한 기자는 굳이 대통령의 ‘말씀’이 없어도 법과 제도에 따라 공무원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열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세상은 아직 먼 것이냐고 비꼬았다.(5/14 동아)

  이처럼 매스컴의 위력은 행사하기에 따라서는 사회변혁의 주체가 된다. 언론이 썩으면 나라도 썩을 수밖에 없다.


글/  이현준 (자유기고가 근이양증 장애우)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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