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 대학생 기자단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본문

병철아,
어제가 네 중학교 졸업식이었구나. 지금까지는 입학과 졸업식을 늘 함께했는데 이번에는 축하 자리를 같이하지 못했구나. 하지만 달려가 대견한 너를 힘껏 안아주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은 알아주렴.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식의 입학과 졸업식을 바라보는 게 큰 기쁨이란다. 입학식은 학생이 되거나 상급 학교로 진학한다는 사실에 자식이 다 자란 듯하여 마음이 부자가 된단다. 졸업식은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 해 준 것이 고맙고 몇 년간 자식에게 들인 공이 열매를 맺는 것 같아 고단함이 행복으로 바뀌는 시간이란다.

사랑하는 병철아,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여중학생 10여명이 온통 밀가루를 둘러쓰고 교복은 계란으로 덧칠이 되어 있더구나. 그 모습을 보며 네 졸업식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 네 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더구나. 그런데 아버지 때 졸업식도 그랬던 터라 궁금 점이 일었다. 왜 대한민국 졸업식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어딜 가나 밀가루와 계란이 난무하는 똑같은 풍경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졸업식 때 계란을 던지는 것은 졸업이란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전이하는 과정이라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의미라고 하는구나. 또 밀가루를 뿌리는 것은 검은 색인 교복을 가장 백지화 하는 색이 흰색이라 ‘교복 화형식’이라 하더구나. 바꾸어 말하면 ‘소심한 반항’ 또는 ’독립 선언’이라고 보면 되겠구나.

규범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던 틀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의 발로이겠지. 그 심리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무의식적으로 행해왔던 그러나 이제는 볼썽사나움에 지나지 않는 졸업식 풍경은 그만 없어졌으면 좋겠다.

병철아,
오는 3월 5일이 고등학교 입학식이라고 했지. 헌데 걱정이 앞서는구나. 한국 교육풍토에서 보면 아마도 너는 중학교 때 보다 훨씬 더 억압된 지난한 시간을 맞게 될 게다. 흔히 교육의 정점이라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오로지 공부, 공부에 덜미를 잡혀 학교란 게 학우 간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학교란 모름지기 서로 교감하며 오래도록 우정을 나눌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지식을 쌓고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더 큰 세계인 사회로 나아가는 준비과정이어야 한다. 그렇게 지식을 넓히고 인성을 다듬고 문화를 배우고 공동체 훈련을 쌓아야 향후 나라라는 사회 공동체에 기여함은 물론 가치가 풍요로운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게 아니겠니.

하지만 한국의 교육현실은 그 정반대구나. 맘껏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체육, 때론 비틀즈를 틀어주는 음악, 전시회를 다녀오는 미술 시간은 이상에 지나지 않아 학교가 결코 네 영혼을 풍성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 아들아!
아버지 생각에는 결코 네가 ‘범생’이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 과목을 다 잘하고 교복을 단정히 입고 모든 면에서 모범인 청소년은 글쎄, 로봇을 보는 기분일 것 같다. 그렇게 주어진 것들만 달달 외우며 사는 사람의 인생과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겠니.

그러니 네 고등학교 3년은 너의 꿈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 친구인 가수 김원중은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라고 노래했다. 그 무엇이 너를 춤추게 할까. 노래, 운동, 춤, 글쓰기, 요리, 농사짓기, 고기잡이 등 등 네가 무엇을 하면 가장 신명이 날지를 찾는 일, 그것이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훨씬 더 많은 네 인생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쓸모없는 일이란 단 하나도 없다.
부디 자신을 귀히 여기고 남 또한 귀하게 여겨라.
졸업을 축하한다, 이 땅의 미래, 모든 딸과 아들들아.

 


                                                                          2002년 2월 20일 
                                                                          아들 녀석 졸업에 부치는 글

작성자한관호(바른언론시민연대 사무총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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