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피해자의 고통 헤아리는 감수성 벌써 잊었나? > 지난 칼럼


인권위, 피해자의 고통 헤아리는 감수성 벌써 잊었나?

정신병원서 사망한, 실종된 지적장애인 부모의 정보공개 청구 40일 넘게 지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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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25일 김씨의 의문사에 대해 김 씨의 아버지가 "토굴 같은 곳에서 아들이 죽었다. 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지 않게 조처해 달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희정 기자
“하도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몇 번이나 했지요. 정보공개 청구한 것을 주겠다는 것인지 못주겠다는 것인지, 왜 이렇게 늦어지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더군요.
전화할 때마다 맘이 얼마나 불편하던지...전화하면 자기도 엄청 바쁘다고 하고, 전화 주겠다고만 하고...6년이나 찾아 헤맨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부모 심정 알기나 하는 건지...”

김철수(가명)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평생 농사일로 굽은 그이의 어깨가 소리 없이 들썩였다.

정보공개 청구, 40일 지나서야 통보해

지난 7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경기도 오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숨진, 실종된 지적장애인 김지승 씨 사건에 대해 ‘각하 및 기각’결정을 했다.

2001년 실종된 김지승 씨는 실종 직후부터 집 근처 정신병원에 계속 입원돼 있다가, 2007년 5월 17일 격리실 관찰구에 머리가 끼어 질식사했다.
이에 김지승 씨의 아버지인 김철수 씨는 진상을 밝혀달라며 2007년 6월 25일 인권위에 사건을 진정했다.
그리고 인권위의 기각 통보 이후, 김 씨는 지난 7월 31일 인권위에 아들의 죽음을 조사한 것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인권위가 김 씨에게 정보공개 통지를 한 것은 9월 10일, 무려 40일이나 지나서였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보공개 청구일부터 최대 20일까지 공개여부를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철수 씨가 인권위에게 받은 공식적인 안내는 당초 8월 11일까지였던 결정기한을 10일 더 연장하겠다는 공문 한 장 뿐이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약속한 날짜조차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김철수 씨가 청구한 정보에 관련된 제3자에게 공개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의 부모인 김철수 씨는 인권위가 한 달 넘게 정보 공개 여부 결정을 계속 미루는 상황과 관련해, 인권위에게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린 세월이 6년인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죽음’의 이면에는 아직 살아있는 자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어떤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게다가 자식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부모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2001년 8월 김지승 씨의 실종 이후, 김 씨의 부모는 대문을 열 때마다 기도 했을 것이다. 제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들이 돌아와 있기를. 밥 한 술 넘겨야 할 때, 날씨가 궂을 때, 아니 일상의 모든 순간에 아들이 끼니를 때우고는 있는 건지, 험한 꼴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그 시간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지승 씨의 부모는 아들의 실종 이후 한 번도 대문을 잠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정말 죽었나요, 그것도 정신병원에서? 왜 내 새끼가 거기서 죽어가야 했답니까? 도대체 어떻게 요즘 세상에서 이런 일이... 정신병원서 나오기만 했어도 우리 애는 집에 왔을 겁니다. 이 근처 지리는 환하게 아는 애예요. 나오기만 했어도...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린 세월이 6년인데...집을 지척에 두고도 죽다니...” (관련기사/함께걸음,2007.06.23, ‘내 새끼가 왜 정신병원서 죽었나, 내막 밝혀라’)

김철수 씨는 아들의 사망이라는 엄청난 비보를 접한 이후, 경찰서, 관할구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을 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이는 한평생 농사일로 늙은 순박한 김 씨의 부모에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은 누구와 나눠 짊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김 씨의 부모들이 아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이렇게 기관에 호소하고 결과를 재촉하고 확인하는 순간마다 그 고통을 밑바닥부터 다시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권위, 피해자의 고통 헤아리는 자세부터 갖춰야

인권위에 따르면, 2007년 인권위 진정건이 약 3만 8천여 건이라고 한다.
피해자들이 그 어떤 공권력에도 호소할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곳이 인권위다. 인권위에 진정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많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인권위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인권위가 존재하는 이유며 근거다. 그런데 인권위가 김철수 씨에게 정보공개를 통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권위가 과연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들에게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나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감수성과 의지문제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인권위에 촉구한다. 그 어떤 외압과 입김에 흔들리지 말고, 다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 줄 것을 말이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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