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혹하다 > 대학생 기자단


너무 가혹하다

[편집장 칼럼]

본문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 예산을 삭감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서 유독 한 뇌병변 장애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장애인이 서럽게 울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장애인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왜인지 모르지만 문득 장애인이 우는 건 단순히 활동보조 예산이 삭감됐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의 서럽게 우는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대다수 중증장애인이 처해 있는 가혹한 운명의 그림자를 보았다.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교육받지 못하고, 차별을 당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닫힌 세상을 향해 절규하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는, 그 완강한 벽 앞에서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한의 눈물을 아스팔트에 쏟아 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장애인은 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쨌든 아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차별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실제로 몸도 많이 아프다. 시간이 흐르면 소아마비 장애인은 오십견으로 고통 받고 뇌병변 장애인은 경직 현상으로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다. 척추장애인은 증대되는 허리의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른다.

결국 걸어 다니던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게 되고, 휠체어를 타던 장애인은 자리에 눕게 된다. 문제는 장애인이 이렇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외출을 하고 싶어 하고, 교육을 받아 이웃과 소통하고 싶어 하고, 일자리를 구해서 다만 얼마의 생계비라도 벌고 싶어 한다.

어떻게 보면 순간의 삶이다.
장애인들이 긴 시간 많은 것을 바라고 요구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누누이 강조하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인데, 장애인들의 이런 애달픈 서푼어치 바람은 활동보조예산 삭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의 완강한 벽 앞에서 번번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묻고 싶다.
역시 우문에 지나지 않겠지만, 정부가 장애인 정책 기조라며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장애인의 가혹한 운명에 대한 적극적 보상의 실체는 도대체 지금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새삼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아픈 현실을 강조하고 푸념을 늘어놔 봤자 듣는 이 많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누구나 아는 얘기를 호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 꺼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작금에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가혹함의 도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길이 없는 장애인들이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다. 장애인 바지사장 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백주 대낮에 경찰서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들이 장애인을 데려다가 조롱하며 집단 구타한 사건도 있었다.

더욱 이해 못할 것 정부 처사이다. 정부만이라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장애인을 대해야 하는데 한술 더 떠 가혹함의 일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활동보조예산과 교육관련 예산 삭감도 문제가 되지만 저소득 빈곤 장애인 관련 예산 삭감은 도대체 무슨 짓인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내년 복지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에 비해 기초생활보장예산이 삭감됐고, 장애인 수당 예산도 삭감됐으며, 저소득 장애인수당도 역시 올해에 비해 삭감됐다. 복지부는 예산 삭감이 아니라 실수요 예산에 맞게 조정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장애인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안 그래도 쥐꼬리만한 저소득 빈곤 장애인 관련 예산을 조정한다면 뭘 얼마나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것인가, 정부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명심하자. 저소득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와 수당 외에 다른 삶의 수단이 없다. 따라서 어떤 이유가 됐건 빈곤 장애인들의 삶의 전부인 생계비와 수당을 가지고 무심하게,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삭감 운운하는 것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를 겪으며, 너도 나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장애인 삶에 관심을 가질까 라는 노파심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위기의 시대일수록 가혹한 운명에 놓여 있는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의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믿는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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