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염두한 장애인 고용정책 이뤄져야 > 지난 칼럼


중증장애인 염두한 장애인 고용정책 이뤄져야

[기고] 임용고사에 있어서 지난 2년을 돌아보며

본문

얼마 전 제50회 사법고시에서 시각장애인이 화면낭독 프로그램(Screen Reader)을 활용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여 2차 시험까지 합격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영광된 합격 뒤에 숨겨진 힘든 고통의 과정이 느껴졌고, 또한 뉴스 속의 주인공과 같이 시각장애인에게 적절한 보조기기나 시험 과정상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시각장애인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경우에도 2008학년도 충청남도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천안인애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1급 시각 장애인 교사이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지난 2년간의 임용고사에 있어서 장애인 의무고용 할당제에 대한 진행 과정과 그에 따라 드러난 문제점, 해결방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 보도록 하겠다.

2006년부터 정부의 장애인 고용의무 직종에 초등·유치원·중등교사가 포함됨에 따라 약5,000여명에 해당되는 장애인 교사의 충원이 필요해진 정부는 장애인 구분모집을 통한 교원임용시험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전 교원의 2%가 장애인 교원으로 충원될 때까지 매년 5%의 장애인 교원을 선발했다.

사실 2005년 중앙 인사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47개 정부기관 중 46위에 불과한 장애인 의무고용률 0.71%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하여 2007년 임용고사에서부터 장애인 구분 모집을 실시하였다.

임용고사 모집 기쁨도 잠시...시각장애인 위한 보조기기 제공안해 낙방고배

이때 나는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 4학년생으로 한참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애인 구분 모집 소식을 듣고 기뻤으나 교육 당국으로부터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다.

임용고사에 있어 화면 낭독 프로그램은 물론 어떤 보조기기도 불허하였고 문제지는 오로지 점자로만 되며 시험 시간마저 터무니없게 배정하였다. 교육학 50문항에 비장애 학생 60분, 시각장애 학생 70분, 전공은 비장애 학생에 비해 30분밖에 더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은 사법고시, 수능시험에서도 전맹 시각 장애인 학생에게는 1.5배의 시간을 배정하는 점과 점자의 촉독 속도가 비장애인에 비해 전체적으로 2.3배 이상 뒤쳐진다는 논문을 근거로 제시하며 시험 시간만이라도 연장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평가원, 16개 시ㆍ도 교육청의 반응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떠넘기기에 급급하였다.

나를 비롯한 사범대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은 ‘합리적인 시험 편의 기준 마련 요구서’라는 성명서를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정당 홈페이지, 교육과정 평가원, 시도 교육청 등에 올려 우리의 요구를 주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시험 시간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임용고사에서 장애인 의무 고용이라는 획기적인 소식에 도취되어 있어서 처음 시행에 있어 어느 정도 미비한 점은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보조기기는 채택되지 않더라도 시험 시간은 쉽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시험 시간은 늘어나지 않았고 결국 15살 때 중도 실명한 내 점자 속도로는 교육학과 전공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그만 낙방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시험에 떨어진 후 한참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시험에 불합격한 것보다도 적절한 시험 시간과 보조기기가 허용되지 않음으로 인해 내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승산이 없었다.

또한 임용 고사에서 장애인 구분 모집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 종별, 등급 구분 없이 모든 등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든 상황이었다.

2년이 넘어서야 응시가능하게 된 임용고사, 그러나 ‘암초 곳곳’

이러한 가운데 2007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임용고사에 있어서 시각장애인에게 1.5배의 시험 시간을 부여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무려 1년이 넘은 시점에서의 늦은 결과지만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권고를 시도 교육청은 받아들여 2008학년도 임용고사부터 시행되었다. 그래서 2008년 임용고사에서 나는 점자 문제지와 점자로 답안을 작성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시험 시간 안에 문제를 무사히 풀 수 있었고 현재 지적장애 학교인 천안인애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알기에 시각장애 후배 교사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크다.

2008년 4월 11일 장애인 차별 금지법 시행 이후 2008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과 2008년 중등교원 임용고시에 응시했던 시각장애인 33명의 진정건인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교육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상대로 시험 당시 적절한 편의를 받지 못했다는 사안에 대해 컴퓨터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 파일을 받아 응시할 수 있게 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이번 2009학년도 중등교사임용시험에서부터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 속에서 시각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와 여러 특수학교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헤쳐 나가야 할 암초가 많다.

그 중 하나로 장애인 구분 모집 인원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2007학년도에는 초등교사 70명과 중등교사 132명을 충원하고, 2008학년도에는 초등교사 67명과 중등교사 159명을 충원하였다. 올해 실시되는 2009학년도 교원임용시험에는 초등교사 329명(유치원교사 5명, 특수교사 8명 포함), 중등교사 237명(특수·보건·영양교사 포함)을 구분모집하고 있으나 초등교사의 경우 교대에 재학 중인 등록 장애인 자격을 가진 응시 예상자 수 보다 훨씬 많은 수를 모집 정원으로 하고 있는 반면 시각 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특수교육의 모집 정원은 지속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초등교사와 일부 중등 교과의 경우 장애인 응시자 중 합격 인원이 모집 정원에 미달하면 미달된 인원을 비장애인 교사로 충원할 수 있어 결국 추후로 임용될 수 있는 장애인 교사의 수는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교원 임용 회피의 빌미도 줄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장애인 교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임용되면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는 난색을 표하기 일쑤다.
이러한 임용고사 선발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경증 장애인 위주의 임용고사 합격률에 있다.

장애등급 제한 없어 중증장애인에게 불리

장애인 구분모집에는 장애인으로 등록이 돼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등급에는 제한이 없다.
2008학년도 경기도의 경우 신규 임용된 장애인 교원은 61명으로 이 중 78%인 48명이 4∼6급의 '경증 장애'에 속한다. 가장 인원수가 많은 시각장애 6급은 '한 눈의 시력이 0.02이하 다른 눈의 시력이 0.6이하인 사람'이다.

대부분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를 구분할 수 없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비장애인에 비해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은 본래 취지와는 상관없이 장애인 의무고용 할당률만 올리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서전 '오체불만족'으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고, 2007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돼 또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오토타케 히로타다 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을 우리 교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건네 보며 나는 생각해 보았던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현재 모집 정원에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상대적인 비율을 절대 모집 인원으로 할당했으면 한다.
예를 들면 모집 정원의 5%를 임용하기 때문에 20명당 1명의 선발로는 20명 미만 선발하는 과목의 경우 장애인 정원이 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 미임용 시에 비장애인 교원으로 충원하는 것을 폐지하고 다음해 정원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초등 교원의 경우 적절한 안배는 필요하다. 둘째, 장애인 임용에 있어 등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데에는 중증 장애인의 임용에 있어 문제가 있으므로 가산점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1~2 등급의 장애인들이 4~6등급의 장애인보다 공부하는데 있어 힘든 것은 사실이다.

셋째, 장애인 임용 후에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여 체계적인 직무분석을 통해 적절한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원 서비스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의 오토타케가 안 나오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충남 교육청의 배려로 업무 보조와 학생 생활지도에 도움을 주실 특수교육보조원이 배치되어 비교적 원만하게 학습지도와 교무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해결 방안을 찾는다면 중증 장애인에게도 여러 공직 진출 기회가 더 활짝 열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도 직업재활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만큼 장애인 고용의 기회가 많아져 진정한 사회 통합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천안 인애학교 김홍엽(시각장애 1급) 교사가 보내주신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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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홍엽 (천안 인애학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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