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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이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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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과 대담을 하면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이 위기의 시대에 가난한 장애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동거’를 적극 고려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유 소장의 이어진 말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의 경우 장애 수당까지 합쳐 월 평균 50여만 원을 지원받는데, 이 돈으로 혼자 사는 건 힘들지만 생계비를 지원받는 장애인이 둘 이상 같이 모여 살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유 소장의 조언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의 다수가 혼자 사는 단독 세대주인 점을 고려해 들려준 처방이었다.

이렇게 지금 가난한 장애인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벼랑 끝에 서 있다.
현실을 보면 물가가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계란 한 판이 3천원이었다가 5천원으로 올랐다면, 가난한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생계비가 그만큼 삭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이 인상됐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수입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생계비에 기대 사는 장애인들에게 정부는 그 부족한 생계비를 더 채워주지 않고 있고, 생계비를 더 지원해 줄 의사도 없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쏟아내고 있는 정부의 빈곤층 대책은 철저하게 장애인을 외면하고 있다. 그나마 눈에 띄는 대책도 기초생활수급자 수를 지금보다 조금 더 늘리겠다는데 그치고 있지, 현재 생활고를 겪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부족한 생계비를 더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없다.

막말로 경제 위기로 중산층이 직장을 잃으면, 대리운전기사·막노동·혹은 식당 일 같은 힘든 일이라도 해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락하고 싶어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노동에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장애인들은 이 위기의 시대에 속수무책으로 내팽개쳐진 상태에 놓여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들이 빈곤의 늪을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는 정부 시각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오히려 빈곤의 늪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가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도 인정한다.

그러면 이 점을 정부가 알고 있다면, 하다못해 장애수당이라도 몇 만원 인상해 주는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정부가 어떤 대책도 없이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들에게 고통을 분담해야 하니까 지금보다 생활수준을 더 낮추고, 또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알아서 생존의 방법을 찾아 이 위기의 시대를 넘기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아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안 할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가난한 장애인 문제 외에도, 이 정부 들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 마련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수십 년간 골방에 갇혀 있던 중증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세상 속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자립생활 패러다임에 이어 탈시설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닌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장애인을 위한 시계가 어느 시점에서 딱 멈췄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이 정부는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

정부는 경제가 위기니까 장애인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 알고 있듯이 최근의 경제 위기는 과잉생산과 신자유주의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촉발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언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그러면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장애인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내 숨죽이며 경제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다시 가난한 장애인들 문제로 돌아가면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는데, 어쩌면 벼랑 끝에 서 있는 가난한 장애인들은 류 소장 조언대로 살아남기 위해 모여 소규모 시설을 만들던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원치 않지만 계약결혼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자꾸만 장애인들이 세상 속 외로운 섬에 덩그러니 내던져지는 것 같아 심각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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