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는데… > 대학생 기자단


공짜 점심은 없다는데…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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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뜨끔하고 먹먹해지는 말을 들었다. 얼마 전 국가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경제학에서 공짜점심은 없다. 값을 치루지 않고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주장들이 많아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예를 들면 공짜혜택이나 무임승차를 약속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언론은 윤 장관의 이 말이 야당의 전원 무상급식 주장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나는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탓할지 모르지만, 윤 장관의 소신 발언을 무상급식 사안을 뛰어 넘어 명백하게 장애인들을 겨냥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윤 장관의 발언 맥락에서 장애인계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계 최대 현안은 기초장애연금법(현 장애인연금법) 제정 문제였다. 누더기가 되고 있으나마나한 법이지만, 그마저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정부가 약속한 7월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윤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기획재정부가 법안 통과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이다.

장애인연금법을 둘러싼 쟁점을 뭉뚱그려 요약해 보면, 국회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래봤자 처연한 희망에 지나지 않지만, 먼 훗날에는 중증장애인뿐만 아니라 경증장애인에게도 연금을 주고, 껌 값 수준의 연금액수도 나중에 조금이나마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법에 담자고 주장하고 있고, 기획재정부는 그 기약 없는 여지마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 통과를 가로 막고 있었다.

우둔해서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연금법 제정을 극렬하게 막고 있는 진짜 이유를, 한마디로 기획재정부로 대표되는 정부는 윤 장관의 발언대로 장애인들에게 공짜 점심을 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장애인 장기요양제도 도입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단박에 설명이 된다.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장애인 장기요양제도가 값을 치루지 않는 공짜 혜택이고, 무임승차에 해당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꼭 필요한 예산 배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장애인들이 복지혜택을 누리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 나라 살림을 분배하는 기획재정부 입장이고, 그에 따라 장애인들이 맘 놓고 밥을 먹으려면 최소한 점심 값 일부라도 내야 한다는 얘기인데, 생계 수단이 없어 소득이 없는 장애인들이 무슨 수로 점심 값 일부를 마련할 수 있을지 전혀 답이 없기 때문에 가슴이 먹먹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말의 대안인, 장애인들의 일을 통한 소득보장과 자립의 꿈은 손에 잡히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져가고만 있어서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정자들은 장애인들의 일을 통한 복지를 얘기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장애인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뉴타운 개발 공약 대신 복지가 선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대안으로 복지를 갈망하고 있고, 그 갈망이 표면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꿔 말하면 지금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비장애인들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받고 있고, 뚜렷한 해결 방안도 없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일을 통한 소득보장과 자립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놓여 있는 현실은 암울한데, 나라 곳간지기 기획재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새겨들으라며 공짜 점심은 없다고 호언하고 있다. 하기 쉬운 말로 그러면 장애인들이 똘똘 뭉쳐서 정치권을 상대로 공짜 점심을 주게 압력을 행사하든지, 아니면 공짜 점심을 주겠다는 정치인을 선택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가? 이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깊은 무력감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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