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특별법은 왜 만들었는가’ > 지난 칼럼


‘성폭력특별법은 왜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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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전지부 제공
몇달 전 지적장애 여중생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너무 너무 속상했었습니다. 그 학생의 아픔이, 그 부모의 절망이 눈에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아직 어린 고등학생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단체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다시 이 일이 시끄러워졌습니다. 가해 학생들이 전원 불구속 기소가 되면서 여러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16명의 가해 학생에 의해 한 달 사이에 13일에 걸쳐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너무 가볍게 처벌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규정을 보면 장애여성에 대한 간음이나 추행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위 규정이 있는 경우나 없는 경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대법원은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건에서 위 규정의 ‘항거불능’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적용을 제한해 왔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37세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간단한 위력의 행사에 의해서도 겁을 많이 먹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집안 살림이나 가게에 나가서 식료품을 사오는 일은 할 수 있고,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도 문제가 없어 남편 외의 다른 남자가 성관계를 요구하면 이를 거부할 정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위 규정 적용하지 않았습니다(대법원 2003. 10. 24. 선고 2003도5322).

또한 정신지체장애 1급의 17세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문제된 사안에서는 피해자가 7~8세의 정도의 지능밖에 없고 평소 겁이 많아 누가 큰 소리를 치면 겁을 먹고 시키는 대로 하였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평소 마을 어귀에 있는 요트 경기장 등등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등 자신의 신체를 조절할 능력이 있고 사고 능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성적인 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있기는 하였으나 다만 그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데 불과하다며 역시 위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4도1449 판결).

대법원은 ‘항거불능’의 의미를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엄격한 의미에서의 항거불능이 있으면 위 규정을 적용하되, 만약 항거불능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심신미약자에 관한 형법 제302조를 근거로 처벌을 하라는 것입니다. 위 규정이 있기 전에도 형법은 항거불능 상태의 여성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서는 형법 제299조에 따라 강간과 동일하게 처벌하여 왔다는 점에서 결국 위 규정의 실익은 별로 없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답답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법률이나 그 해석이었습니다. 물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법논리적이고 일관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특별법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취지를 다시 생각해 볼 여지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7~8세의 지능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래서 누가 큰 소리만 치면 겁을 먹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고능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어 성적인 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국 아예 사고능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없어야 적용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형법에만 의하는 경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왜 법률 제정과정에서 이러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특별법에 규정되면 좀 더 강화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왜 형법과 별 차이도 없는 규정을 두었는지, 만약 처벌을 강화할 요량이었다면 왜 요건을 형법과 동일하게 규정하였던 것인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법률이 그저 생색내기로 장애여성에 관한 규정만을 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여성의 특성이 제대로 고려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건에 있어서도 전혀 차별성이 없었습니다. 법원은 규정의 형식적 요건에 따라 해석하여 적용하였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법률이 된 셈입니다.

최근 위 규정에 대한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무거운 처벌이 범죄를 억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특별법을 만든다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왜 만드는지는 처음부터 잘 생각하고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괜한 기대감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기는 법입니다.
작성자조원희 변호사 (태평양 법무법인 공익위원회 장애인팀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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