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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힘 모아 SOS

[해외의 장애우]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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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지진인가 봐!” 동료 상담센터 사람들의 말과 함께 책상 앞 블라인드가 술렁술렁 흔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나만 멀미 때문에 어지러운 게 아니라 지진이 일어나 흔들리고 있다는 것.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던 손은 저절로 멈춰졌지만 그 다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에요. “멈추질 않네, 이번 지진은 센가 봐.” 2층에 있던 우리들은 일단 휠체어를 탄 사람들부터 순서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피난하기로 했어요. 엘리베이터까지 15m 정도를 걸어가는데도 균형 잡기가 어려워 휘청거리게 되더군요. “괜찮겠지, 그래도 지진이 멈추질 않네….”

  1층에 모인 20여 명의 사람들, 불안한 가운데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확인하며 기다린 게 약 15분이나 될까, 하지만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어요. 그 당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일단 오사카가 진원지는 아니라는 것, 오사카에서 800km도 더 떨어진 미야기라는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라는 것, 그것이 16년 전에 일어났던 6천 명 가까운 사람들을 목숨을 한순간에 뺏고 3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던 고베대지진 정도의 큰 지진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고베는 오사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근린지역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지진, 순간적으로 사고와 판단이 정지되고 공포감에 휩싸였던 시간이었지만 실제로 거대지진의 위력을 체험했던 재난민 앞에서는 언감생심 말도 꺼낼 수 없는 거예요. 알기 쉽게 예를 든다면 평양보다 더 북쪽에서 일어난 지진을 부산에서 느꼈던 정도니까요. 그날 오후부터 차차 밝혀진 사실은 그야말로 전문가의 상상마저 초월하는 것이었어요. 매그니튜드 9라는 유사 이래 5번째를 기록하는 수치로 주변 지형과 생활환경에 미친 피해는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하는 거대지진이라는 것.

  지진 발생 11일째인 오늘 현재, 8900여 명의 사망자와 12,000명이 넘는 행방불명자를 합치면 그 피해자의 전모는 2만1천 명을 넘을 것이라고 정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해가 커진 데에는 지진과 함께 들이닥친 해일 때문이며, 그 위력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께서도 영상을 통해서 익히 보셔서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연일 보도되는 지진 속보와 더불어 일착으로 도착한 한국 구조지원부대의 뉴스, 한류스타들의 의연금, 일반 국민들의 성금 등의 뉴스가 일본 전역에 전해지며 재해민을 위로하는 이웃나라의 따뜻한 손길이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재해, 방재라는 말은 아주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에요. 각 가정을 비롯해 지자체의 방재의식과 대비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구요. 그런데도 이렇게 피해가 엄청난 건 자연의 힘이 인간의 방재의 한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거겠지요. 그리고 인간의 지혜와 과학의 산물이라고 자부해 온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선 유출 문제가 인근 지역에 삼중의 피해를 주며 고립시키고 있고, 제일의 도시 도쿄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그 영향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거죠. 이런 재해 앞에서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위력에 아무런 손도 쓰지 못 하고 제 한 몸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막막한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됩니다만, 한편으로는 남은 힘을 쥐어짜 포기하지 않고 절망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위대함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지진 발생 11일째인 오늘의 가장 큰 뉴스는 해일로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된 미야기 이시마키라는 마을에서 두 사람의 생존자가 구출되었다는 뉴스입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매일 매일 재해민들의 처참한 뉴스를 들으면서 흘렀던 눈물과는 다른 벅찬 감동으로요.

  아마 이번에 미처 피난하지 못 한 사람들 가운데는 특히 장애인, 고령자 여러분들이 많으셨을 거라는 걸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요. 그리고 직접적인 재해는 피했지만 단전, 단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재해 지역에서 피난하지 못하고 자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립되어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 한 가운데 몇 배나 더 큰 공포감과 어려움에 처해 있을 그 분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지원의 눈길이 닿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였던 미야기의 중심 도시가 센다이인데요. 작년 8월말 공동연 전국대회가 2천여 명의 장애인과 관계자들이 모여 성대하게 개최된 곳이기도 해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도 여러 분이 오셔서 한일의 연대를 확인했었는데요, 당시 처음으로 센다이를 방문했던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푸르고 깨끗하게 정비된 숲의 도시, 길을 몰라 역 앞에서 무작정 길을 묻는 저에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던 청년, 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빵집의 스텝들… 아련히 떠오릅니다. 지금은 그 때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겠지만 꺾이지 않는 재해민들의 용기와 일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당면한 불편과 위기 속에서 자신의 불평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함께 힘을 합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인내하며 격려하는 모습들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작성자변미양  nagarem@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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