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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의사소통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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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 사진. 채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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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속의 그녀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의 소유자인 뇌의 움직임이 그림에 투사돼 있다. 알지 못하는 언어, 풀 수 없는 공식들이 우울한 사회가 만든 초라한 원형 뒤로 끊임없이 지나간다. 두려움 속에서 그녀들은 영원히 주변인이다. 주인공은 개인이 아니라 물성을 지닌 사회였던 것.


2. 너의 마음에 있는 습기로 바다를 만들었네. 네가 본 세상 사진으로 바탕을 만들고 그 위를 색칠했지. 모래 위에서 본 바다와 하늘, 구름 위에서 본 바다와 하늘, 너의 눈으로 본 바다와 하늘, 세 방향으로 나는 달려가지.


3. 저녁 빛 내리는 산에서는 소나무를 그리고, 책에 코 박은 채 한 쪽 발로 천천히 그림 속을 걸었네. 윤회라는 그림에 비친 나는 ‘그’로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나로 태어난 것일까? 겹쳐진 심상 속에 여름공기가 흘러간다. 지금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모든 견고한 것들도 필름을 거꾸로 돌리니 모두 무無로 돌아갔다.


김화수, ‘여름, 달려가다’. 푸른문학, 2020년 여름호.


마음속을 드러낸다, 사진으로
여행을 하다가 멈추어 선 곳에서, 우연히 대상물들에게 눈을 마주치며 순간을 담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많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즉 먹는 것, 보는 것, 하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한 자신의 시선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건 그야말로 “지금 내 모습과 마음은 이러하답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어떤가요?”라고 물으며 반응을 구하는 행위이자, 괜스레 모르는 타인에게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비치는 건지도 모른다. 개인과 특정 대상의 소통이 제3자와의 소통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통욕구가 지나치게 되면, 친한 사람과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사진을 SNS에 올리고 다른 사람의 ‘좋아요’ 반응과 댓글을 지켜보느라, 정작 바로 눈앞에 있는 대화 상대자와는 소통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휴대전화에 시선을 둔 채로 말이다. 마치 어린 아이 둘이 옆에 가까이 놀면서, 각각 다른 얘기를 하는 장면과도 같이.아무튼 찍은 사진을 다시 하나씩 꺼내 보며 내가 대상물과 공존했던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 그건 순간을 영원으로 가져가려는 인간의 염원에서 발명된 사진기의 덕이다. 대상물을 직접 내 눈과 마음에 담는 첫 번째의 만남, 그리고 다시 찍혀진 대상물을 바라보는 두 번째의 만남,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와 재구성은 몇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럴 때 나의 눈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걸 느낀다.
휴대전화의 사진 기능이야 두 눈으로 확인을 하겠지만, 실제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피사체와의 눈맞춤을 위해서는 한쪽 눈을 감아야 한다. 마치 세상을 향해 윙크를 하는 듯하다. 더욱이 윙크를 하며 손가락 한 개로 박자를 맞출 때 흘러나오는 ‘찰칵’하는 소리! 아, 그것은 우리의 소통을 축하해 주는 폭죽소리 같다. 스스로 찍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사진을 보며 감탄하는 건 아마도 사진 그 자체의 예술성일 수도 있겠으나, 피사체와 잠시 마주쳤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 사진 속 대상물로 인해 기억 저편에 존재하여 줄줄이 떠오르는 지나간 시간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미식이 엮어 푸른솔에서 발간한 ‘열여섯 생활 사진가들의 PHOTO ESSAY’라는 부제의 <사진은 감동이다>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이광숙 사진가가 서문에서 고백한 말을 기억한다. 그녀는 가슴 태우던 어떤 일 때문에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어느 순간엔 절실히 원했던 일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단다.
누구나 살다보면 이런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있겠지만, 그녀의 가슴을 치유해준 것은 사진이었다.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진, 그래서 그녀는 사진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더 이상 주눅 들거나 상처받게 내버려두지 않는 사진 때문에 행복과 웃음, 자유와 함께 재미있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얘기. 인터넷을 통해 그녀의 사진자료를 찾아보니, 외로움을 떨쳐 주는 도구인 듯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이제 사진을 통해 소통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대로, 시선을 따라가니 행복이 대상물에 투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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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바람을 촬영하기' 기획전의 표제작이었던 작품 '바람, 눈에 보이다' 


사진에 느낌 담기, 소중한 대화법
길을 가다 멈추어 서서 잠시 노을을 보는 순간, 눈동자가 저녁 빛으로 가득 차오르며 감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한 번쯤은 지는 해를 향해, 그리고 그 주위의 구름과 산의 능선과 주홍빛 나뭇잎을 향해 셔터를 눌러본 사람이면 안다. 저녁이 가슴에 가득 내려오고 있음을. 그래서 그 빛은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작가들의 사진전을 보면, 그들이 찍는 순간 느꼈을 순간의 고독과 그 후 대상물과의 소통이 차례로 전해져 온다. 작가들 중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는 각 사진들이 그것만의 위치와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지만, 사실 사진을 찍는 순간 찍는 사람과 피사체는 일련의 관계가 형성된다. 인물사진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찍는 사람을 보는 대상자의 눈동자에는 ‘언어’가 들어 있다. 물론 그의 말은 각각의 사진들이 지닌 이야기의 독특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람자의 눈은 작가와 사진을 연결시키며, 그가 담아왔던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니 오히려 엘리 리드(Eli Reed) 작가처럼 본질적으로 인간애를 진작하는 매개를 작업의 근저로 삼는다는 말이 더 솔직해 보인다.
몇 년 전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이 서울과 대구에서 ‘매그넘 코리아전’이라는 기획을 통해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나는 무언가 사진기로 담기 위해서 애써 왔는데, 이 전시회로 인해 무엇인가 덜어내야 하는 내 안의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사진은 세계 어디에서든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하는 브루노 바비(Bruno Barbey)의 말대로, 사진을 바라보며 또 다른 의사소통의 통로를 찾아보았다. “사진으로 소통하기 위해 숨겨진 의지 식별하기(Lise Sarfati)” 작업과 더불어, “행위 속에서 나타나고 명상이 이끄는 반영(Abbas)”으로 내 사진이 표상되어지길 원하면서 말이다.
말-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짚어본다. 그러고 보니 의사소통 행위란 본질적으로 사진 찍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진을 통해 내가 움직이는 대로 이동하는 다양한 피사체를 더 넓은 관점으로 보려는 마음은, 의사소통을 통해 타인에게 닿으려는 꿈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의사소통을 돕는 매개로서의 시간 속에 말과 언어가 있다지만, 더 나아가 고기잡이나 요리, 영화나 글쓰기는 왜 아니며 사진은 또 왜 아니겠는가?


■ 이 글의 뒷부분은 김화수의 블로그 ‘언어는 존재의 집’에 기록했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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