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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의사소통하기

언어와 의사소통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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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열기만 하면 되는 문을
쳐다만 보고 있었구나
오늘 아침엔 그 문 환하게 열려
영혼 드나들기 좋았네
초록빛 나뭇잎들 반짝이는 꽃자리
건너편 연못에는 청둥오리 두 마리
카키색 부리로 세상에게 묻는다
푸른 하늘 아래 작은 성 안에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내 영혼 바라보았지

김화수, ‘문’. <푸른문학>, 201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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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 전, 그날의 느낌
부엌 개수대 앞에서 저녁 설거지를 한다. 창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오리 두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벌써 삼십오 년째 나와 함께 숨 쉬어온 이 오리는 열 번도 넘게 이사를 다니는 동안 다친 데도 없이 멀쩡하다. 한 개의 플라스틱으로 된 하트 모양의 판 위에 같이 있어 결코 다른 하나와 헤어질 수도 없다. 하나는 목을 길게 뻗어 하늘을 향해 부리를 들고 있어 영어 글자 J의 모양으로, 다른 하나는 아래쪽을 바라보느라 주황색 부리와 함께 S자 모양으로 보인다.
내 영혼은 이십 대의 나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 안에서 쑥쑥 성장해 나가고 있는 중이지만, 이 오리들을 보는 시간만큼은 푸르디푸른 시절의 둥둥 떠다니는 기억 조각이랑 만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니, 기억 조각들이라기보다는 전체 화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실 오리 조각상은 교생실습 마지막 날 시각장애 학생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그러고 보니 이걸 건네주며 정말 신기한 걸 자기들이 발견했다며 기뻐하던 표정이 생생히 떠오른다. “포장지를 꺼내보면 놀라실 걸요, 꼭 만져보세요.” 하던 그들의 목소리까지도.


다만 보이지 않을 뿐, 들리지 않을 뿐
특수교육과 4학년의 대학생이던 나, 중학교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예비교사가 되어 서울맹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했었다. 중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들과 중도실명된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있다 보니 고등학생 정도의 연령대가 더 많았고, 결혼해서 학교를 다니는 20대 학생도 한 명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방과 후 생활은 다채로운 활동으로 채워졌고, 그들은 ‘장애’라고 하는 불편함과 더불어 살며 청소년기의 시간을 잘 살아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이제는 대학교수가 되거나 모교의 교사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 사업체를 꾸려가는 회사 대표가 되기도 했다. 또 사회의 작은 일원이 되어 존재의 기쁨을 느끼는 평범한 가장이 되기도 했다. 안마, 피아노조율, 조향 등 많은 일들을 하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
당시 나는 학급의 부담임을 맡으면서, 수업시간 이외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회를 종종 가졌다. 동전을 넣은 돼지저금통을 축구공으로 사용하는 그들의 축구를 구경하기도 했고, 때로는 탁구도 함께 했다. 탁구대의 네트가 나무로 되어 있고 탁구공의 크기는 일반 탁구공보다 컸는데, 소리에 의존해서 탁구채로 공을 치는 그들에게 공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내가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실 청소는 일일이 손으로 만져가면서 했으므로, 창틀이나 구석에 먼지 하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숙사에서 교실건물로 오는 길,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국어책을 들고 오면서 앞에 있는 사람이 나인 걸 알았고, 내 키가 몇 센티미터인지를 알아맞히기도 했다. 버스가 올 때면 몇 번 버스인지를 알아챘고, 최신곡을 몇 번만 듣고도 서로 악기를 맞춰가면서 완전히 그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소풍 가서는 서로 먼저, 서로 더 많이 노래하고 싶어 했다. 춤만 없었을 뿐 축제였다.
언젠가는 학교 앞 슈퍼(지금도 있으려나?)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 슈퍼는 라면을 골라오면 여러 개의 가스구에 냄비를 올려놓고 동시에 끓여주는 곳이었다. 서울맹학교 바로 옆에 있던 서울농학교 학생들까지 몰리는 시간이면 슈퍼 안이 북적북적했다. 십 대의 아이들답게 웃기는 농담을 해가며 서로 질 수 없다는 듯 말로 떠드는 우리 학생들. 그들 쪽으로만 쳐다보며 함께 라면을 먹던 나는, 등 뒤쪽에 있는 농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생들과는 달리 질서를 지키며 조용히 먹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뒤를 바라본 순간, 그야말로 수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고야 말았다. 우리 학생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표정과 빠른 손동작, 그리고 또래끼리의 장난스러운 ‘몸짓언어’들을.
학교 기숙사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우리 학생들은 논쟁하느라 시끌시끌하다. 한 학생이 “농학교 애들은 참 불쌍한 것 같아. 얼마나 소리 내서 말하고 싶을까?”라고 한다. 그의 말에 동조하며 “맞아”라는 소리, “야, 야! 사람들은 우리를 더 불쌍하다고 할 걸.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사냐고.”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나는 날 때부터 장님이라서 안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너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이기나 하는 거냐?”라며 하하하 웃는다. “야, 장님이란 말 하지 말라니까!”, “왜? 지팡이를 짚으면서 가니까 장님 맞잖아, 그래서 흰 지팡이의 날이 있는 거 아니야?” …, 끊어지지 않는 말의 향연이었다.


한 뼘씩 성장하던 짧은 여행
사실 우리 학생들의 빛나는 기지와 지혜로움, 기발한 생각, 예술성에 놀랐던 적이 많이 있었지만, 생각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 역시 서울 신교동 그 길 언저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십 대의 내가 걷던 서울 길에는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있기는 하나, 장애 당사자가 아니어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남아 있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개의 감각의 유용성을 따져 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장애, 뇌병변장애와 뇌에 대한 깊은 생각들도 그 길에는 존재한다.
쉬는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에서 몇 명씩 기다리고 있던 맹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화 상황에서는 화자와 대화상대자 모두 보이지 않는 상태의 대화를 하게 되므로, 평등하며 장애가 없는 공간이 생성된다. 물론 비장애인에게는 전화 목소리만 듣는 것이, 실제 만나는 것에 비해서는 장애의 상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야 학교장면에서 늘 봐왔으므로, 그들이 걸어온 밤의 전화는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손으로 꼬아가며 말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했다.
수업시간은 늘 활기찼다. 공부보다는 의사소통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국어선생님인 나는 시를 읽어 주기도 하고 짧은 에세이나 단편을 읽어주기도 했다. 때로는 함께 연극을 보러 몇 명의 학생들과 방과 후 모험을 떠난 적도 있었다. 학교로부터 버스를 타고 극장가기, 연극을 보는 동안 작은 목소리로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표정을 이야기해주기, 끝나고 빵집에서 접시 위에 놓인 빵의 위치 설명하기, 슈크림을 처음 먹어본다는 그들에게 깨물었을 때의 느낌 물어보기…, 작은 여행을 하고 돌아온 우리들은 한 뼘씩 커졌다.


낯설게 바라본다, 새로운 시선으로
영원한 배움자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새로운 사물에 눈 맞추고 사용법을 배우며, 알지 못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그러나 여전히 간직하며 때때로 꺼내보는 것이 있다. 오리 조각상이야 설거지할 때마다 본다고는 하지만, 작은 노트는 오래된 일기들과 함께 상자 깊숙이에 있다. 점자를 모르는 내게 보내온 몇 편의 시(아마도 동생에게 불러주어 글자로 쓴 듯한)가 그것이다. 너무나 기발한 시들을 강산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나만 가지고 있었으니, 언젠가 그의 이름으로 소개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메라비언의 법칙(The Low of Mehrabian)은 앨버트 메라비언 교수가 <Silent Message>라는 저서에서 밝힌 것으로 의사소통 이론에서 중시된다. 즉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 받는 이미지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 대화상대자로부터 얻어야 할 정보는, 모두 청각이나 언어(말의 내용)에 의존해야 할 테니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안인(비시각장애인)들이 이들과 의사소통할 때는 상호작용을 더 잘하기 위해 배려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상세하고 다양하게 언어로 접근하기, 그들의 흥미에 함께 반응해주기,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기 등이 그것이다. 나이가 어린 시각장애 아동에게는 어휘발달, 비구어 의사소통의 사용, 목소리 조절, 다른 의사소통 환경에 맞춰 언어를 다양하게 하기 등을 가르쳐야 한다.
보이지 않아도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6개의 점으로 세상을 읽는 시각장애인과의 의사소통! 이 의사소통은 깜깜한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모노드라마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공간적 존재인 그들을 닮아 나도 ‘시’가 되어야겠다. 그들에게 배경설명을 해주거나,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의 위치를 이야기하거나, 사람의 움직임을 말해줄 때처럼 ‘새로운 눈’을 생성해야 한다. 매일 지나는 곳도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 불편한 것을 견디며, 새롭게 인생 여행자로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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