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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의사소통, 장애와 함께하는 시간들 먼저 사랑이 되리

언어와 의사소통장애

본문

 
 
 
 
 
창밖에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아침에는 까치가,
세 시간 후엔 까마귀가 와서 쉬어갔네

함께 견고한 소나무 되어
잎의 손가락엔 시간을 매달고

새 시간이 밝아왔으니
소나무처럼
쉬어가는 넉넉한 품이 되리라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날엔
머문 곳에서 배운 지혜
세상에 나누어 주며
먼저 사랑이 되리라.

‘지금 여기’ 전문, 김화수. <푸른문학>. 2020 가을호
 
 
 
다시 확인하게 되는 언어의 소중함
얼마 전, 60대의 남성분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혹시 김화수 교수님과 연결이 될 수 있느냐고. 제가 김화수입니다, 라고 하니 돌고 돌아 어렵게 찾았다면서 이전에 교수님이 운영하시던 언어임상연구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OOO 아버지입니다, 라며 30대가 된 자폐범주성장애 아들에 관해 의논하고 싶다고 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당시 아동이었던 그의 얼굴과 함께 아이의 단어와 문장이 들리는 듯했다.
25년이 넘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아버지의 직업이라든가, 마침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행복하게 아들을 양육할 수 있게 되었다며 열심히 치료실에 아이를 데리고 오시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기억해내서 말씀드리니 조금 놀라셨다. 서울에 있는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와 직업재활 관련 상담센터를 소개해 드리면서 통화가 끝났다. 이름 하나만으로 목소리가 생성되어 들렸다는 건 생생한 감각으로 기억에 저장되었고, 그렇기에 기억인출 시 그리도 구체적일 수 있었을 거다. 그 짧은 통화시간은 기억 안으로 발을 딛게 한 선물로 다가왔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다 보니,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던 강남성모병원 재활의학과의 여러 환자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주로 후천적 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지닌 성인분들과 함께했다. 그분들의 소리를 찾기 위해, 잃어버린 단어를 찾기 위해, 문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알려졌듯이 장애의 원인은 후천적인 영향이 훨씬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사고 환자들이나 뇌졸중 환자들이 병원에 실려 왔고,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등의 치매 환자들이 내원했다.
환자들 가운데는 언어치료사가 바뀌는 동안에도 몇 년째 입원해 있으면서, 여전히 한 단어로만 말하거나 때로는 함묵증을 보여 언어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물론 수술 후 재활단계에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언어병리학’에서 ‘신경언어장애’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뇌혈관 사고(뇌졸중, 뇌출혈)’와 ‘외상성 뇌손상(교통사고, 낙상 등으로 인해 생기는)’, ‘치매(픽병을 포함하는 전두측두엽성 치매, 파킨슨병, 헌팅턴병, 진행성 핵상마비, 감염성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우반구 손상’ 등으로 인한 의사소통장애에 대해 연구하고 임상적으로 접근을 한다.
 
 
 
 
사실 영유아나 아동기부터 언어발달이 늦었고 여전히 언어 및 의사소통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보다는, 후천적으로 언어/의사소통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의 경우 치료를 위해 다닐 수 있는 기관은 많이 한정적이다. 병원을 계속해서 다니거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성인을 위한 치료센터를 다니면 좋겠으나, 일단 이 환자들은 언어나 의사소통보다는 마비와 함께 운동의 어려움 때문에 신체적인 재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 다른 성인환자들 가운데는 성대나 후두의 문제로 목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분들은 마비로 인한 실어증 환자들만큼 삶의 질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다. 전혀 생각지도 않게 자연스레 나오던 소리가 안 나온다든가 음질이나 음도, 음량에서 달라지니 왜 안 그렇겠는가. 
언어병리학, 언어치료학은 단어와 규칙, 의미와 문법, 내용과 형식(소리와 발음, 구문)뿐만 아니라, 화용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을 포함하여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는 인간이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말로 하는 소통이든 글로 하는 소통이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또 그들과 함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이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으로서의 학문에다 ‘인간’과 ‘장애’라는 변수가 더해진 오묘한 탄생! 이 학문의 숲으로 걸음을 디딘다는 건, 장애가 존재하는 임상 장면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나무와 하늘, 호흡과 소리, 내 곁에 있는 언어/의사소통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뇌와 언어를 깊이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르는 것일 터. 즉 언어병리학과 언어치료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임상에서 의사소통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얻은 것 중 하나는 ‘언어병리학’, ‘언어치료학’, ‘의사소통장애학’이란 학문이 응용학문이고, 학문 그 자체가 목적인 순수학문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응당 우리 학문의 지향점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의사소통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사소통장애를 예방하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사실 전공하는 학생들은 치료 실제에 바탕을 둔 여러 과목에 더해 관찰과 실습으로 1년 6개월 이상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의사소통장애의 치료 실제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사실 공허할 뿐이기 때문이다.
 
 
상실을 채우는 언어, 소통의 언어
정신의학계의 노벨상이라 알려진 시고니상 수상자(2012)이자 심리교감극단 자문교수인 살만 악타르(Salman Akhtar)는 6권의 시집을 발간한 정신의학과 의사이다. 그의 저서인 <사물과 마음>에서는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감안하고 그것이 발휘하는 인간의 다양한 층위, 거기에 작용하는 상징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전부 따져본다면, 정신적 외상과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있는 마분지 상자들이 상관이 있다고 말한다. 즉 그 인과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실감과 슬픔으로 인해 사람이나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기고, 커서도 뭔가를 버리려면 불안한 마음에 잡동사니를 쌓아놓고 살다가 그 연쇄반응으로 마지막에 수집까지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상실로 가득 차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울 수는 없는 것일까. 점차 자신을 알게 되고, 비어있는 자리에 따뜻한 언어로, 눈빛으로 말 걸어오는 사람이 많아져서 소통의 공기를 서로 불어 넣어줄 수 있다면, 어느새 상실감·불안·슬픔·장애는 사라지고 ‘의사소통’이라는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저서나 역서를 펴내면서 서문에 종종 쓰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재가 혼자 이룩한 시간일 리 없다는 것.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람들의 언어와 의사소통으로 형성된 습관(문화), 깊은 생각, 미래에 대한 꿈은 우리에게 새겨진 다채로운 무늬이자 영원히 빛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작성자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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