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마주한 공존의 풍경, <함께걸음>으로 되새기다 > 독자 모니터링


일본에서 마주한 공존의 풍경, <함께걸음>으로 되새기다

409호 독자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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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409호 독자 모니터링은 양명훈 님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소중한 의견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Q. 반갑습니다.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일어일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워킹홀리데이로 도쿄에 머물며 이론으로 배웠던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이 어떻게 하나의 일상으로 구현되는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본 생활을 하며 도시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배리어프리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데요. 특히 최근 방문했던 일본의 수어 스타벅스 매장 ‘사이닝 스토어(signing store)’의 경험은, 책으로만 접했던 지식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번 <함께걸음> 기사를 읽으니, 제가 어렴풋이 느꼈던 선진 복지 문화의 가시화된 모습을 마주한 것 같아 더욱 의미 깊게 다가왔습니다.
 
Q. <함께걸음>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독자님이 함께걸음을 구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변에 함께걸음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A. <함께걸음>은 일본에 온 뒤 처음 접했습니다. 일본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타벅스 ‘사이닝스토어(signing store)’에 대해 짧은 글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본 지인이 저의 생각과 같은 결인 잡지가 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당시 반가운 마음이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함께걸음>에 실린 내용들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한 개인의 삶과 사회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짚어주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에는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일본 공동체 기획은 제가 직접 보고 느낀 일본 사회의 단면들과 맞물려서, 개인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우선 사회복지 현장에서 애써주시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현장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상향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 409호는 일본 문화나 사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인 관광 정보 너머,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을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함께걸음>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해, 구체적인 상상력과 실천의 용기를 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Q. <함께걸음> 5·6월호에서는 일본의 장애인 노동공동체 세 곳을 방문하여 각 공동체에 대한 소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장애당사자들의 삶을 특별기획으로 다루었습니다. 기획기사에 대한 독자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A. 이번 특별기획은 제가 일본에서 체감한 일상적 포용이 어떻게 공동체라는 구체적인 터전 위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특히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존엄성은 세심한 제도적 장치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왓바에서 대표를 별칭으로 부르는 문화, 간바컴퍼니의 벽에 붙은 그림 매뉴얼, 센트럴키친이 알레르기까지 고려한 맞춤 도시락을 만드는 모습까지. 이 모든 디테일은 한 사람의 고유성을 존중하려는 깊은 철학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스타벅스에서 본, 수어 소통을 위해 설계된 공간 디자인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공생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사려 깊은 작은 실천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기사 속 장애 당사자들의 모습에서 자립을 넘어선 자부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5년간 빵을 팔며 지역의 명물이 된 카와사키 씨의 모습이나, 자신의 일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말하는 유리 씨의 태도는, 일이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는 일자리 제공이라는 양적 목표를 넘어, 노동의 의미를 고민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만, 이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현실적인 과제도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센트럴키친이 15년간의 적자를 감내한 과정이나, 왓바를 54년간 이끌어온 리더의 헌신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이 소중한 가치들이 흔들리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의 헌신을 넘어 더 많은 사회적 지지와 안정적인 시스템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들의 실험이 특별한 예외가 아닌,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함께 고민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Q. 이번 호에서 흥미롭게 읽은 코너 또는 기사는 무엇인가요?
A. 왓빵의 판매왕, 카와사키 히로미치 씨의 하루를 다룬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거시적인 철학이나 시스템을 넘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자전거 헬멧 버클을 채우는 일상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오조네역의 활기찬 목소리, 단골손님과의 교류, 퇴근 후의 취미 생활까지 기사는 키와사키 씨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가 단순히 장애인 근로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한 명의 생활인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가 거리낌 없이 손님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나, 그의 말이 손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그가 파는 것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였던 것입니다. 이 기사는 장애 유무를 떠나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Q. <함께걸음>이 보다 많은 장애당사자와 기관 종사자,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보완해 나가면 좋을까요?
A. 이번 일본 공동체 기획기사들을 깊이 읽으며, 저는 아름다운 성공 이야기 너머에 숨겨진 수많은 고뇌의 순간들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센트럴키친이 15년간의 적자를 감내하며 버텨온 시간, 왓바가 완전한 평등 분배라는 초기 이념을 현실에 맞춰 수정해야 했던 고민처럼, 현장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함게걸음>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공 신화나 모범 답안의 제시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치열한 고민의 과정 그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모든 현장은 늘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일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치가 부딪힐 때, 우리는 그 현실적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고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지혜를 모색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 왓바의 사례처럼 각자의 다른 상황을 헤아리는 실질적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기까지, 우리는 어떤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할까. 그리고 한 사람의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된 공동체가 그 리더의 헌신에만 기대지 않고, 구성원 모두의 약속인 시스템으로 단단하게 뿌리내리기까지, 우리가 함께 준비하고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독자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정답을 제시하는 매체는 많지만, 함께 고민의 무게를 나누는 매체는 흔치 않습니다. 어떤 형식이든 여러 가지 질문들을 독자들과 함께 풀어가는 것도 <함께걸음>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Q. 생활 속에서 장애와 관련해 불편하거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A. 일본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더 따뜻하고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개선점은 개인의 선한 마음에 기대는 사회를 넘어, 구조적으로 선을 행하기 쉬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명확하게 체감한 것은 바로 배려가 시스템화된 사회의 힘입니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지하철역에는 역무원이 상주하며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경사로 설치와 탑승보조를 통해 공공시설 이용을 돕습니다. 이는 특정 역무원의 친절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동일하고 예측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뉴얼이자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접근은 일본의 스타벅스 사이닝 스토어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맞이한 것은 한 직원의 특별한 친절함이 아니라, 누구든 환대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잘 설계된 환경 그 자체였습니다. 메뉴판을 가리키는 단순한 행위,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청각장애인 직원의 수어 인사에 매장에 비치된 영상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배운 수어 인사로 화답할 수 있는 경험. 이렇게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한 이유는, 회사가 장애와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 아래, 소통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고 시스템으로 풀어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는 저도, 바리스타도 특별한 노력 없이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과 유연한 관계를 통해 즉각적으로 서로 돕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깁니다. 이 인간적인 온기는 분명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다만, 이러한 차이를 통해 배려에 대한 두 사회의 다른 접근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가 때로는 경직되어 보일지라도 규칙과 매뉴얼을 통해 보편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면, 우리는 그 따뜻함에 기대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사회는 결국, 잘 만들어진 시스템 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일본의 사례를 깊이 들여다보며, 저는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더 착한 개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특별한 선의가 없어도 모두가 존중받고 편안할 수 있는 사회. <함께걸음>이 던져준 이 소중한 질문을 안고, 저 또한 제 자리에게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9·10월호 독자모니터링 참여 문의: 070-8652-8680
작성자글. 양명훈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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