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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실천 사이에서 길을 묻다

독일의 CRPD 10년을 되돌아보며

본문

독일이 장애인권리협약(CRPD, 이하 ‘협약’)을 조약한 지 10년이 됐다. 그것에 즈음해 지난 1월 21일에 독일의 국영방송사인 ARD에서 “통합에 대한 신화-10주년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협약 이후 10년을 되돌아봤다. 그 방송에서는 독일 CRPD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적인 통합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한다. ‘통합’은 많은 법과 규정, 그리고 정치인들의 ‘일요일 대화(‘잡담’의 주제로 여기는 정도)’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아직도 장애 당사자들의 실제 삶에서는 너무나 부족하다. 장애인 대부분에게 통합은 단지 아름다운 신화이며 현실에는 없는 꿈이다.

방송에서는 교육과 노동 영역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멜리(Amelie)는 브레멘(Bremen, 독일 북쪽 도시이자 하나의 주)의 통합학교 8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유치원 실습도 무사히 마치며 자신의 미래를 통합학급에서 준비해 가고 있다. 2009년 협약에 사인한 이후 몇몇 주는 학교 영역에서 통합을 급진적으로 적용했다. 브레멘의 경우 예전에는 18개의 특수학교가 있었지만 현재는 4개의 특수학교만 남고, 장애 아동의 83%가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아동과 같이 공부한다. 반면 다른 주, 예를 들면 바이에른(Bayern, 독일 남쪽에 있는 주)에서는 장애 아동의 26%만이 일반학교에 통합돼 있다. 이처럼 브레멘은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부터 통합적 구조화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 브레멘의 또 다른 아동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회의를 제기한다. 10세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니케(Nike)는 학교를 마친 후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또래 비장애 학생들로부터 소외돼 혼자 농구를 하며 기다린다. 결국 그 부모는 딸을 다시 특수학교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다른 일상은 직업 영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직업 영역에서의 통합은 협약에서 강조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여주는 지적장애를 가진 18세의 루카스 (Lukas)는 기관사가 되기를 원했고 통합학교에 다녔지만 그 종착지는 월 67유로(한화 8만 8천 원)를 받는 장애인작업장이었다. 이것은 독일의 학교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통합이 발전했지만 노동 시장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독일은 20명 이상의 근로자가 고용된 기업의 경우, 5%는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의무 기업 중 40%만이 의무 고용 비율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으며, 나머지 60%는 장애인부담금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치인과 기업가는 장애인부담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고용주들은 미래에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할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장애인 고용 수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 활동에서의 제외는 지적장애인에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장애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계속 증가해 30여 만 명에 이른다.

앞서 보여준 루카스는 기찻길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든다. 그리고 기관사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원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루카스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 수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방송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통합사회는 정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은 정말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신화는 아직도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방송을 보며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먼저 독일이 협약에 사인하고 장애인 통합이란 주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이란 시간 동안 독일 사회에 많은 부분 정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공영방송이 협약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사실과, 더욱이 그것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다룰 것이라는 내 생각을 깨줬다. 방송은 그래서 “독일 사회가 실패했다”라는 메시지보다 ‘통합’은 하나의 도달할 수 없는 허울 좋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결코 ‘사회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을 강력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통합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어나야 하며 그것을 위해 전 사회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이야기했다.

독일 방송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장애인권리협약을 2008년 비준한 이후 장애인의 삶은 변했을까? 우리는 과연 장애인권리협약을 교육과 고용을 포함해 사회 곳곳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는 헛된 신화만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통합은 실천을 필요로 하며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 문구는 독일뿐 아니라 지난 10년간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더 깊게 느껴진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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