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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데, 왜 활동지원시간을 더 주지 않는가?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연재

본문

대한민국 「장애인복지법」에는 15가지의 장애유형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틱장애처럼 15가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존재하는 장애유형이 있고, 단일 장애가 아닌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동시에 가지는 중복장애도 있다. 하나의 장애를 가지는 것만 해도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텐데,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까? 이번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연재에서는 중복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을 만나보며, 중복장애인에 대한 현행 활동지원서비스의 제도적 부실함을 파헤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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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장애 사례 1 : 시각+지적

경북 경주시에 거주하는 가연(가명)이는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동지원이 필요하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심리치료를 받거나 학교수업을 들을 때도 활동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연이가 처음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을 때, 국민연금공단(아래 공단)의 심사를 거쳐 받은 바우처 시간(한 달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8시간이었다. 아무리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고 해도, 한 달에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시간으로는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가연 어머니 “지금까지 활동지원서비스를 갱신하기 위해 공단 직원이 집으로 심사를 올 때마다 눈물로 호소했어요. 엄마인 저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가연이를 제대로 돌봐주기 어렵고, 가연이도 장애를 두 가지나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요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정에서의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자부담금이 산정돼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부담금만 계속 오르고…. 활동지원서비스는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적고, 이용하기 위해 내야 하는 금액만 오릅니다. 그래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정말 이게 국민이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서비스인가요?”

가연 어머니가 언급한 ‘이런 요인들’이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들이 처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한다. 가연이의 경우 (장애등급제 폐지 전 기준) 시각장애 4급, 지적장애 3급에 해당한다는 이유(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바우처 시간을 처음에 58시간밖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2년의 갱신을 할 때마다 공단 직원에게 부탁하고 사정해서 81시간으로 상승했고, 올해 1월부터는 115시간을 바우처 시간으로 이용하고 있단다. 하지만 가연이의 장애 정도를 생각하면, 한 달에 115시간만 이용하는 것도 턱없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평일에 학교와 심리치료에서 필요한 활동지원을 하루 8시간씩 받는다면, 평일 기준 3주만 해도 120시간이다. 주말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가연 어머니 “솔직히 지금 가연이에게 150시간의 활동지원시간이 제공된다고 해도,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장애인 이용자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죠. 그런데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보호자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가연이를 돌봐주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활동지원서비스가 정말 많이 필요한 겁니다. 한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때인 가연이가,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접하며 성장해 가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그런데 지금 현실은 학교와 심리치료를 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활동지원시간이 부족해서 집에만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 가연이와 비슷한 지적장애 ‘하나만’ 가지고 있는 이용자가 한 달에 ‘무려’ 130시간이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바우처 시간을 부여하는 건지 정말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가연 어머니가 지적한 ‘형평성의 문제’는 장애 등급과 정도의 문제를 따지기 전에,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짐으로써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 공단에서 하는 ‘형식적’ 심사기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지 심사하기 위해 혼자 수저를 잡을 수 있는지, 목욕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심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중복된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동거하는 가족이 있더라도 구성원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중복장애 사례 2 : 시각+청각

중복장애 중에서 ‘시각장애’를 공통분모로 할 경우, ‘시각+발달’, ‘시각+청각’, ‘시각+지체’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위 세 가지의 경우만 예로 든다고 해도, 이들의 활동지원을 해야 하는 활동지원사는 시각장애에 대한 활동지원뿐만 아니라 발달(또는 청각이나 지체)장애에 대한 활동지원도 해야 한다. 그럼 이용자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활동지원사 역시 좋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조원석(시청각장애인) “단일장애가 아닌 중복장애를 가진 사람이 생활 속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팔만 불편한 사람과 팔이 불편한 동시에 눈도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누가 생활 속에서 더 어려움을 겪을까요? 당연히 팔과 눈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결국 단일장애에 비해 중복장애를 가진 장애인의 경우, 삶에서 필수적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함에 있어 보다 많은 시간 내지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즉 단일장애인에 비해 중복장애인은 더 많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사실이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그럼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을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 활동지원서비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코디네이터와 주민센터 장애인복지과 직원에게 문의해 보니, 단일장애였다가 중복장애로 된 경우에는 등급변경을 위한 재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재심사를 받더라도, 중복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본래 받고 있던 바우처 시간에서 백퍼센트 시간이 추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복장애인만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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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응한 조원석 '손잡다' 대표 


조원석 “저처럼 시청각장애를 갖게 되면, 일단 앞이 보이지 않으니 이동하거나 무언가를 읽을 때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청각장애도 있다면, 활동지원사와의 소통은 어떻게든 되더라도 제3자와의 대화가 안 됩니다. 활동지원사는 어디까지나 보행안내를 해주고, 내 귀에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읽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말을 내게 전해줄 방법은 모릅니다. 그럼 통역을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활동지원사를 교체할 수도 있는데, 그 교체한 사람은 또 보행안내가 서툴 수도 있겠죠. 그럼 저의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시간(월 120시간)을 나눠서 두 사람을 쓰면 어떨까요? 누가 한 달에 60시간만 활동지원업무를 하겠냐마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이동지원을 받고, 또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통역지원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사람이 걸으면서 제3자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데, 이동과 소통을 하는 순간이 어떻게 시간대별로 딱딱 나눠질까요. 결국 저의 경우만 해도 동시간에 두 명 이상의 활동지원사가 필요하며, 단일장애가 있는 사람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훨씬 많으니 활동지원시간도 더 많이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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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중복장애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 현장 모습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이 있다. 이런 경우 이동지원과 통역지원을 활동지원서비스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동과 통역 두 가지의 지원을 모두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지원인력이 있다면 좋지만, 현재 활동지원사 양성과정에는 시청각장애를 포함하여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대한 지원 매뉴얼이 없다. 그래서 각 장애유형별로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활동지원인력을 두는 것, 즉 두 명 이상의 활동지원사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기엔 중복장애가 있는 장애인 이용자가 한 달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다.

 

꼭 ‘A+B’가 중복장애의 전부는 아니다

김승현 씨는 서류상으로는 ‘뇌병변으로 인한 지체장애’인이며, 복지카드에는 ‘지체장애 3급’으로 되어 있어 ‘형식상’으로는 단일장애인이다. 하지만 심장장애는 물론 뇌전증도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엄연한 중복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류상의 기준에만 집착하는 행정상의 문제로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김승현 “저는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요건 중 하나인,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겪는 불편함’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되는지 궁금해요. 저는 제가 가진 장애로 인해 평행감각이 없어서, 이동 중 넘어질 때가 제법 있거든요. 머리나 이마 등을 다칠 위험이 커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서류’로 내어주신 장애에 대한 진단서를 공단에 제출하여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는데, 공단에서는 제가 가진 장애가 ‘장애 외 장애’라고 하면서 활동지원서비스 이용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공단에서는 그 흔하다는 방문 심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서류로만 다 판단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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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복장애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당사자 자녀의 어머니들.

애간장이 녹아내린 듯 모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의학적 기준(의사)과 사회적 기준(공단)에서 바라보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너무 달랐던 걸까.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쓴다고 다 시각장애는 아니다.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탄다고 다 지체장애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 의학적이든, 사회적이든 명확한 기준과 정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김승현 씨의 경우처럼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거나, 스스로 운동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장애 외 장애’ 같은 진단을 내리는 것도 옳지 않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서 계속 넘어지는 등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김승현 씨가 언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김승현 씨의 경우처럼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장애, 즉 예를 들어 지적·자폐 등의 발달장애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장애인으로 등록할 때 ‘하나만’ 등록하라는 권유를 받으며, 중복장애가 있음에도 단일장애로 등록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에 대해서만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다른 장애(등록하지 않은 장애)에 대해서는 돌봄과 같은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이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복장애라고 해서 지금까지 언급했던 ‘A+B’의 유형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누가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앓게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장애인이었다가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 이미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가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추가로 가질 수도 있다. 잠재적으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듯이, 잠재적으로 누구나 중복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원석 씨의 말처럼,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더 제공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나라가 장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중복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중복장애인에 대한 제도적 지원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형식적’ 심사를 강조하는 위의 사례들에 비춰본다면, 중복장애에 대한 근거가 있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럼 공단 직원도 중복장애가 있는 가연이와 조원석 씨에게 활동지원시간을 더 줘야 하고, 김승현 씨가 가진 장애로 중복장애로 인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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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중복장애당사자가 직접 적고 그려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에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중복장애’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명확히 하여,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등 장애인에 대한 제도적·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법률에서 중복장애인을 위한 내용이 들어가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복장애인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야말로 가장 시급한 변화가 필요한 영역이다. 중복장애를 가진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더 안전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21대 국회에 강력히 촉구한다. 중복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시급한 제도적 개선을!

작성자박관찬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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