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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애계

읽기, 그 빛나는 여행 돕기

언어와 의사소통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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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수/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교수


 바로소나 소카다
이렇게 읽혀졌다, 문자가
이번에는 시를 읽는다
엠비씨가 치로
나로가서 후주
알 수 없는 언어들,
너와 내가 약속한 기호가 아니긴 해도
시 속의 그 상징들을 읽으며
엄청난 감동을 했다


글자를 새로이 담는 법을 꿈이 알려 준다


의미가 없이도
모르는 부호에서 욕심을 버리면,
어려운 상징에서 실존으로 살아남으면,
약속하지 않은 기호에서 감각만 지키면,


그렇지
너와 나
새로운 호흡 배워
새 노래 부를 수 있을 거야.


졸시, ‘난독증’,
국제PEN 한글작가대회 (2015. 7. 20)



단어 해독의 어려움을 느낄 때
위의 시는 5년 전 국제PEN 한글작가대회에서 발표한 시로, 글자를 못 읽게 된 꿈과 그에 대한 생각을 쓴 것이다. 꿈속에서 전혀 다른 글자로 읽는 경험은 내가 난독증이 생겼음에 틀림없다는 큰 두려움의 시간보다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뜻을 알아채고 감동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글자라는 시각적 상징 언어는 의미를 표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는 소리언어라는 기호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문자라는 기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말소리로서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글자언어(문어)나 손짓언어(수어)를 대신 하므로, 글자나 수어를 보완대체의사소통(AAC)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어치료사들 역시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재하고 교육하는 일을 한다. 물론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일의 일차적 통로는 교사나 다른 교육전문가가 되겠지만, 언어치료사가 읽기와 쓰기를 중재하는 방향은 읽기·쓰기·말하기·듣기라고 하는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양식을 음운·의미·구문·화용의 영역 모두에서 발달시키는 것이다.
문식성 습득은 언어발달의 전반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특히 문해장애의 위험을 가진 어린 아동들 가운데는 초기문식성 습득에서의 어려움이 음운인식이나, 형태소인식·실행기능·이해능력·작업기억 등에서의 어려움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학습장애 가운데 약 80%를 차지하는 읽기장애의 하위 증상이 ‘난독증(dyslexia)’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난독증이란 전반적으로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어 해독(decoding)의 어려움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부호를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 보니, 결과적으로 읽기이해에서 같이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언어이해 장애를 갖지는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진 ‘읽기’
학부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영화와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습장애 언어재활’이라는 과목을 가르칠 때는 아미르 칸과 아몰 굽테가 공동으로 감독한 ‘지상의 별처럼’이라는 인도 영화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2012년 개봉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다수의 인터넷 채널을 통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이샨은 난독증을 가진 아동으로, 마음을 다해 교육하는 니쿰브 선생님이 곁에 있다. “세상을 바꾼 보석 같은 사람이 우리 사이에 있어. 그런 친구들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어.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르고,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지. 세상은 그들을 반대했지만 그들은 이겨냈어.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했지”라며, 잘 읽지 못했지만 빛났던 사람들을 얘기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던 거다. 마음을 적시는 이샨의 그림과 니쿰브 선생님의 눈빛은 학생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언어와 의사소통장애, 나아가 장애를 지닌 사람을 교육하고 중재해야 하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책, 못 읽는 남자’는 하워드 엥겔(Howard Engel)이 쓰고 배현 선생이 번역하여 2009년 ‘알마’에서 펴낸 책이다.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추천한 작품이며, 워낙 책을 좋아하는데 ‘책'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으니 신나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절판되어 신판이 빨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난독증’과 비교하여 ‘실독증’을 설명할 때 소개한다.
작가인 하워드 엥겔은 원래 인쇄된 글에 중독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다.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줄은 알지만 읽지 못하는 병이 걸리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지성과 유머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 책은 내가 일상생활로 되돌아오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어떻게 버텨냈으며,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읽기와 쓰기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어떻게 길을 되돌아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중략). 내게는 그 무엇보다 나를 지금 여기까지 데려다 준 모든 계단들을 되돌아보며 기억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 길에서 내가 분투했으며, 그 험한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나를 도운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어디서 살든 어느 대륙에 있든, 평평한 공간만 있으면 책으로 뒤덮었다”고 하는데, “환경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독서”이며, 독서가 그의 “인생에 일부로 확실히 자리 잡지 않았더라면 그 시절에 살아남지 못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여느 아침처럼 일어나 옷을 입고 식사준비를 하고 나서, 신문을 집으러 현관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날 신문은 분명히 ‘세르보크로아티아' 글자로 인쇄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졸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처 응급실을 찾았고 거기서 그가 실제로 경미한 뇌졸중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좌측 후두엽 시각 피질의 협소한 부위를 다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실독증 말고도 약간의 시각장애가 생겼다는 사실도 점차 분명해졌다. 시야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손상된 뇌 부위의 반대쪽인 오른편 위쪽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형태와 색을 인지하는 데도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 모든 증세는 단어나 낱글자 또는 숫자를 눈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에 비하면 경미한 편이었다.
실독증을 뜻하는 ‘알렉시아(alexia)’는 원래 ‘단어 맹증(word-blindness)’을 뜻하며, 신경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19세기 후반부터 줄곧 관심을 끌어온 병이다. 읽기와 쓰기는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누군가가 글을 쓸 수는 있으나 그 자신이 방금 쓴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직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서증 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이란 순전히 시각적인 문제이다. 뇌졸중의 여파로 좌뇌에 위치한 시각 피질의 특정영역이 같은 쪽의 언어 영역과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엥겔 씨는 글자를 완벽하게 잘 '볼' 수 있으나 해석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엥겔 씨의 말을 더 읽어본다. “신문이나 병문안 카드를 읽으려 애쓰지 않을 때라면 실독증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하늘도 푸르게 보였고 태양도 병원 창문에서 빛났으며, 갑자기 세상을 낯설게 느끼지도 않았다. 실독증은 오직 내가 책에 고개를 처박을 때만 존재했다. 내게 실독증을 데려와서 ‘그래, 문제가 있지'라고 상기시키는 주범은 인쇄물이었다. 자연스레 독서를 피하고 싶다는 유혹이 생겼다. '무언가가 너를 괴롭힌다면 그걸 멀리하라. 그래도 지구는 돌고 돌 테니.’ 그런 해법이 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작가다. 더구나 끊임없는 독서가다. 어떻게 독서를 멈추겠는가? 병원에서 깨달은 것은 책읽기가 아무리 느리고 어려울지라도 – 지독히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 나는 어쩔 도리 없는 독서가라는 것이다. 뇌에 들이닥친 돌풍도 나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나는 열혈 독서광이다. 심장을 멈출 수는 있을지언정 독서를 멈출 수는 없다. 독서는 내게 뼈이자 골수, 림프액이자 피다.”


읽기는 작은 여행이다
언어나 읽기장애가 있다는 것은 다른 장애를 갖는 것보다 작은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침대에 책을 쌓아두고 사는 독서광, 또는 간식거리를 먹으면서도 식품설명서를 읽는 문자중독증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글을 못 읽게 된다면 어떨까. 읽기는 작은 여행이다. 또한 책 속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의 길을 마련해 주는 매체이다. 언어장애의 어려움을 중재하고 교육하는 사람, 즉 언어치료사는 읽기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돕는 자이다. 이제 다음의 말로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레아 아유야오(엥겔의 언어치료사 이름)는 엥겔 씨를 치료하면서, 그에게 장애를 들여다볼 독특한 창을 열어 주었음을 깨달았다.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진정한 파트너가 되었다.”
 

작성자박관찬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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