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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국회 발의? 「차별금지법」, 이제 남은 건 ‘제정(制定)’이다

「차별금지법」 국회 발의,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 시안 발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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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현장 모습

 

2007년 12월 12일 법무부가 입법예고안을 발표하고 2008년 17대 국회 임기만료에 따라 자동폐기된, 이후 대한민국의 여론을 극과 극으로 대립시켰던 한 법안이 있다. 찬성과 절대반대라는 전혀 다른 관점의 충돌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인권의 문제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가를 드러낸 증거가 되기도 했다. 지난 6월 29일, 또 다시 국회에선 역대 일곱 번째로 (거의)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그 다음날인 6월 3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도 하나의 시안을 발표했다. 시대적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국민의 88.5%가 차별에 반대하며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2020. 4.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고 의견을 밝힌 상황에서, 이번에는 기존처럼 자동폐기의 수순으로 유야무야 흘러갈 것 같진 않다. <함께걸음>은 이번 호에서 그 법이 어떤 의미인지, 이어지는 9월호에선 그 법의 찬반을 둘러싼 논란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도 차별하겠다는 집요한 집착, 그 맹신(盲信)들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정의의 규정으로 시작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11조 1항)’고 명문화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합리적이지 않은 부당한 언행과 대우를 차별로 규정했다. 이미 대한민국엔 차별을 금지한다는 법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발의와 발의까지의 과정이 논란부터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차별을 당연시하려는 대상, 즉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인권 그 자체로 보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공격의 대상이 바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포함 여부이다. 차별의 개념에 직접차별·간접차별·괴롭힘·성희롱·차별의 표시 및 조장의 광고가 적시돼 있는데, 거기에 예외를 두자는 건 ‘차별의 대상을 계속 남겨놓자’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그 중심에는 극우로 향하는 보수 개신교계와 수구언론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좌우익의 극렬한 대립 속에서, ‘일부’ 보수 개신교 계열은 독재정권의 보호 아래 교세를 확장해 왔다. 신자 늘리기와 교세 확장의 중요한 밑거름은 냉전논리 기반인 ‘반공·승공·멸공’의 남북대립 정세였고, 정권의 비호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서로의 권력을 지탱하는 방어막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민주화의 시대가 열리고 더 이상 북한 및 공산주의 자체를 적대시하는 것으로는 교회의 권력 유지가 힘들어지자, ‘반공·승공·멸공’을 대체할 만한 공격의 대상을 찾는 데 집중하게 됐다. 공격대상의 탐색은 긴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가장 손쉬운 대상으로 선택된 게 바로 성소수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평등법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계속 차별하겠다?

「차별금지법」은 법무부 입법예고안 초안이 발표된 이후, 2008년 노회찬 의원 등 10인 발의안을 시작으로 2013년 최원식 의원 등 15인 발의안까지 발의는 이어졌지만,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되는 수순만 밟았다. 심지어 두 차례는 발의자(국회의원)들 일부가 수구언론과 개신교계의 반발에 굴복해 철회의사를 밝히면서, 발의 자체가 무산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을 권고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일그러진 인권의식에 편승한 인권위원장 재임기간을 거치며 긴 침묵의 시기를 보내다가, 첫 입장 표명 14년 만에 새로운 시안을 발표하면서 인권위의 존재이유를 되찾아가는 모양새를 갖췄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빈손 국회’의 오명을 뒤집어쓴 20대 국회는 단 1건의 발의도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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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앞 도로변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한 정당 플랜카드가 걸리자, 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급하게 동성애 반대 내용의 플랜카드를 그 아래 설치하고 있다.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아래 평등법)」 시안을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저는 입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차별이 존재하는지, 혐오라는 게 얼마나 광범위하고 해악을 주는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전환됐다고 본다”고 밝히며 강한 입법 의지를 나타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평등의 원칙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 원리라고 헌법재판소가 선언했”음을 재확인하면서, “누군가의 권리가 소외되고 배제될 때, 함께 배제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기에 “우리의 삶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이다.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로, 야당인 미래통합당 초선의원들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들고 언론 카메라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바 있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는 성적지향을 제외한 ‘제한적 차별금지법’을 주장하고 있다. ‘차별이 전제된, 차별이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만 가능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차별의 조장을 합법화하는 법률에 ‘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겠다는 시도는, 2020년이 아닌 긴급조치가 난무하던 시절에 사고방식이 고정돼 있음을 반증한다. 

다양한 차별의 항목을 법 조항에 일일이 명문화한 이유는, 차별이 어느 한 가지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를 가진 서아시아 출신 50대 여성’이라는 짧은 이력만으로도, 그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성별·장애·나이·언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피부색·출신지역·종교·혼인여부 등으로 다양해지고, 거기에 사상과 정치적 의견·성적지향 등을 따지려는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이 연이어 발생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차별금지사유의 다양한 항목 추가가 계속되는 건, 인류가 역사적으로 깨달아온 차별의 경험을 보편적 관점에서 공유하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차별은 일시적으로, 일회성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건은 하나, ‘가장 핵심적인 조항은 무엇인가?’

평생을 차별에 저항하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시행을 외치고 요구해 왔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실질적 실효성 있는 법 내용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논의되고 고민해 왔던 긴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법이 왜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21대 국회가 돼 주면 좋겠다.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왜 「평등법」인가, 이 시안의 명칭 자체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명칭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금지법이든 평등법이든 ‘가장 핵심적인 조항이 뭐냐?’,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적인 바람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개념들이 명확하게 표현되고 강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언가를 내세우며 강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건 ‘우리나라가 세계 몇 위의 교역국’이고, ‘UN과 OECD나 G20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화자찬 일색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라는 주제만 등장하면, 그건 선진국들이나 가능하고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손사래부터 앞세운다.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매번 강변하면서도, 왜 ‘차별금지’에 한해서는 ‘개발도상국’인 양 뒷걸음을 치는 것일까. 

「차별금지법」이 정말 선진국들의 전유물일까? 멕시코 「차별방지 및 금지법」(2003), 칠레 「차별금지법」(2012), 터키 「차별금지법」(2016), 이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대국이고 선진국이라서, 차별금지를 이미 법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건가? 발의돼야 할 법이 국회에서 발의됐고, 시안을 제시해야 할 국가인권기관의 법안 내용이 거의 동시에 대한민국 안에 던져졌다. 국민은 대답을 들어야 할 자격이 있고, 그 대답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회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안과 평등법의 내용은 아주 먼 곳 타인들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독자 여러분의 생존과 직결돼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얼굴들, 친구들, 지인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 동료들, 그 중에 반드시 ‘1인’ 이상은 「차별금지법」이 절실하게 필요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서문에 밝혔듯이, 9월호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의 허와 실을 짚어볼 예정이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의 차별사유, 시안에 명시된 차별사유를 아래에 각각 열거한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아래의 사유로 인해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가 바로 고의성·지속성·반복성을 가진 차별행위이다. 독자 여러분 모두 스스로가 몇 가지에 해당되는지를 밑줄로 확인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 –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 제3조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 –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 제3조

 

작성자채지민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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