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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의 포기는 죽음의 방치입니다. 대통령님, 이젠 대답해 주십시오!

부양의무자기준, 산정특례, 그건 시한부 사형선고다

본문

글과 사진. 채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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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부양의무자기준이 도대체 뭐냐?’라는 궁금증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선정기준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기초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국가가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단, 그 기준은 생계와 주거를 따로 하고 있는 가족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해서,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가족의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 이상 있는 경우는 가족에게 부양의 의무를 전가함.’ 이렇게 내용 그대로 설명해도 이해가 쉽지 않다. 아예 간단하게 풀어본다. ‘탈시설을 실천해서 세상에 나온 나는 당장 기초생활에 필요한 수급이 절실한데, 나를 수십 년 전 시설에 버리고 사라진 가족이 지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 나를 먹여 살릴 가족이 있다는 이유임. 나를 버리고 연을 끊었던 그 가족에게 직접 찾아가, 나를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라는 게 부양의무자기준임. 나를 버렸던 가족인데도 이산가족인 양 어떻게든 찾아내, 그 가족에게 내 생존을 떠넘기고 당장의 내 생존을 국가가 무시하는 제도임.’


실제 사례, 그 의미는 “네 인생, 곧 끝난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며 장애인권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던 그 자리에 직접 나와서, 실명(實名)으로 자신의 사례를 밝혔던 홍OO 씨의 발언이 있다. 지금 이 문제점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적나라하게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15년 동안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해 왔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주체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가는 필수적인 제도로 활용해 왔는데) 어느 날 OO구청으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려면 ‘갱신신청’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갱신신청을 하지 않으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박탈당한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들었습니다. (…) 신청 결과,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중 무려 백오십일(151) 시간이 삭감되었습니다.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에게서 한 달에 하루 다섯 시간을 앗아간다고 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 중 어느 부분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지난 2019년 6월 18일,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 복지 사업안내 지침’이라는 걸 공지했다. 해당 지침에 따라 2019년 7월부터 ‘일상생활 지원분야’에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아래 종합조사)’라는 게 도입됐다. 기존의 인정조사에서 활동지원급여의 산정방식이 ‘종합조사’라는 틀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결과는? 19.52%라는 적지 않은 중증장애당사자들이 급여 하락자로 추락해 버렸다. 한 최중증장애당사자가 전해준 표현을 가져온다면, ‘더 무시무시한 게 산정특례인데, 시한부인생을 만들어놓고도 아무도 그 위중함을 알지 못하도록 포장해 뒀다’는 증언이다. ‘산정특례’, 그건 무엇일까?


생명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다시 간단하게 풀이한다. 종합조사 실시로 급여하락이 발생했다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 3년 동안만 유예를 해주겠다는, 그러니까 ‘당장 삭감하지 않고 3년만 더 그대로 준 뒤 깎아버리겠다’는 제도의 시행이다. 그 제도는 이미 ‘기적소리를 울리며’ 출발을 했고, 벌써부터 남은 기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숨 막히는 절규를 호소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산정특례로 직격탄을 맞은 이들의 현실은 아래와 같다. (공개발언에 나섰던 이들이며, 모두 중증장애당사자들이다.)

▲ 김진O, 2년 9개월 후 431시간에서 360시간으로 71시간 하락 ▲ 홍성O, 2년 11개월 후 401시간에서 240시간으로 161시간 하락 ▲ 서기O, 2년 3개월 후 431시간에서 330시간으로 101시간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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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특례라는 올가미에 걸려 휘청거리는 이들을 ‘장애인 활동지원 산정특례 보전자’라고 부른다. 장애당사자로서의 삶 자체도 숨이 가뿐데, 그 삶조차 내려놓으라는 ‘보전자’의 삶이 초침과 분침을 움직이며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위한다는 지침에 따라 ‘일상생활 지원분야’는 2019년 7월부터, ‘이동지원분야’와 ‘소득·고용분야’는 언제부터 장애등급제 적용폐지에 도입하겠다는 발표는 이미 나와 있는 상태다.

문제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아니라, 보다 공고화된 장애등급제 고착화가 아닌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이미 거리와 현장의 비명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이라는 건 ‘이의신청제도를 통한 개별적인 구제’가 전부일 뿐이다.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다시 요약하며 풀어본다. (최)중증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일상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선 활동(보조)지원이라는, 우리가 오랜 기간 익숙했던 ‘누군가의 도움’을 합법적으로 받는 제도적 뒷받침이 당연시됐다. 그런데 장애등급이 폐지된다고, 생소한 용어의 다른 기준들이 쏟아져 나왔다. 계산하기도 힘든, 관련된 분야의 공부를 했다는 이들마저도 무슨 말인지 모를 공식들이 장애당사자들의 삶을 옭아매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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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산정특례 사례를 발언하던 한 당사자가 눈물을 지우고 있다.


종합조사표를 이미 작성했거나 작성을 준비 중인 이들의 의견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내 삶을 이렇게까지 우울하게 되새겨야 하나?’, ‘어차피 빠져나갈 함정뿐인 이런 조사표에 내게 남은 장애를 모두 걸어야 하나?’ 같은 넋두리만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해답은? 해결책은? 지금 현재로선 각자 알아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애인권단체들의 절규와 규탄의 외침이 거리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이 엄중한 문제점을 해결할 의지가 정부에게도, 국회에서도, 관련 시민사회단체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나라에서 주는 대로 받지, 왜 이렇게 거리에서 시끄럽게 구느냐’라는 싸늘한 시선은 정말 잔인하고 무책임한 방관이다. 눈높이를 단 1분이라도, 입장을 단 30초만이라도 중증장애당사자들의 현실에서 헤아려 본다면, 이건 실제로 ‘이러다가 진짜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할 끔찍한 현실임이 분명하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65세라는 기준 문제로, 장애계가 큰 분노에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산정특례는 모두에게 전부 다 해당된다. 남 얘기가 아니다. 실제 현실이다. 각자 알아서 살아나라고 한다. 남은 건 ‘연대의 힘’밖에 없다. <함께걸음> 9월호 표지의 장면 그대로 지난 8월 7일 오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폐지 공동행동’ 이형숙 집행위원장의 삭발식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삭발과 항의의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불길에 기름을 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다 보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삭발에 앞서 이형숙 대표가 발표했던 ‘삭발투쟁 결의 및 투쟁동참 호소문’의 일부를 아래에 옮긴다. 일주일 전에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그 일주일 후에 딸이 왜 삭발을 해야만 했는지, 결론은 하나다. 절대로 ‘남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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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한 장애당사자들이 밧줄을 목에 걸고 절규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주일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큰 병 없이 여든다섯 해를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의사는 미리 정기검사를 했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 말이 본인은 숨 쉬는 것이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마 엄마는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파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도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엄마를 한 번만이라도 정기검사를 받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을 못한 것이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

한평생을 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엄마는 끝내 돈이 없어서 병원 검사 한 번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응급실에서 엄마를 진료했던 의사는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를 했습니다. 가난하면 무참히 병원도 못 가고 죽는 것을 당해 보니 정말 비참했습니다. (…)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입니다.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 않으면 국가는 살인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불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난해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을 권리로서 책임 있게 보장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님!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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