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과 민원의 차별, 이젠 법 그대로 시정돼야 한다 > 이슈광장


치안과 민원의 차별, 이젠 법 그대로 시정돼야 한다

치안과 안전, 장애당사자의 접근성 실태 파헤치다

본문

심각한 위협이 발생하거나 범죄가 실제 진행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을 먼저 떠올리게 될까. 어떤 경우든 신변에 위험이 닥치게 되면 가장 먼저 신고부터 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 파출소를 안전한 도피처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몸으로는 파출소에 접근할 수 없다면? 경사로가 없고 입구 전체에 턱이 있으며 볼라드까지 가로막고 있어서, 신고는커녕 출입문조차 두드릴 수 없다면? 2020년 대한민국의 장애당사자들이 어떤 치안상태에 살고 있는지를 파헤친, 아주 유의미한 전국 조사 결과가 발표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2020년 공동협력사업으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전국 각 지역의 장애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직접 몸으로 확인한 결과라서 더 큰 의미가 있는 이번 조사의 내용을 함께 들여다본다. 



법은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 의하면, 파출소·지구대는 설치율 72.5%, 적정설치율 63.4%로 편의시설의 질적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치율’은 적정성을 불문한 단순 설치여부를 말하고, ‘적정설치율’은 법적기준에 맞게 장애인편의시설이 실제 설치됐는지 여부를 가리킨다. 기준에 못 미친다는 조사결과가 이미 2년 전에도 나와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약칭 : 장애인등편의법)」은 공공건물 및 공공이용시설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제6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제16조(시설이용상의 편의 제공) ① 장애인등이 많이 이용하는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는 휠체어, 점자(點字) 안내책자, 보청기기 등을 갖추어 두고 장애인등이 해당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제16조의2(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 장애인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을 이용하려는 경우에는 시설주에게 안내 서비스, 한국수어통역 등의 편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시설주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제17조(장애인전용주차구역 등) ① 시설주등은 주차장 관계 법령과 제8조에 따른 편의시설의 설치기준에 따라 해당 대상시설에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하여야 한다.


편의시설이 ‘의무적으로’ 설치돼야 하는 대상은 ‘제1종근린생활시설’이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은 아주 먼 지역 어딘가에 있는 특별한 건물들이 아니다. 지역자치센터·파출소·지구대·우체국·보건소·공공도서관·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근로복지공단의 지사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중증장애를 가졌다 해도, 누구든 찾아가 자신의 일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야 하는 곳들이 이렇게 법으로 규정돼 있는 것이다.

대상시설에 설치해야 할 편의시설에는 ‘의무’와 ‘권장’사항으로 기준이 나눠진다. 권장은 가능한 한 설치하는 게 좋겠다는 선 정도로 이해되지만, 의무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마련돼야 하는 시설들이다. 주출입구 접근로, 의무시설이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주출입구 높이차이 제거·출입구(문)·복도·계단 또는 승강기 모두 의무사항이다. 점자블록·경보 및 피난설비, 거기에 휠체어 사용자가 접수 가능하도록 접수대 높이와 휠체어 앞부분(사용자 다리 부분)이 위치할 공간 확보 역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시설들이다.

이번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의 전국 조사의 대상은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였다. 거리를 오가다 보면 쉽게 확인 가능한 시설들인데, 따로 구분해야 할 각각의 성격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경찰조직은 ‘경찰청-지방경찰청-경찰서-지구대 및 파출소-치안센터’ 체계로 구성돼 있다. 경찰서는 행정단위, 예를 들어 ‘종로경찰서’와 같이 하나의 행정구역을 책임지고 있고, 각 동 단위마다 경찰관을 파견해 경찰업무를 1차적으로 처리하도록 만든 게 파출소이다.

지구대는 파출소 2~3배의 지역을 선택과 집중으로 관리하는 곳이고, 치안센터는 지구대 및 파출소 운영과정에서 주로 순찰 시 거점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순찰점검과 같이 필요할 때만 사용되는 장소이기에, 치안센터는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상주인원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찰관 수는 2019년 기준 120,918명이고, 17개 지방청·255개 경찰서·2016개의 지구대 및 파출소·1,065개의 치안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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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 접근에도 차별이 있다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관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주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부 경미한 사안은 자체처리가 되며, 직무수행의 일정 정도는 현장의 재량권이 부여된다. 경찰관 선에서 해결되는 지역 사안들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선 경찰관들이 ‘받아들이느냐, 외면하느냐’에 따라 민원인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하소연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눠지게 된다. 차별과 역차별은 여기에서 발생하며, 민원인이 경찰관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환경이 현장 치안의 잣대로 드러나게 된다.

장추련은 2020 국가인권위원회 시민사회 공동협력사업으로, 전국 70개 단체의 적극적인 활동계획에 따라 조사대상을 확정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전국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 2,990곳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영향으로 대상 축소가 불가피해 최종적으로 1,615곳(54%)의 현장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조사기간에 밝혀진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은 54%의 현장조사가 진행됐지만, 대중교통수단이 열악한 지역은 현장접근마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산악지역이 많아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 같았던 강원도에선 69%의 높은 진행률을 보인 반면, 경상북도는 16%, 전라북도는 14%의 극히 낮은 조사만 이뤄졌다. 이는 평소에도 (중증)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치안의 도움을 받을 길이 막혀 있다는 현실을 증명한다.

이번 조사에는 전국에서 264명이 활동했고, 이중 장애인 당사자는 207명(78.7%)이 참여했다. 전동휠체어·점자블록·목발 등이 필요한 당사자들의 입장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한 것이다. 조사활동에 참여한 장애인권단체는 70곳이고, 모니터링 조사는 아래의 일곱 가지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 장애인주차구역 : 유무 여부, 개수, 크기, 의무적으로 표시돼야 할 내용 확인

○ 주출입구 접근(경사로) : 유무 여부, 폭, 안전바, 기울기

○ 주출입구 접근(점자유도블록) : 유무 여부, 상태

○ 주출입구 접근(출입문) : 종류, 자동문 여부, 비상호출벨

○ 화장실 : 화장실 사용가능 여부, 사용이 어려울 시 이유

○ 민원실 : 접수대 사용가능 여부, 정당한 편의제공 종류

○ 이용 시 어려웠던 점


조사를 진행한 지구대와 파출소 중 43.8%는 장애인주차구역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바닥에 그림으로 표시만 해두었을 뿐, 법으로 지켜야 할 사항은 상당수 생략돼 있었다. 장애인주차구역은 비장애인주차구역(2.5m)보다 0.8m 넓은 3.3m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운전석에서 내려 휠체어 등의 이동을 준비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닥에 휠체어그림은 물론 별도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야 하고, 바닥면은 다른 주차공간과 다른 색깔로 구분돼야 한다. 하지만 안내판은 54.2%만이, 바닥색깔 다름은 34.2%만 지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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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주차공간이 있다 해도 [사진 1]처럼 다른 차량들이 점유하거나, [사진 2]처럼 주차를 불가능하게 하는 가건물이 들어서 있기도 했다. 이는 모두 단속대상으로, 단속의 1차 책임자는 경찰이다. 휠체어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심각하다. 우선 경사로가 지나치게 가파르다. 법적으로 경사로의 기울기는 1/18이며, 지형 상 곤란한 경우에는 1/12, 상시적인 보조인력 지원이 있을 경우에는 1/8까지도 가능하다. 높이가 10cm라면 경사로는 180cm 또는 120cm의 길이로 완만하게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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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처럼 경사로라고 만들어놓기는 했는데, 올라가서 휠체어를 돌릴 공간도 없고 그마저도 턱으로 막혀 있다. [사진 4]는 왼쪽에 위치한 경사로로 올라가기는 했는데, 정작 건물 입구는 턱이 설치돼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위해 출입구를 일원화한다면서 [사진 5]처럼 경사로를 아예 폴리스라인으로 막아놓거나, [사진 6]처럼 경사로 공간을 자전거 거치대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단속의 주체인 경찰은 아무것도 점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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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돌진 등의 사고를 방지한다고 석재 구조물을 설치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건 시각장애를 가진 당사자들한테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 만드는 불필요한 설치물인데도, 오히려 치안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강변되고 있다. [사진 7]의 유도블록을 따라가다가 다리를 부딪치는 건 누구의 책임이며, 같은 유도블록을 따라가다가 블록 끝을 가로막은 [사진 8]의 구조물 앞에서 시각장애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 9]는 차량돌진의 방지가 아니라, 전동휠체어 사용자의 출입 자체를 막는 용도라고 보는 게 타당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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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으로서 내가 인정을 받고 있는가

입구에 자동문이 설치된 곳은 조사대상의 10.4%뿐이었다. 89.6%가 여닫이문이라는 뜻으로, 이는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뿐 아니라 노약자들의 출입도 어렵게 만든다. 10.4%라는 112곳의 자동문도 비상호출벨이 설치된 곳은 41곳(33.6%)뿐이었다. 66.4%인 81곳에 비상호출벨이 없었다는 건데, 이는 비상 시 자동문이 운행되지 않거나 지진같은 재난 때 자동문이 수동화 됐을 경우 다른 대처수단을 찾지 못할 장애당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권장 아닌 의무사항인 화장실의 문제도 심각하다. 휠체어 사용자가 화장실 이용이 가능했던 곳은 전체 대상의 32.7%밖에 되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다 해도 [사진 10]처럼 높은 턱에 가로막히거나, [사진 11]처럼 지구대·파출소의 창고 대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높은 턱(단차)은 26.1%나 차지할 만큼 화장실 출입의 방해물인데, 대부분의 지구대·파출소 건물이 노후한 상태라는 이유로 개선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부산지역에서는 부산경찰청 ‘피해자보호계’가 조사에 함께 동행하며, [사진 12]처럼 공동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자체 개선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기에, 향후 조치가 주목되고 있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뿐 아니라, 장애당사자들이 항상 장벽으로 마주하는 게 바로 접수대의 구조이다. 은행이나 우체국을 갈 때마다 마주치는 이 장벽이 지구대·파출소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시선의 높이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들다. [사진 13]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모습으로, 의무사항인 편의시설은 [사진 14]처럼 높이와 공간을 갖춰 마련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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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센터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비상연락의 방법이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치안센터는 순찰 등의 용도로, 또한 상황 발생 시 현장 활동을 위해 임시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시급한 민원을 연결하기 위해선 비상연락이 손쉽게 가능해야 하고, 비상전화기는 당연히 자동연결이 돼야 한다. 하지만 [사진 15]와 같이 비상전화기가 설치된 위치까지 접근하는 게 어렵다. 더욱이 청각장애를 가진 입장에선 음성으로만 연결되는 비상전화는 무용지물이다. 치안센터라는 공간이 있다해도 치안의 공백이 발생하는 이 허점은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가 분명하다.

장애당사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기본적인 편의제공에는 점자로 된 안내책자·확대경·화상전화기·수동휠체어·촉지도·발달장애인 의사소통 책자 등이 있지만, 현장의 현실은 미흡함을 넘어 ‘그게 왜 필요한지’라는 반문으로 연결된다. 정당한 편의제공을 공무원들이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오히려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 많은 모니터링 활동가들이 큰 불편과 차별을 감수해야 했음을 조사결과가 드러내고 있다.

이번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모니터링’의 전체 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한 장추련의 이승헌 활동가는 “경찰청의 사전협조가 있었고 경찰청 차원의 협조공문이 각 지역으로 모두 보내졌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시설 파악을 위한 이번 모니터링 조사활동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거나 고압적으로 대하는 곳이 많았다는 점에 활동가들이 크게 놀랐다. 사전 협조공문이 있었는데도 모니터링단을 이렇게 대했다는 건, 평상 시 장애를 가진 민원인들을 어떻게 대해 왔을지 예상이 가능해진다”며, 모니터링 결과발표회와 정책개선 토론회에 이은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권고 집단진정의 진행을 예고했다.

장추련의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경사로가 없던 파출소에 수동휠체어로 찾아갔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장애인이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내 동네에서 내가 가장 가깝게 접근해야 할 곳에 내가 과연 당당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은 내 동네의 일원으로 나를 인정하고 있는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애당사자가 자기 지역에서 얼마만큼 주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중요사업으로 이번 조사의 가치를 부여한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이 사업에 직접 참여한 모니터링단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활동으로 장애인의 인권이 한 뼘이라도 나아갔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모든 분들,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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