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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한국수화언어법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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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슈 _ 한국수화언어법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

 

김철환(수화통역사)

 

1.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됐다. 2004년 한국농아인협회의 “수화는 언어다” 선언 이후 11년, 2008년 한국농아인협회의 초안 작업 이후 7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운동의 측면에서 본다면 4년만의 제정이다. 수화관련 법제정에 대한 장애인단체와 농인들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2011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일정기간 혹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법제정 논의를 했지만 이때부터 수화관련 법제정의 필요성이 농인들과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2011년 당시 수화관련 법제정에 불을 붙인 것은 장애인정보문화누리다. 이후 한국농아인협회도 수화관련 법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운동을 시작했다.

두 단체는 2012년 총선과 2013년 대통령 선거과정에 출마자와 정당에 수화언어법 제정 공약을 요구하는 등 운동을 벌여나갔다. 운동과정에서 4개의 법안을 입법발의 하는 등의 성과도 만들었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법 제정 논의는 세월호 침몰사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여야의 대치 등으로 2년 가까이 진행을 못했다. 그러다 19대 국회 막바지에 법 제정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지난 해 12월 31일 오전 11시 “한국수화언어법(이하 한국수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2월 3일 한국수어법이 공포됐고, 오는 8월 4일 시행을 앞에 두고 있다.

제정된 한국수어법의 목적은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이며, 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한국수어법에는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로서 한국수어의 권리, 농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국가와 국민의 협력이 명시돼 있다. 또한 농인 등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할 권리와 문화 등 생활영역에서 수화언어를 통해 삶을 영위하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등이 명시돼 있다. 특히 농인들이 요구하던 수화언어로 교육받을 권리도 명시돼 있다.

 

2. 한국수어법이 가지는 문제들

한국수어법의 제정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제정된 법으로 인해 농인의 언어정책에 많은 변화가 올 것이다. 수화언어와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수어법이 가지는 문제점도 부인할 수 없다. 첫째, ‘농인’과 ‘수화언어’에 대한 의료적인 관점이 남아 있다. 둘째, 법제정 운동 과정에서 농인들이 요구했던 내용 가운데 반영을 못한 것들도 있다. 셋째, 법률에 명시된 내용이 실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이다. 입법 예고를 마친 한국수어법 하위령(시행령, 시행규칙)에 농인들의 권리보장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부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으로부터 수화언권과 통역권을 정책으로 충분히 끌어내지 못할 경우 관련 법 조항은 사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법 성격의 문제이다. 기본법이냐, 일반법이냐, 언어권 중심이냐, 서비스 지원 중심이냐에 대한 문제이다. 법 성격의 문제는 법제정으로 정리가 됐지만, 서비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농인들의 주장이 아직도 있다. 다섯째, 법률 제정 시기의 문제이다. 노인성 난청이 늘고 있으며, 인공와우 시술이 보편화되고 통합 교육이 이미 정착됐다. 이 시기에 법을 제정한다 해도 영향력을 발휘 못하지 않느냐하는 우려들이다. 이상으로 한국수어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몇 가지 들었는데, 지면의 한계로 장애에 대한 관점의 문제와 수용이 안 된 농인들의 요구만 간략히 살펴본다.

 

▸의료적인 관점이 남아 있다.

첫째,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이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점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장애개념 모델은 의료모델(개인적 모델)과 사회모델로 대변할 수 있다(조원일, 2009: 5). 의료모델의 입장에서 ‘청각장애’는 질병 혹은 청각기관에 생긴 이상이므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인(聽人)’처럼 음성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며, 이를 위해 언어훈련이 꼭 필요하다. 당연히 수화언어는 사용해서는 안 되며, 농인의 정체성은 금기어이다.

반면, 사회모델에서는 농인들의 차별은 불합리한 사회와 정책 부재에서 생긴다고 본다. 즉, ‘농’의 상태는 신체적 상황이지 차별의 조건은 아니다. ‘듣는데 어려운’ 신체적 상황을 ‘장애’로 만든 것은 농인들의 언어나 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수어법은 사회모델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수어법이 농인들의 언어나 문화를 지원·육성하고 농인의 정체성 존중과 인식 개선의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수어법이 사회모델의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내용도 사회모델에 충실하고 있는가이다. 2013년에 발의된 4개의 수화언어 법률안도 사회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법안에서 의료모델의 관점도 있다. 이상민 국회의원안과 정우택 국회의원안에서 그러한 내용이 두드러졌다. 특히 이상민 국회의원안에서 의료모델의 관점은 법안 ‘목적’에 나타나고 있어 외형은 사회모델이지만 내용은 의료모델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정우택 국회의안도 수화언어 사용자에 대한 관점을 사회모델의 시각으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적 언어임을 밝히고 그 발전과 보급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청각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는 청각장애인의 언어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이상민 안, 제1조 ‘목적’)”

“‘농아인(聾啞人)’이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말한다.

가. 수화를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

나. 보청기를 착용하거나 착용하지 아니하고 청력만으로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청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정우택 안, 제3조 ‘정의’)”

 

다행인 것은 제정된 한국수어법은 위의 발의안에서와 같은 우려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럼에도 제정법에 “‘한국수어사용자’란 농인 외에 청각장애 또는 언어장애로 인하여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거나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법 제3조, 정의)”가 있다. 즉, 한국수어법도 의료모델의 관점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농아인들의 요구 반영이 부족하다.

제정된 법률이 농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을 했는지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농인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욕구에 따라 요구가 달라질 수 있어 기준을 잡기도 어렵다. 하지만 김철환(2016)은 발의 법안과 국회공청회의 내용을 분석틀로 하여 발의안과 제정안의 내용을 분석한 바 있다.

한국수어법 제정은 장애인단체들의 운동이 계기가 됐다. 2008년 만들어진 초안은 법 제정 운동과정에서 농인들의 요구가 더해지면서 대폭 수정됐다. 이렇게 수정된 내용들이 국회 발의안으로 나왔다. 이를 볼 때 발의안의 내용은 제정안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여기에 2015년 3월 2일에 열린 국회 수화언어법 입법 공청회의 내용도 비교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공청회에는 법안 연구책임자, 농인 당사자, 법제정 운동을 주도했던 관련자들의 진술(발언)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발의안과 제정안을 분석한 결과 제정 법률이 발의안의 내용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의안 간에 대립되는 내용이나 용어는 절충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화(手話)’ 용어의 절충이다. 한국수어법 제정 운동은 ‘수화공대위(약칭)’와 ‘수어법연대(약칭)’ 두 연대체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수화’ 용어의 경우 수화공대위는 기존의 용어인 ‘수화’와 언어의 의미를 강조한 ‘수어(手語)’의 합성어인 ‘수화언어’를 대표용어로 사용하였다. 반면에 수어법연대는 언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수어’를 대표 용어로 사용하였다. 국회는 이러한 입장들을 고려해 법률 제목을 “한국수화언어법”으로 하면서 본문은 ‘수화언어’의 약칭인 ‘수어’로 하였다.

분석결과 제정법의 한계도 있었다. 발의안의 내용에서 반영이 것도 상당히 나타났다. 첫째, 발의안이 수화언어의 공용어 지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제정법은 ‘농인’에 한정했다. 둘째, 발의안에 있는 수화연구소(수화문화연구원) 설치가 제정 법률에서는 반영이 안 됐. 셋째, 비장애아동의 수화교육실시 근거가 반영이 안 되었다. 넷째, 발의안에 있는 심의원회를 구성 규정도 제정 법률에 누락됐다.

제정법에서 발의안의 내용을 모두 수용하지 못한 이유는 예산확보, 기구 신규 설치, 정부 부처 간의 조정 등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발의안의 내용은 몇 년 동안 농인들의 운동을 통해 현실을 고려해 다듬어진 것들이다. 결코 과하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많은 농인들이 발의안의 내용은 입법이 돼야 농인이나 수화언어에 대한 관점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즉, 국회가 법률을 제정하면서 수화언어의 주체인 농인보다는 정부의 입장을 너무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3. 문제점들이 개선돼야 한다.

한국수어법은 농인을 비롯해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권리향상에 크게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제정된 한국수어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그대로 둔다면 농인이나 수화언어의 권리를 완전히 확보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말머리에 열거했던 문제들은 앞으로 하나씩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한국수어법에 나타나는 의료모델의 관점은 완전히 배격되어야 한다. 한국수어법은 사회모델을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정과정에서 반영이 안 된 내용들도 추후 개정을 통해 보완이 돼야 한다. 첫째, 공용어의 무제인데, ‘농인’ 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공용어’로 확대돼야 한다. 둘째, 전문연구소는 설치돼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수화언어나 농문화 관련 연구를 할 수 있다. 셋째, 일반 교과에 수화언어교육 도입의 근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반아동들이 수화언어를 제2외국어와 같은 형태로 학습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넷째, 상설 심시위원회 설치에 필요한 내용이 만들어져야 한다.

위와 같은 주장이 꼭 옳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인과 수화언어가 처해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이러한 내용은 반영이 돼야 한국수어법의 목적에 명시된 “농인과 수화언어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 향상”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둬 앞으로 한국수어법이 가지는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검토됐으면 한다.

 

□ 참고자료

김철환(2016). “한국수화언어법의 발의안과 제정안 비교분석”. 대구재활연구 39집

조원일(2009). “한국과 일본의 주요 인터넷 일간지에 보이는 장애관 비교 분석: ‘오마이뉴스’에 나타난 장애학의 다중 패러다임 관점을 중심으로”, 중복·지체부자유연구 제52권

작성자김철환 수화통역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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