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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배제된 주거권, 주거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장애와 주거, 도시환경을 이야기하다

본문

글. 남지현 / 밀리그램디자인 연구원
 
 
주거는 권리다
매일 갱신되는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주거권에 관심이 없겠지만, 안정감을 느껴야 할 삶터에서 버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주거권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주거에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과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는 주거권을 명시하고 보장하고자 했다. 주거권이란, ‘물리적·사회적 위험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주거기본법 제2조)’라 볼 수 있다.
주거권에서 명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1)은 아래와 같다.
 
① 점유의 법적 안정성
② 사회용역·시설·기반시설 등과 같은 편의시설의 접근성 보장
③ 자신의 경제 수준에 적정한 주거비용
④ 추위·습기·더위·비·바람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적절한 환경과 규모를 갖춘 물리적 주거환경
⑤ 주거지원 필요계층(노인·장애인·아동)에게 적합한 주거공간의 마련
⑥ 직장·문화시설·상권 등과 같은 생활시설에 근접한 주거입지의 적합성
⑦ 기본적인 시설에 대한 접근성
 
1) 주거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이용에서의 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확보하여야 한다. 또한, 주거권은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주거를 소유하는 것과 주거환경에 그치지 않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에 대한 권리와도 연결된다. 특히 주거지원 필요계층과 관련해서, 이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주거면적·필수시설 및 문화 시설과의 접근성, 지역사회 참여 방안들 모두가 필요하다. (참고 : 여경수, 2019 / 국가인권위원회, 2006)
 
주거권에서 명시하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옳다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거의 점유·주거환경·필수시설과의 접근성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는 곧 인간의 권리와 연결된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함을 느끼거나 좁은 공간, 필수시설 미비(화장실·부엌·목욕시설·상하수도·보일러 등), 부적절한 채광 등 주거의 필수요소들을 충족하지 못한 곳에서 거주한다면, 이는 곧 거주자의 인권과 권리 박탈과도 연결된다.
주거 점유와 주거환경 외에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복지관·행정복지센터·학교·영화관·편의점 등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시설들과 멀리 떨어져 있거나 접근하기 불편한 환경이라면, 이 또한 나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주거환경으로 인해 나의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거는 곧 권리인 것이다. 
 
 
주거권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현실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국가는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마련했으나, 실제 그 효과성은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주거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실제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관련 법률이나 정책의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주거권의 주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적 그물망을 피해갈 수 있는 상황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유의 법적 안정성은 단순히 지금 사는 곳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주 과정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 또한 포함된다. 장애인은 이주 과정에서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다.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에 가면, 부동산 중개인은 적절한 집이 없다며 대충 둘러대며 내쫓아버리기도 하고, 재계약 과정에서 ‘장애’를 약점으로 삼아 혹여나 주거환경을 망가뜨리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집을 갖기도 전에 집을 가질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것과 동시에, 장애로 인해 주거환경을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차별 또한 받는 것이다. 물론, IL센터가 등장하면서 장애인들은 이주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향후 거주할 집을 IL센터 직원들과 함께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지원 제도들은 지자체마다 제공 여부가 다르고, 장애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공간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적절한 환경과 규모를 갖춘 물리적 주거환경’과 ‘기본적인 시설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된 주거권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나라에서 지원하는 공공임대아파트나 민간에서 제공하는 거주공간은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주거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장애인의 다양한 삶을 반영하기에 매우 부적절하다.
구체적인 예로,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싱크대 높이는 매우 높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의 모습은 발달장애인이 보기에 구분하기 너무 어렵다. 전단지를 제작해 아파트 단지에 안내사항을 부착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에게 매우 불공평하다. 청각장애인과 함께 대화하며 걷기에는 단지 내 인도가 너무 좁다. 이렇듯 획일화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보통의 삶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주거권의 문제는 미비한 주거환경 때문에 겪는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는 ‘합리성’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표준화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고 수용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적, 경제적 낭비와 사회참여 박탈을 경험하기도 한다.
만약 다리가 불편한 A씨가 행정복지센터를 가기 위해서 30분을 걸어가야 한다고 치자. 이때 A씨는 행정복지센터에 가는데 수많은 인도와 마주할 것이다. A씨 혼자서 행정복지센터를 가기 위해서 수많은 인도는 걷기에 편해야 한다. 하지만 인도가 울퉁불퉁하거나 경사가 심하거나 심지어 계단으로 되어있다면, A씨는 그 길을 이용하지 못한다. 결국 A씨는 그 길을 돌아서 다른 길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걷기에 편한 인도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빌라가 밀집한 주거지역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A씨 혼자 행정복지센터를 가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A씨와 동행할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동행할 그 누군가는 활동지원사나 장애인콜택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활동지원사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시간을 맞추어야 한다. 시간을 맞추는 데 하루 정도 걸린다고 하면, A씨는 행정복지센터를 가기 위해서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다. 장애인콜택시는 그나마 빠르다. 하지만 택시를 타기 위해서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만약 행정복지센터와 A씨 집 사이에 걷기 편안한 환경이 마련되었다면, A씨가 원하는 때 하루 중 언제라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A씨 혼자 걸어가면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를, ‘걷기에 불편한 환경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동행하며 최소 1시간 또는 최대 하루를 대기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A씨의 시간 낭비가 발생한다. 시간 낭비로 인해, 신청 기간이나 신청 인원이 마감되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미비한 도로 환경으로 A씨의 서비스 이용권이 박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A씨의 손해는 누가 배상해 줄 것인가?
위에서 제시한 접근성의 사례는 ‘주거지에서의 기본적인 시설과의 접근성’을 의미하고, 이 또한 주거권 침해사례에 해당한다. 행정복지센터로 예를 들었지만, 사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는 주거권 박탈의 사례들이 많다. 주거권 박탈의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한 영향들이 장기적으로 축적된다는 것이다. 나의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주거환경에 오랜 기간 거주할 경우, 많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접근성이 낮은 주거환경은 많은 사회참여의 기회를 빼앗아간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주거권
주거권은 빈곤한 주거환경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거권의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의 삶의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과 사회참여의 박탈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A씨의 사례를 통해 장애와 주거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주거권은 다양한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보통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주거권 문제를 노인·아동 등 주거취약계층 전체를 포함하며 주거권을 제시하고 있어, 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주거권을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그동안 주거권에서 장애인이 소외됐던 것은 국가나 정부가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은 아니다. 주거권의 개념을 만들고 확장하는 주체들이 배제된 사람들의 삶과 욕구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직접 주거권을 이야기하고 주장해야 한다. 주거권이 박탈됨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었고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전달해야 한다. 또한 주거권이 단순히 우리가 사는 ‘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같은 폭넓은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논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주거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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