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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선택이 아닌 권리의 실천이다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의 의미

본문

 
 
 
2017년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거주시설은 1,517개소이고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30,693명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매번 ‘안전과 보호’라는 포장이 따라붙었지만, 그 실태와 폐해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지 오래된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0년 마지막 시점에 발표된 탈시설 관련 국회 입법 소식은 탈시설의 공론화를 공식화했고, 곧이어 터진 한 중증장애인 수용시설의 코로나19 집단감염과 코호트 격리조치는 탈시설의 당위성과 시급함을 보다 확고하게 재확인시켰다. ‘입법→계류→자동파기’의 악순환을 이번만큼은 벗어나야 하기에, 새로 입법된 법률안을 중심으로 2021년의 과제가 무엇인지 정리해 본다.
 
 
드디어, 이제야, 아직 갈 길은 멀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 2014년 우리나라 시설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우리 정부에 ‘장애인권 모델 기반의 탈시설화 전략’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시설의 한계와 인권침해적 요소를 지적하며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탈시설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던 시기에도, 이미 오래 전부터 탈시설의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국내외의 움직임이 존재했던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 당시 내놓았던 국정과제 안에도 탈시설 로드맵은 42번째 순서로 명시돼 있다. 국가운영의 모든 목표 중에서도 중간보다 앞서는 주요 실천의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실행될 거란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탈시설지원법)」은 현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사회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너무 늦게 나왔다’는 아쉬움과 ‘이젠 진짜 시작’이라는 기대가 뒤섞이는 가운데, 가장 의미가 깊은 건 대한민국 국회에서 ‘탈시설’이라는 용어가 법률의 용어로 공식 인정된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말이 법의 이름으로 등장한다는 건 지난한 이동권투쟁 끝에 ‘이동권’이라는 신조어가 공식용어가 됐던 사례와 비견될 중요한 사안이다.
“이렇게 많은 국회의원들이 장애와 관련된 법안에 이름을 올린 건 처음 봤다”는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박경석 상임의장의 발언 그대로, 국회의원 68인이 공동발의했다는 건 일단 법 제정까지는 가능하겠다는 기대를 낳게 한다. 하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경우가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국회 해당 상임위를 거치면서 주요 내용들은 다 빠졌다. ‘주요 기업들과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속된 요청 때문’이라는 의원들의 해명이 뒤따랐지만, 통과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김용균법’이라 불렸던 그 법으로는 정작 ‘김용균’을 살릴 방법이 없어졌다. 반드시 필요한 핵심조항들이 다 빠져나간 것이다. 국회에 발의된 ‘탈시설지원법’이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어떤 ‘누더기법’으로 돌변할지가 예측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시민사회단체 모두가 집중 감시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권리를 요구할 주인공이다
이번 ‘탈시설지원법’ 발의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건, 그동안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이 됐던 ‘탈시설’의 정의가 법률안에서 분명하게 명시됐다는 점이다. 법률안 제2조 5항은 탈시설이라는 게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를 모두 담고 있다.
 
‘탈시설지원법 법률안’ 제2조 : 정의
5. “탈시설”이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전체 4장, 53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 이 법안은 장애인 탈시설을 10년 안에 완료하기 위한 한시법이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수용시설’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까지, 또한 그 용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시기까지도 밝혀놓고 있다. 이 대목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실제 이루어져야 함을 뜻한다. ‘장애와 비장애’를 애써 구분 짓던 사회적 낙인이 소멸돼야 한다는, 이동권과 평등권 같은 모든 인권 관련 사항들이 70년 넘게 간과돼 왔던 ‘세계인권선언’ 정신의 실천으로 현실화돼야 한다는 요구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제재를 통한 강제가 아니다.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탈시설지원법’ 안에서 실현되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차별과 편 가르기의 낡은 습성에서 벗어날 대승적인 기회를 이 법의 제정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 법안의 제4조는 ‘장애인의 권리’를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다. 아래에 인용하는 법안 내용 중 굵은 글씨로 밑줄을 친 ‘권리가 있다’는 각각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탈시설지원법’의 가치는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탈시설지원법 법률안’ 제4조 : 장애인의 권리
① 장애인은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다.
②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주거형태 및 동거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③ 장애인은 자신의 거주지, 주거형태 및 동거인 선택을 포함한 삶의 방식에 관하여 스스로의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④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자립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⑤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서비스와 시설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이용할 권리가 있다.
⑥ 장애인은 자신의 지역사회 정착과 관련된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자기의 견해와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정부가 각성할 때까지 우리가 움직이겠다
‘탈시설지원법’이 왜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수용인이 110명이라고 알려진 거주시설 안에서 확진됐다고 처음 알려진 인원만 45명, 곧 이어진 건 대한민국 지자체들의 ‘만병통치약’과 같은 코호트 격리조치였다.
격리조치가 밝혀진 직후 취재를 위해 현장을 찾았을 때 가장 의아하고 불편했던 점은, 건물 어디에도 ‘폴리스라인’ 같은 노란색 경계 표시도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옆 아파트 단지와 빌라 주민들이 그 시설 건물 앞을 평소처럼 오가는데, 시설 건물 여기저기의 창문은 환기를 위한 듯 활짝 열려 있었다. 지역사회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선 확진자부터 별도의 의료시설로 이송시켜야 하고 음성판정자들을 따로 보호해야 하는데, ‘신아재활원’의 조치는 코호트 격리 이후 외출만 차단시킨 채 양성·음성 판정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기이한 상황을 계속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코로나19의 발화점처럼 언급되는 청도 대남병원 사태를 겪은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신아재활원뿐 아니라 2021년 1월에는 안산평화의집 집단감염도 이어졌다. 신아재활원의 코호트 격리조치에 대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긴급성명을 내고, “코호트 격리조치는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수용된 사람들을 포기하고 위험시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격리와 배제의 장치”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코로나19 확진 뒤에도 수용시설에 격리돼 있는 중증장애인들의 긴급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서울시청과 서울도서관 앞에 45개의 1인용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45개의 텐트는 확진판정된 45명의 수용인들을 뜻한다.
 
 
↑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신아재활원 생활시설에서, 방호복으로 무장한 검역요원들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
 
 
창립 이후 16년차에 이르는 기간 동안 ‘탈시설’ 문제 하나에 집중했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은, 이번 법안 발의와 집단감염의 상황을 보다 관심 있게 주시할 것을 요청했다. 발바닥행동의 조아라 상임활동가는 탈시설의 정의, 또한 모든 시설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보장 원칙이 이번 법안에 담겨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개조나 시설 소규모화가 아닌, 탈시설 자체의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권리보장에 있어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의사표현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증의 장애가 있거나 의료적 필요도가 높다는 이유로 모든 게 배제됐던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게 바로 ‘보편적인 삶’이라는 원칙이 확립되게 됐다. 배제·격리·분산이 당연시됐던 시설정책이 이번 법안 발의를 통해 10년 내 폐지로 결론 나게 된다. 이건 장애계가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본 과제가 된다. 탈시설은 선언적인 구호가 아닌, 인권 그 자체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법안이 실제 통과되더라도, 준비된 게 없는 정부라면 허둥대며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다. 발바닥행동 이정하 상임활동가가 핵심을 찍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약속 이행’이라는 것이다.
“68명의 의원들에 의해 입법발의가 됐다. 그런데 정작 정부발의안은 없다. 탈시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의지도 여력도 없다면, 정부는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탈시설지원법’에 적극 찬성의견부터 내고, 이에 맞는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 법 제정 후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각 지자체의 시설과 거주인 현황 분석을 통해, 실질적인 탈시설 지원체계를 갖추고 시설의 단계적 폐지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해야 한다. 시간이 모자란다. 혹시라도 법안 통과를 간과하고 있다면, 이 법이 반드시 통과되도록 총력을 다할 장애인권운동계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바란다.” 
 
작성자채지민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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