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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피해장애인의 현실, 5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사업 결산]

본문

 
장애인 학대의 악순환이 야기되는 원인
A씨는 과수원에서 신체적 학대와 노동력 착취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이다. A씨는 학대 현장 분리 이후 쉼터 입소 지원을 통해 심리치료와 같은 피해회복 지원을 받고, 직장연계와 주거지 마련으로 자립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성공사례였다. 그러나 자립 이후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일상생활의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점차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피해자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활동지원급여 시간을 확보했으나 이마저도 월 90시간에 그쳐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A씨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의 계약이 만료되면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B씨는 가족에 의한 임금 착취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이다. B씨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지원으로 학대현장에서 벗어나 쉼터로 연계되었으나 행위자와의 법적 공방이 길어지며, 쉼터 생활이 장기화되는 상황에 있었다. 피해자지원센터에서는 B씨의 욕구를 반영해 자립준비 쉼터로의 입소를 돕고, 이후 법률지원으로 지급받은 피해보상금으로 자립을 시도하였다. 자립 초기에는 근거리에 위치한 쉼터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자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유독 정이많고 사람을 좋아하던 B씨가 이웃으로부터 휴대폰 명의도용, 주거침입, 협박 등 재학대에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상근직원이 있는 체험홈으로 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사례에서 피해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서로 다른 듯하다. A씨는 불충분한 활동지원급여와 일상생활 조력인의 부재가, B씨는 지적장애인을 이용하는 이웃이 자립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위 2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결국 피해자에 대한 사후지원 시스템의 부재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학대 문제는 오래전부터 언론보도 등을 통해 피해의 심각성이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커녕 피해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렇듯 국가적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 2014년 전남지역 염전에서 수십 명의 장애인 학대 사건이 대대적으로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2015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학대 예방과 방지 의무가 가시화되고, 장애인 학대 예방기관의 설치근거가 마련되는 등 점진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학대 조사와 긴급지원과 같은 장애인 학대 초기 대응은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의 체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장애인들은 A씨와 B씨처럼 사회적 고립 및 재학대 발생 등의 문제에 다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지원의 현실 속 암초
장애인 학대의 대표적 사례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애인 염전노예 사건’이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이 사건을 초기단계부터 개입하고 지원해오며 학대 피해자 지원의 실천적 대안 마련을 위해 현장 활동가들의 머리를 모았다. 2016년부터 5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사업’을 수행한 것이다. 이 사업의 목적은 지역사회 안에서 피해자 중심의 권리회복을 위한 새로운 지원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연구소는 피해장애인의 회복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5년간 「피해자지원체계 기반연구」부터 「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방안 연구」 등 다수의 실천과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를 토대로 피해장애인에게 직접 지원을 제공하며 피해장애인 지원체계를 5단계(1단계 학대상담·신고, 2단계 긴급지원, 3단계 피해 회복지원, 4단계 자립준비지원, 5단계 정착지원)로 구체화하여 제시하였다. 또한 사업 수행지역의 조례 개정을 통해 피해장애인 쉼터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피해장애인 자립정착금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제도 개선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A씨와 B씨 사례에서 드러난 본질적 문제의 완전한 해소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학대와 관련한 공식적인 지원기관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하 옹호기관)과 피해장애인 쉼터(이하 쉼터)인데, 해당 기관들의 역할은 연구소에서 제시한 5단계의 피해장애인 지원단계 중 1~3단계에 주로 머물러 있고, 4~5단계의 지원 중 일부분만 지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을 위한 4가지 실천모형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옹호기관과 쉼터의 지원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옹호기관’은 피해장애인의 학대조사, 응급보호, 상담 및 사후관리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연구소에서 제시한 피해장애인지원체계 5단계 중에서 1~3단계에 해당하는 학대상담조사, 피해자 긴급지원, 피해 회복지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특히 사법지원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예산과 수행인력의 확보 수준에 따라 4단계에 해당하는 자립지원 서비스 연계의 역할까지도 수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 기관들은 1~3단계에 집중된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쉼터’는 피해장애인의 임시보호 및 사회복귀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장애인에 대한 심리·정서적 치료와 같은 피해 회복 서비스를 지원하고, 사회복귀를 위한 지역자원을 활용·연계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쉼터의 종사자 수는 평균적으로 3~4명에 불과하고, 24시간 운영되어야 하는 쉼터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사회복귀 지원보다는 단순보호를 목적으로 한 지원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고, 쉼터 퇴소 후의 지원체계가 불분명해 입소기간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다.
정리하자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역옹호기관이나 쉼터 중 4단계 자립준비지원이 일부 가능한 기관도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4~5단계의 자립 및 정착지원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피해장애인 지원의 역할을 일괄적인 형태로 특정기관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각 지자체별로 장애인 복지정책의 상황과 지원의 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재의 전달체계의 보완적 역할을 수행해온 피해장애인지원센터의 사업 종료를 앞두고 지난 1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의 공동주최로 열린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 방안 토론회’에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4가지의 실천적 모형을 제시하였다.
 
 
1안, 지역통합지원형. 옹호기관과 쉼터에서 4단계 자립준비지원의 기능을 확대하고, 5단계 자립정착지원 기능을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결합해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다.
2안, 쉼터강화형. 옹호기관은 기존의 역할에 집중하고, 쉼터는 사회복귀 지원 역할을 강화하여 쉼터에서 4단계 자립준비지원 기능과 5단계 자립정착지원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방안이다.
3안, 전문지원사업형. 옹호기관과 쉼터 외 별도의 지자체 피해장애인 지원사업을 통해 3단계 회복지원부터 5단계 자립정착지원을 수행하는 방안이다.
4안, 전문지원기관형. 피해장애인 지원 전문기관을 별도로 설치하고 기존의 쉼터를 전문기관과 결합하여 2단계 긴급지원부터 5단계 자립정착지원의 기능을 확대 수행하는 방안이다.
 
피해장애인 지원시스템 구축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토론회에서는 지역옹호기관장,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 공익 변호사, 정부 관계부처 등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위에서 제시한 4가지 모형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토론 결과, 3안의 별도의 피해장애인 지원사업 또는 4안 피해장애인 지원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데에 대다수의 의견이 모아졌다. 피해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피해 회복을 위한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제시된 3안과 4안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에 기인한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지원의 지속성이 결여될 경우 재학대가 발생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재학대 예방 차원으로도 현 전달체계와는 별도로 전문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앞서 제시한 1안 지역통합지원형에 대해서는 옹호기관에 집중적인 회복지원과 자립준비 기능을 포함할 경우,현장조사와 사법지원도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2안 쉼터강화형에 대해서는 쉼터가 자립준비와 정착지원의 기능을 포함하게 된다면 쉼터 장기거주로 인해 시설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밖에도 3안과 4안이 적용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기존 전달체계 간 서비스 중복의 문제는 긴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피해자 전담 지원기관이 마련되더라도 지역사회기관과 공공의 협력이 기본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 ▲새로운 전달체계의 확대와 더불어 현재의 전달체계의 질적 발전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 ▲피해자에 대한 회복과 자립을 위한 환경구축이 단계별 지원을 뛰어넘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발전모형이 필요하다는 점 등 4가지 실천모형에 대한 대안적 방안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토론회에서 제시된 4가지 실천모형은 5년간 학대피해장애인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의 산물이며, 향후 제도적 발전을 위한 주춧돌을 세웠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라 하겠다.
이렇듯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방안 토론회’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며 앞으로의 피해장애인 지원시스템 구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것인지 많은 메시지를 남긴 채 마무리됐다.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또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장애인 지원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대응이 아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피해자들이 학대로 인한 상처를 잘 회복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제는 논의를 넘어 적극적인 실천만 남았을 뿐이다.
작성자글. 조주희/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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