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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받을 권리

인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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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아래 연구소) 인권센터에서는 권익 침해를 경험한 장애당사자의 인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직장, 식당, 영화관, 복지시설 등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적인 대우를 당했거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가 빼앗긴 경험을 한 장애당사자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인권센터로 도움을 청한다. 이들의 가족과 지인 등 제3자가 사례를 제보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곳에서 근무하며 마주하게 된 장애인 인권의 현장 속 생생한 고민들을 본 ‘인권 이야기’코너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크고 화려한 글씨체로 “할인”, “공짜”, “선물”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는 곳이 있다. 활기찬 직원들이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상품들을 입구에 진열해놓기도 한다. 상품 쪽으로 눈을 돌리자 직원이 내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이곳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카페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는 핸드폰 대리점이다. 대리점 직원들은 원하는 것을 좋은 조건으로 가져가라고 거리의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기대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은 대부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방대한 요금제의 종류와 쉽게 접할 수 없는 단어들로 나열된 계약서로 인해, 대리점 직원의 충분한 설명이 동반되지 않으면 개통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교묘한 꾀임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람들은 ‘세상엔 공짜가 없다’라는 사실을 누적된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공짜’라는 말에 현혹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은 핸드폰 대리점에서 사용되는 교묘하고도 현란한 기술에 의해 경제적·정신적 피해 현장에 쉽게 노출된다. 비유적 표현을 해석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거나 상대적으로 사회적 경험을 누적할 기회가 적은 지적장애인들은 대리점에서 제시하는 조건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발표한 ‘2019년 장애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231건, 24.4%)가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51건이 상업시설에서 발생하였고, 그 중 33건이 휴대전화(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일어났다.1)연구소 인권센터에서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는 핸드폰 가입관련 피해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적장애인 당사자가 대리점에 직접 가서 계약할 때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리한 가입요구에 의한 것, 둘째는 타인과 동행하여 계약하였을 때 명의도용 피해를 입은 경우이며, 마지막으로 셋째는 지적장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명의도용 피해를 입는 경우이다. 이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인 명의도용 피해는 타인이 서명을 강요하거나 협박을 했다는 증거가 확보될 경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통해서 어느 정도 권리구제가 가능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유형의 경우는 해결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지적장애인 당사자가 핸드폰 개통 등의 목적을 위해 대리점에 방문하여 계약 내용에 ‘동의’하고 서명을 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통신사 측에 가입철회나 개통 취소 요구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핸드폰 개통사기 등으로 대리점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 사례 유형을 살펴보면, 주로 10만원이 넘는 고가 요금제에 가입되어 있거나 요구한 적 없는 핸드폰 기기가 적게는 2대에서 많게는 7대에 이르기까지 개통이 되어있기도 하다. (“휴대폰 케이스를 공짜로 주겠다”라는 식으로 지적장애인 당사자를 유인하여 2년 동안 핸드폰 변경을 7번이나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이 고장난 휴대폰을 고치려고 대리점에 방문하였는데, 새 휴대폰으로 교환개통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평소에 일만원대 요금제를 쓰고 있던 당사자에게 월 오만원이 넘는 요금제를 권유하며 최신 핸드폰 구매를 권유하기도 했다. 고지서를 받아본 당사자는 대리점에 찾아가 이렇게 비싼 요금제인 줄 몰랐다며 개통 취소를 요구했지만 이미 동의한 부분이고, 일정 기간은 해지할 수 없다는 근거로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다. 
 
대리점에서 제시한 대안 및 관련 법률
장애인 단체의 대책 마련 요청에 통신사는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요금제를 마련하겠다는 것과 직원들의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지만, 구체적인 내부지침이 마련되어있지 않거나 있어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영리행위를 취하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통신법)」 제58조(통신과금서비스 이용자의 권리 등)에 의하면 통신사는 이용자에게 통신과금서비스 이용일시, 구매·이용 금액과 그 명세, 이의신청 방법 및 연락처 등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이용자가 구매·이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하며, 전자문서를 포함한 서면 자료를 요청할 경우 그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제공해야 한다. 이때, 이용자가 통신과금서비스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제공되었음을 인지한 경우, 통신과금서비스제공자에게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자의 이의신청 및 권리구제를 위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률규정이 과연 지적장애인에게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난 2월, 최○○ 님은 연구소 인권센터를 찾아와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새 핸드폰으로 바꿔주겠다고 해서 대리점에 갔는데 요금제가 너무 비싸요”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10만원이 넘는 고가 요금제를 낼 수 없는 상황으로, 몇 개월 동안 미납처리가 되어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당사자는 ‘핸드폰 반납 조건’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사자가 쓰던 핸드폰을 반납하면 새 핸드폰으로 바꿔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한 고가 요금제를 일정기간 동안 사용해야 했던 ‘전제조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본 사례의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대리점 직원과 통화를 하였고 피해당사자가 지적장애인인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당사자에게 요금제 내용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고객님이랑 소통이 어려워서 제가 그 고객님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허락까지 받았어요.” 지적장애인 인권 피해사례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답변이었다. 이에 필자는 직원의 답변에서 두 가지의 쟁점을 도출해내고자 한다.
 
1. 직원은 당사자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사자 ‘대신’ 구매의사를 물었다.
 
2. 대리점 직원은 당사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 
 
 
대신 결정해주지 말고 잘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실제로 통신사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장애인이 후견인 또는 보호자와 함께 휴대전화를 개설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는 지적장애인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내려진 방안으로 보이며, ‘손해 보기 싫으면 혼자 오지 말라’와 같은 주장에서 장애당사자의 주체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적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을 대신하기 위해 많은 영역에서 ‘후견인제도’를 사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지적장애인은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지원을 받는 대신, 늘 누군가가 당사자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허락을 받는 위치에 놓여있다. 어쩌면 대리점 직원이 보호자에게 전화한 것은 그가 당시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는 피해 발생 원인을 당사자에게서 찾지 않고 행위자에게서 찾으면 다른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치 않는 핸드폰이 개통된 원인이 지적장애인의 이해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리점에서 계약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앞서 언급한 「정보통신법」의 권리구제 방법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 이것에 대한 해결책도 여전히 보호자와 함께 와야하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은 통신사 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아래 협약)에서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법적 주체성을 가진 인격임을,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시민임을, 모든 권리의 정당한 향유자임을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패러다임은 이미 진보하고 있다. 기존에는 장애인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잘 결정해주려고 했지만, 이제는 ‘장애인’이 의사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협약 이행에 관한 한국 심의에 따른 최종 권고 부문에서 위원회는 정부가 대체의사결정으로부터 지원의사결정으로 전환하기를 권고했고, 그 내용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동등한 법적권한의 행사를 제한하는 민법의 성년후견제도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자기의지와 선호를 바탕으로 자기결정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조력하는 제도의 개발 및 도입의 권고가 포함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충실히 받아들이고 이행했다면, 대리점 직원은 장애당사자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장애인 대신 허락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당사자를 위해 쉬운말 상담 서비스가 제공되거나 최소한 장애당사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공적 체계 또는 전문성 있는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소비자로서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 받을 권리
‘충분한 설명 제공’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앞서 소개한 사례의 최○○ 님은 상담 중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을 반납하면 싸게 (새 것으로) 바꿔준다고 전화가 왔었어요. 그래서 대리점으로 갔어요. 새 핸드폰 좋아요. 그래서 바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요금제가 너무 비쌌고 기계값도 제가 감당 못해요. 대리점에도 선생님처럼 저한테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당사자는 핸드폰 계약 당시, 본인이 내린 결정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와 앞으로 생길 변화에 대해 최대한 상세하고도 반복적인 설명을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권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차별’에 해당한다고 언급한다. 여기서 정당한 편의제공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활동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개선, 인적서비스의 제공, 변경, 조정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필자는 이 부분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상상력을 발휘하여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위와 같은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어떠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당사자와 ‘함께’ 고민하여야 한다.
 
장애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있다
장애는 개인에게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이 좋아질수록 긍정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법과 제도가 마련되는 것만큼 사회구성원들이 여러 가능성을 인지한 환경 내에서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가능성이란 우리가 마주하는 의사소통에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음 즉, 내가 상대하는 여러 고객 중에 다양한 유형의 편의제공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의미한다.
길을 가다가 외국인이 내게 길을 물으면 (최대한 아는) 영어로 답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관에 시각 또는 청각장애인이 관람객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편의점에 휠체어 타는 손님이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핸드폰 계약서의 내용 중 절반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유아 손님을 위해 유아용 식기를 마련하고, 음식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색칠도구와 그림종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우리는 알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동그라미, 네모, 세모 중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사다리꼴, 별, 역삼각형 등 다양한 형태를 갖춘 이들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마치 포켓몬스터의 ‘메타몽’처럼 타인의 모습에 맞추어 유연하게 서로를 상대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작성자글. 김영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간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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