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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설문을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탈시설이 되도록

시설 밖으로 나가는 길

본문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 발표와 비판의 목소리들
정부가 지난 8월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2041년까지 20년간을 탈시설 로드맵을 내다보는 기간으로 상정하였으며, 내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시범사업을 통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장애인 탈시설·자립 기반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 보장, 자립 경로 구축, 독립생활을 위한 사회적 지원 확대, 거주시설 기능전환, 거주시설 전문화 및 인권 강화, 민·관 협력체계 구축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탈시설 로드맵은 탈시설을 강력히 주장하던 이들에게는 탈시설의 대상이 제한적이고, 탈시설이 아닌 시설의 소규모화에 불과하며,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과 같은 정신적 장애인을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설에 자녀를 맡긴 부모들은 ‘사형선고’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 가면서 탈시설 로드맵을 반대하고 있다. ‘탈시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 로드맵을 수립하였다는 데는 의미가 있으나 탈시설을 주장하던 쪽도, 탈시설을 우려하던 쪽도 만족하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탈시설, 과연 ‘권리’가 될 수 있을까?
탈시설 로드맵 발표를 통해 독립생활 지원의 첫발을 내딛긴 했지만, 일상생활의 간단한 선택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온 중증장애인들에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탈시설이 과연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의 내용 대부분인 주거, 소득, 일자리 등은 신체장애인들에게 맞춰져 있고 시설 입소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신적 장애인을 고려한 부분이라고는 ‘후견’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자기결정권 침해로 후견제도 폐지를 권고한 마당에 적어도 정신적 장애인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장하듯 권리에 기반한 탈시설 로드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정신적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 유형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불충분하므로 모든 장애인이 진정 권리로서의 탈시설을 이룰 수 있으려면 저마다 다른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장애 유형을 고려하여 현 ‘탈시설 로드맵’의 전면적인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장애인거주시설’만 탈시설 하면 되는가?
「장애인복지법」에 포함되는 장애인거주시설은 2020년 기준 총 1,539개로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은 2만 9천여 명이다. 그런데 장애인거주시설 이외에도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시설은 다양한데, 정신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과 같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치된 정신건강증진시설로, 노숙인재활시설이나 노숙인요양시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상의 노숙인복지시설에도 대다수 입소자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 시설은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의 대상인 장애인거주시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9년 기준 정신요양시설 입소자는 9,252명,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가 65,436명이며, 2017년 기준 노숙인요양시설에는 7,389명이, 노숙인자활시설에는 2,577명이 수용 중이어서 거의 1만 명이 노숙인시설에 수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 노숙인시설 입소자 중 60%가 장애인이라는 보고가 있으나 (2017), 미등록 장애인이나 미등록 정신질환자를 포함한다면 실제 장애인의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이 되기에 노숙인시설은 버려지거나 방치된 장애인들이 입소하는 시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거주시설만을 대상으로 하는 탈시설 로드맵은 결국 장애인의 진정한 탈시설화를 위한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장애인거주시설만을 대상으로 탈시설 정책을 펴는 경우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더욱 열악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다른 유형의 시설을 찾아 헤매는 소위 ‘회전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접수된 사례 중에도 지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거주시설 입소 정원 초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역시 재가 지적장애인임에도 거주시설에 들어갈 수 없어 노숙인재활시설로 입소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이처럼 시설도 가정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실제 노숙인시설 입소자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시설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결국 장애인들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 뿐이라는 현실적인 우려를 낳게 한다. 최근의 ‘개사육장 노예 사건’이라든지 몇 해 전 ‘염전노예사건’ 등 지역사회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장애인들의 사례와 ‘창원 모녀 사건’ ‘방배동 모자 사건’과 같이 사망하거나 방치된 장애인의 사례도 종국에는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이 내몰리게 될 현실이라는 점 또한 냉엄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소외된 ‘정신장애인’
정신장애인들을 장애인 복지서비스에서 배제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악영향은 이번 ‘탈시설 로드맵’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제15조라는 필터를 가진 안경을 쓴 정부 당국에는 여전히 정신장애인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신의료기관이나 시설에 입소한 다수의 정신장애인은 치료가 필요해서가 아니라(치료가 필요하면 통원 치료를 받아도 된다) 갈 곳이 없어서 시설에 머무른다. 탈시설 계획에도 지역사회 기반 마련에도 정신장애인을 고려한 정책은 탈시설 로드맵 어디에 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게(leave no one behind)’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장애인 사이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탈시설 로드맵에서 통합적 관점이 실종되었다면 장애인을 배제하는, 시설화의 전제가 된 분리의 장벽은 더욱 세분화되고 정교해질 따름이다.
 
로드맵에 따른 구체적인 여정이 남아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여러 가지 한계점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 탈시설 로드맵은 탈시설과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지역사회 자립을 처음으로 정부 정책의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을 수립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로드맵’은 말 그대로 로드맵일 뿐,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지 실제 탈시설을 이행하는 데는 더 구체화 된 이행 계획의 수립과 정부뿐만 아니라 자치단체, 시설운영자, 복지종사자 및 장애당사자와 장애인단체들의 지속적인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탈시설 로드맵 발표에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도 또 열광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이다.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앞서 제기했듯이 탈시설을 일부 유형의 시설이나 일부 유형의 장애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모든 유형의 시설과 모든 장애인을 포함할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탈시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시설 폐쇄는 그중의 한 과정일 뿐이다. 부분적인 탈시설은 몇몇 시설들을 없애고 몇몇 사람들이 지역으로 나오는 효과는 있겠지만 시설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은 될 수 없다. 또한 특별히 정신적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실제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제도도 필요하지만, 자립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의사결정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 정신적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은 자립생활이 아닌 집에서 하는 시설 생활이 될 것이요, 권리의 주체로서 자립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가족들에게 돌봄의 부담을 전가하고 가족들의 우려대로 가족이 돌볼 수 없거나 부모가 사망하였을 때 지역사회에서 방치된 채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정신장애인의 탈시설 문제에 대해서는 개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 정신의료기관 등 정신건강 증진시설의 문제는 의료인들의 이해관계 문제, 지역 내 정신건강 복지서비스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있고,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해 장애인복지서비스 접근이 차단된 마당에 지역사회 서비스도 없이 탈시설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복지법 제 15조 폐지를 통해 정신장애인들에게도 보편적인 장애인복지서비스와 자립 지원 서비스들을 제공하여 자립 지원 대상으로 포함함과 함께 정신의료기관에서의 탈원화, 탈시설에 대해 별도로 로드맵을 수립·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누구나 당당히 시설문을 나설 수 있는 탈시설이 되길
이제야 탈시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느 사람에게는 너무나 길고 답답한 여정이 될 것이요, 또 어느 사람에게는 너무나 급박하게 다가온 현실이 될 것이다. 이제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들을 비롯한 여러 주체는 탈시설에 대한 열망을 지속 유지하면서 정부의 로드맵 보완과 이행을 요구하고, 구체적인 이행 과정에 참여하고 또 감시하면서 탈시설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또 지역사회 자립 지원 기반 확충 및 서비스 확충, 지역사회 인식변화 등 지역사회의 변화 없이는 탈시설과 자립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두렵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누구도 두려움 없이 시설문을 나설 수 있도록 탈시설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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