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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 패럴림픽

올림픽·패럴림픽 중계 문제

본문

 
손꼽아 기다리진 않으면서도 막상 다가오면 전 국민을 TV 앞에 모여 열광하게 만드는 축제가 있다. 바로 올림픽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이 1년 미뤄진 2021년에 개최되면서 체감상 더 빠르게 올림픽이 다시 찾아왔다. 다가오는 2022년 2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24회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이후 14년 만에 중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 이어 3연속 아시아권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 중국은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 세 번째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가 되었으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동계 및 하계 올림픽을 같은 도시에서 개최했다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한 가지 더 기대해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 바로 패럴림픽 중계에 대한 이야기다.
 
스포츠 스타로도 따내기 어려운 올림픽 중계권
2021년 여름, 경증의 시각장애가 있는 A군은 약속을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평소에도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를 챙겨볼 정도로 스포츠광이다. 그에겐 스포츠가 학업 생활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유일한 취미이다. 집에 도착한 A군은 분주했다. 오늘은 도쿄 올림픽에서 축구, 야구, 배구 경기가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거실에 있는 대형 TV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태블릿, 오른쪽에는 스마트폰 한 대를 배치했다. TV에는 축구, 태블릿에는 야구, 스마트폰에는 배구 중계를 각각 틀었다. 오늘따라 축구, 야구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차라리 8강행 티켓을 놓고 한일전을 펼치고 있는 배구 경기를 큰 TV 화면으로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인기 구기 종목끼리 비슷한 시간대에 경기가 몰려 방송국에서 배구 중계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중계권을 가진 지상파 3사는 동시간대에 축구와 야구만 방송했다. A군은 작은 휴대폰 화면을 통해 배구 경기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비장애인 올림픽에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중계권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고질적인 문제이다. 비인기 종목은 보통 지상파 3사가 아닌 스포츠 채널을 통해 중계되었으며, 그마저도 중계하지 않을 경우 방송사 별도의 온에어 채널 또는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을 통해 경기를 챙겨 봐야 했다. 이 경우 별도의 해설이 제공되지 않았다. 물론 온에어 채널에서도조차 중계를 해주지 않는 경기는 훨씬 많다.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요트 남자 레이저급에 출전한 하지민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매체에서도 단 한 줄을 언급해주지 않았다. 결국 본인 스스로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국 땅에서 애국가 울리게 만든 게 자랑’이라는 한 줄 평과 함께 자신을 홍보하기도 한 웃픈 사연도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잠시 이슈가 되었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요트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 레이스에 진출하였음에도 국내 방송사들은 요트 경기에 대한 중계 일정을 잡지 않았다.
 
이처럼 콧대 높은 방송국의 중계권을 따내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배구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랭킹 1위이자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팬층을 확보한 김연경 선수를 필두로 김희진, 양효진, 박정아 등 많은 팬을 보유한 여자 배구는 시청 수요층이 많은 편에 속한다. 또한, 김연경 선수의 마지막 올림픽이자 일본을 상대로 한 한일전에서 8강 진출을 확정 짓는 중요한 경기였다. 그런데도 지상파에서는 여자 배구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지상파 3사는 한국과 미국의 남자 야구 오프닝 라운드 B조 2차 경기, 한국과 멕시코 남자 축구 8강 경기를 중복해서 중계했다. 실제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기준을 알 수 없는 방송국의 중계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많았으며 중계권 남용, 중복 중계에 대한 ‘전파 낭비’ 논란까지 불거졌다.
 
개막식만 남기고 떠난 패럴림픽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올림픽 폐막식 끝나고 패럴림픽 개막식은 몇 번 봤던 것 같은데… 경기를 본 기억은 잘…….”
 
아무리 스포츠를 좋아하는 A군도 패럴림픽은 잘 챙겨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애초에 TV를 통해 패럴림픽을 제대로 시청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올림픽 중계권 문제에 있어서 패럴림픽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인기/비인기 특정 종목이 아닌 ‘패럴림픽’이라는 장애인 올림픽 자체가 방송가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비례대표 김예지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방송 3사 중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도쿄 패럴림픽의 중계는 전체 도쿄 올림픽 중계의 7.3% 수준에 불과했다. 전체 올림픽 중계가 2만 2천 510시간으로 가장 많았던 방송국은 공영방송국인 KBS1과 KBS2였고, 그 뒤로 MBC 1만 2천 980시간, SBS는 1만 2천 910시간을 기록했다. 방송국 3사가 총 4만 8천 시간을 넘게 올림픽 중계에 열을 올린 것에 반해, 패럴림픽 중계는 방송 3사를 모두 합한 시간이 3천 시간을 겨우 넘겼다. 10분의 1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중계 시간만이 아니었다. 그마저도 경기 중계가 아닌 하이라이트 형식의 프로그램 비중이 크고, 방송 시간은 주로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대였다.
 
지난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패럴림픽에 대한 중계권 논란은 있었다. 자국의 패럴림픽 경기 중계에 공영방송인 KBS1과 KBS2는 총 25시간, MBC는 17시간,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SBS의 경우 30시간을 편성했다. 이와 같은 편성 계획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패럴림픽 중계에 대한 국민청원이 3일 만에 52건이 올라왔다. ‘자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조차 중계해주지 않아 시청할 수 없는 게 말이 되냐’는 반응이었다. 평창 패럴림픽을 중계한 다른 나라의 경우, 일본 NBK가 62시간, 미국 NBC가 94시간, 영국 채널4가 100시간을 할애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방송국의 사정은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계권’을 둘러싼 사정은 비슷해도 패럴림픽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미국의 지상파 NBC는 도쿄 올림픽 개막 전 ‘도쿄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대한 접근성 향상 계획’을 발표하였다. 패럴림픽 TV 채널 중계에만 200시간을 할애하였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패럴림픽 방송에 최소 1,200시간 이상을 중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도쿄올림픽이 폐막한 시점까지도 뚜렷한 도쿄 패럴림픽 중계 계획을 밝히지 않은 국내 방송사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국인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도쿄 올림픽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패럴림픽 중계에 힘을 쏟았다. 또한, 개최국답게 패럴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많은 전략을 세웠다. 패럴림픽 개최 전부터 중계 종목, 특집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주요 경기와 방송 일 정을 뉴스, 특설 사이트 등을 통해 공개했다. 자막과 음성해설 제공은 물론이고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캐릭터가 일부 스포츠를 중계·해설하였다. 패럴림픽 관련 질문에 답하는 인공지능 챗봇도 도입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3명의 장애인 리포터가 출전 선수들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모두 공영방송국인 NHK에서 진행한 자체 프로모션이다. 일본 NHK는 자국 올림픽뿐만 아니라, 지난 평창 올림픽 때도 일본 선수들의 메달 획득이 유력한 종목은 매일 생중계를 했으며, 모든 중계에 수어방송을 함께 내보낸 바 있다.
 
패럴림픽 중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방법의 문제다
물론 방송국만의 사정도 있다. 방송국은 광고 수익으로 경영이 이루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이 무엇보다 치열한 곳이다. 방송국끼리 갈등을 빚으면서까지도 중계권 확보를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는 결국 ‘돈’이 되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올림픽 스포츠 중계를 통해 대기업과 스포츠 마케팅 업체로부터 많은 광고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높은 시청률이 보장되는 경기에 싹쓸이 편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장애인 올림픽이 시청률 경쟁에 가려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패럴림픽의 경우 경기 종목 수나 선수층이 올림픽보다 현저히 얕고 메달 획득의 가능성 또한 낮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중계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청자의 시청권이 박탈당하고 있다. 패럴림픽 중계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방송에 관한 제반 사항을 규율하고 있는 방송법 제2조에서는 ‘보편적 시청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 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특히나 KBS처럼 방송법에 따라 운영되는 공영방송일수록 일반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패럴림픽 중계에 할애해야 할 책임이 있다.
 
패럴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적다’라는 변명은 때로는 좋은 포장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대중의 관심에 따라 중계가 이루어지기보다는 방송국이 어떤 경기를 중계하느냐에 따라서 대중들의 관심이 달라지는 것에 있다. 또한, 방송국의 역할 없이 하루아침에 패럴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갑자기 생겨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패럴림픽의 중계 및 편성, 방송 횟수, 방송 시간대, 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에 대한 방송국의 정성만 있다면, 패럴림픽에서도 충분히 또 다른 스포츠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패럴림픽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도전과 용기, 차별과 한계가 없는 스포츠 정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패럴림픽을 중계함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화합과 소통과 같은 긍정적 가치들이 ‘중계권’에 가려 빛을 못 보지 않도록, 방송국도 장애인체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역할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패럴림픽 폐막식까지 긴 호흡으로 달려올 수 있어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진정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올림픽의 부속물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패럴림픽이 방송국의 전파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한편, 2022년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은 오는 3월 4일 금요일부터 3월 13일 일요일까지 10일간 개최된다.
작성자이은지 기자  lonely_lo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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