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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57세 남성들, 운전을 못하게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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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이슈 - 57세 남성들, 운전을 못하게 해야하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얼마 전 봉평터널에서 일어난 버스추돌 교통사고로 소중한 4사람의 생명이 희생당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있었다. 사고 가해자는 버스를 운전하는 57세 남성 운전자였다. 사고 발생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대형 차량의 난폭 운전, 과속을 막기 위한 제도적, 기술적 장치의 도입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언론 보도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요즘 고속도로에는 대형차량의 속도제한장치 불법해제 여부를 집중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고, 버스 등에도 전방의 위험 상황을 감지해 자동으로 차량의 속도를 줄이고 정지하도록 하는 첨단 운전보조장치 부착을 의무화시켜야 한다는 논의, 혹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 만큼 차량 운전자의 휴식을 의무화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다각적인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로부터 2주 후 부산 해운대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중앙선을 침범해 보행자와 차량 6대를 들이받아 3사람이 사망하고 14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가해자는 53세 남성 운전자였다. 사고 발생 이후 우리사회는 사고 운전자가 뇌전증을 가지고 있고, 뇌전증으로 인해 운전 중 발작으로 의식을 잃고 사고가 난 것으로 논의의 방향을 몰아갔다. 뇌전증장애인이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운전면허증을 발행하는 것이 사고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수많은 보도와 댓글들이 난무하며 뇌전증장애인들은 운전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두됐다. 운전 도중 발작이 일어날 경우 대형 교통사고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뇌전증의 발작 경험과 가능성 등에 대한 의사의 소견에 따라 운전면허 발행 가능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해운대 교통사고의 가해 운전자가 국민들이 강렬하게 확신했던 것처럼 운전 도중 발작으로 의식을 잃었던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저지르고 뺑소니를 시도했던 것이라는 경찰의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다.

시비의 불씨를 던져보고 싶은 것은 누군가에게 운전을 하도록, 혹은 운전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사회 집단적 의식의 흐름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얼마나 가혹하고 불공평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57세 남성 운전자가 봉평터널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냈다하더라도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성립되지 않는 57세, 남성, 혹은 가해자의 출신지역이나 신체 특성을 지목해 그런 사람들은 운전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단순한 대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독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연루된 사건에서는 그 사람이 가진 다른 배경이나 원인들은 간과한 채 평범하지 않은 ‘장애’에 서둘러 집중해 사건의 원인을 단정하고, 해결 방법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심리학자인 엘런버샤이드는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미친’, ‘가학적인’등과 같은 명칭을 붙임으로 그런 사람을 ‘우리 선량한 보통 사람’ 집단과 원천적으로 다른 존재로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그런 나쁜 행동은 우리 선량한 보통사람이라면 벌이지 않을 행동이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만 선별해서 통제하면 그런 행동에 대해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구별해내려고 하는 단순한 사고는 2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첫 번째는 사회적인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운대 교통사고의 사고 원인이 가해자의 뇌전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뺑소니라고 하는 개인의 일탈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이미 우리사회의 수많은 뇌전증장애인과 가족들은 난무하고 증폭되는 편견 속에 죄인 아닌 죄인이 돼 버리고 말았다. 13년 전 대구에서 지하철 화재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경찰이 피의자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비공식적으로 흘린 가해자의 ‘지체장애’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사회가 해당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고, 해결 방법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57세 남성이 교통사고를 냈으니 앞으로 57세 남성들은 운전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손쉬운 처방을 내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돼버린다. 57세 남성들이 운전을 멈추면 봉평터널에서의 버스추돌사고와 같은 사고는 앞으로 재발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참혹한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사회가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가해자의 소수자적인 특성을 찾아내서 거기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장애’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동등한 사람들이 저지른 사건의 진정한 본질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회  cowalk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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