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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가득 메운 ‘우리는 미쳤다’는 목소리... 모든 공간이 ‘매드 프라이드’이길

2024 매드 프라이드 서울,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선언하다

본문

 
“다들 미치는 세상 아닌가요?
 
오늘 24일, 서울시의회~종각역 일대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존재를 선언하는 ‘매드 프라이드 (Mad Pride)’ 행사가 개최되었다.
 
매드 프라이드(Mad Pride)를 직역하면 미친 자신감, 미친 존재감 등으로 ‘미쳤다’는 것이 정신질환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미쳤음’을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주장하며 그 정체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운동성 용어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성소수자 비하 단어인 퀴어(Queer)나 흑인을 비하하는 블랙(Black)을 당사자들이 받아들여 흔히 쓰이던 의미를 전복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매드 프라이드 행사는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최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바 있다. 스스로 ‘미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대중과 사회를 향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외치며 거리를 누볐던 것. ‘잠재적 범죄자’, ‘위험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평생에 걸쳐 받아왔던 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외쳤다.
 
사진설명: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원용 침대를 끌고 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베드푸쉬(BED PUSH)’는 강제입원, 강제치료 중심의 폭력적인 정신건강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 다시 모여 대중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미쳤습니다. 그런데 다들 미치는 세상 아닌가요?”
 
첫 행사 때는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올해는 더 나아가 ‘모두 함께 미치는 세상 아니냐’며 보다 더 적극적으로 광기의 인정을 요구하며 연대와 교류의 손길을 내민다.
 
오늘 행사에 참석한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이돈현 활동가는 “한때는 내가 왜 아플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행사를 통해 정신장애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자신을 ’이상하고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한 왈왈 씨는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계”라며 타 장애유형이 누릴 수 있는 지역사회 내 복지서비스들을 정신장애인들도 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힘겨웠던 당사자들이 자신의 고통에, 자신이 겪은 배제의 경험에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이며 비슷한 경험을 한 동료당사자들과 힘을 키워간다.
 
누군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당사자도 있었다. 어머니는 매드 프라이드 거리행진으로 인해 차선 하나를 다 쓰게되어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든다며 지나가는 모든 차들을 향해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손짓하며 외쳤다.
 
손성연 공연예술 독립기획자(미친 존재감 프로젝트 기획자)는 "완치되고 싶은 마음과 미친 그대로를 존중 받고 싶은 마음 두 가지 사이에서 매일 길을 잃어버린다"며 "이것이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므로 매드프라이드를 계기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손성연 기획자의 발언문 전문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참 많습니다. ‘ADHD, 불안장애, 사이코, 분노조절장애, 미친새끼, 또라이, 정신병자, 잠재적 범죄자, 약쟁이, 병신, 정신장애인, 기초학습장애, 미성숙하고 덜떨어진,책임감 없는…’ 누군가에게 미쳤다는 말이 모욕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미쳤다는 것은 삶입니다. “나는 미쳤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 말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미쳤다는 게 삶이라고 믿습니다. 미친 건 치료해야 될 정신질환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미친 게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미친 게 부끄럽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를 혐오합니다. 나는 매일 갈등합니다. 완치되고 싶은 마음, 미친 그대로를 존중받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것은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사회적 문제입니다.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는 미친존재를 존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매드 프라이드는 미친 것을 믿는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매드 프라이드가 모든 공간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카페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모든 공간이, 매드 프라이드였으면 합니다. 미친존재가 안전하고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이 싸움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기존의 상식과 기준을 모두 부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드 프라이드 축제를 통해, 미친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와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계속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미쳤다!’”
 
 
사진설명: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마르코 까발로(파란 목마)’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마르코 까발로는 이탈리아의 한 정신병원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큰 ‘파란 목마’이며 원래는 병원 내에서 빨래를 싣고 다니는 용도로 사용됐으나 1980년 이탈리아의 모든 국립 정신병원이 폐쇄되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병원 문을 나서 지금은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편, 인권위원회의 정신장애인 인권침해 진정 접수 현황에 따르면 ‘불법 입·퇴원’이 58.5%로 가장 많고, 2018년 이후 ‘부당한 격리·강박’과 ‘폭언·폭행/가혹행위’가 상대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정신병원 내 휴대전화 소지 제한과 병동 내 CCTV 설치와 관련한 진정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정신건강관련 예산은 총 4,432억원인데, 그 중 가장 많은 예산이 국립정신병원 운영(1,273억), 정신요양시설 운영(997억)에 투입되고 있다. 실질적인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예산은 정신의료서비스 및 당사자 지원이 141억원으로 보건의료예산에 비해 비중이 적다.
 
이에 따라 정신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개정되었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정책을 다른 장애 유형과 동등한 전달체계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은 지속적으로 장애인복지 서비스와 지역사회 서비스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법령의 개정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복지서비스 인프라 구축과 전달체계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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