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싸워 ‘차별’ 인정받았지만… 휠체어 이용 가능한 시외버스는 여전히 ‘0대’ > 국내소식


12년 싸워 ‘차별’ 인정받았지만… 휠체어 이용 가능한 시외버스는 여전히 ‘0대’

장애인 시외이동권 사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개인진정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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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5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에 UN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한국 정부의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 촉구 유엔 개인진정 기자회견
 
“탈 수 있는 버스가 단 한 대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버스를 탈 ‘현실적 개연성’을 먼저 입증하란 말입니까?”
 
장애인들은 12년 동안 ‘버스를 타고 시외이동을 할 권리’에 대해 법정에서 싸워‘차별’이라는 판단을 받아냈다. 그러나 2026년 8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버스는 여진히 단 한 대도 없다. 결국 장애인들은 국내 법원을 넘어 유엔의 문을 두드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공익법단체 두루, 재단법인 동천,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한국장애포럼(KDF)은 8월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침해에 대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Committee)에 개인진정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개인진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따라 국내에서 이용 가능한 구제절차를 거쳤음에도 협약상 권리를 충분히 구제받지 못한 경우, 개인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당사국의 협약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과 구제조치를 요청하는 절차다.
 
이번 진정의 당사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두 사람으로 각각 고양시와 구리시에 거주하며 서울 출퇴근뿐 아니라 병원 진료, 가족 방문, 문화생활 등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시외·광역버스에 접근할 수 없어 이동에 제약을 받아왔다.
 
이번 사건에서 진정인들이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특정 버스 몇 대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시외·광역버스라는 대중교통 체계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이 진정의 핵심이다.
 
‘차별’이라고 했지만… 5천여 개 노선 중 구제받은 것은 7개
 
이 사건은 2014년 시작됐다. 두 사람을 비롯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해 3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버스운송사업자 등을 상대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춘 버스를 운행하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항소심을 거쳐 2022년 대법원은 버스사업자가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하며, 운송사업자에게 이를 ‘정당한 편의’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차별을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였다. 대법원은 모든 버스에 즉시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추도록 한 원심 판단은 과도하다며, 적극적 구제조치의 범위를 판단할 때 장애인 당사자가 해당 노선을 이용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과 버스회사의 재정상태, 설치비용, 국가의 재정지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파기환송심은 원고가 이용할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한 노선에 한해서만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를 명령했다. 약 5천 개 노선 가운데 단 7개였다.
 
▲발언 중인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
 
그마저도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개 고속버스 노선은 2027년부터, 5개 광역버스 노선은 2028년부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의 도입이 의무화되고, 이후 단계적으로 비율을 높여 2035년에 이르러서야 7개 노선의 모든 차량에 휠체어 탑승설비가 갖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제시한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대중교통의 속성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비장애인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병원을 갈 때, 출장을 갈 때, 여행을 갈 때 내가 앞으로 이 버스 노선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미리 증명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원하는 노선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대중교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만 어느 노선을 이용할지 특정하고 그 노선을 이용할 가능성까지 미리 입증하도록 한다면 장애인의 이동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가 아니라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만 인정되는 시혜적인 편의로 전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기환송심에서는 원고 A의 부모와 자매가 거주하는 곳 등을 기준으로 이용 가능성이 있는 노선을 판단했고, 원고 B의 경우 ‘구체적·현실적 이용 가능성’이 인정되는 노선이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 A가 이후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지난 4월 16일 이를 기각하면서 국내 사법절차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발언 중인 김아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장
 
김아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장은 이를 두고 “문을 꽁꽁 잠가놓고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증명하면 열어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 센터장은“법원은 원고 한 분 한 분의 집 주소, 직장 주소, 가족들의 주소지까지 하나하나 대조해 이 노선을 탈 개연성이 있는지를 따졌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원고 중 한 분은 끝내 이용할 개연성이 있는 노선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 자체가 기각됐다.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관계와 생활반경을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에 실패하면 권리마저 사라지는 것, 이것이 지난 12년간 우리가 얻은 결과이다.”라고 말하며 “길과 교통수단이 먼저 열려 있어야 사람이 이동을 계획하고 꿈을 꿀 수 있는 것”이고 “권리는 사정이 있을 때만 허락되는 예외도, 계획해 승인받아야 하는 과제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시외버스 ‘0대’… 철도 없는 42개 지자체는 어떻게 가나
 
이번 개인 진정을 통해 지적하는 문제는 특정한 7개 노선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인 측에 따르면 현재 운행되는 시외버스는 모두 고상버스이며 휠체어 탑승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광역급행·직행좌석형 버스 역시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철도가 있으니 버스 대신 기차를 이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모든 지역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진정서에 인용된 2026년 4월 기준 분석에 따르면 전국 15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2곳에는 철도역이 없다. 이들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시외버스 접근성의 부재는 곧 지역 자체에 대한 접근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 휠체어 이용 당사자로 발언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허정 활동가는 시외버스를 “늘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표현하며 “지역으로 놀러 가려고 해도, 지역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려 해도 저는 매번 같은 질문 앞에 가로막혔다. ‘내가 탈 수 있는 버스가 단 한 대라도 있을까.’ 답은 언제나 ‘없다’였다”라고 강조했다.
 
▲발언 중인 허정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결국 몇 배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우회하거나 이동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는 허정 활동가는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권리의 박탈”이라고 말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역시 ‘선택’보다 ‘포기’를 먼저 배우게 되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박김영희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을 외친 지 20년이 넘었고, 법 제정과 개정 요구, 정부와의 협의, 법정 투쟁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만큼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이 다시 유엔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장애인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포기할 권리밖에 없다. 그냥 포기하라고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동하지 못해서 만날 것을 포기해버리는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발언 중인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정부가 시외버스 접근성을 위한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인 측은 그동안의 대책이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19년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을 통해 휠체어 탑승·고정설비를 갖춘 시외버스를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 대상은 4개 노선, 10대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3개 노선은 이미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고속철도 노선과 중복됐다.
 
이용 절차도 비장애인과 달랐다. 휠체어 이용자는 출발 최소 3일 전에 승차권을 예약하고 출발 20분 전까지 지정 승강장에 도착해야 했다. 기계식 리프트를 작동할 별도 공간이 필요했지만 터미널 시설 개선을 위한 지원도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시범사업에서 휠체어석 이용률은 0.47%에 그쳤고, 코로나19를 거치며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다. 현재 예산은 남아 있지만 실제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시외버스는 운행되지 않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이미 두 차례 한국의 대중교통 접근성 문제를 지적한 바있다. 위원회는 2014년 대한민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상황을 심사하면서 농어촌과 도시지역의 접근 가능한 버스와 택시가 부족한 현실에 우려를 나타내고, 장애인이 모든 종류의 대중교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정책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2022년 제2·3차 국가보고서 심사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시외버스·고속버스·광역버스가 교통약자 이동권 개선을 위한 법 개정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들 버스를 포함해 휠체어 접근 가능한 대중교통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진정인 측은 이후에도 이에 대한 실질적인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발언 중인 한국장애포럼(KDF) 정혜란 활동가
 
정혜란 한국장애포럼 활동가는 이번 개인진정이 한국 정부가 스스로 비준한 국제인권협약을 실제 정책으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묻는 절차라고 강조했다. 정 활동가는 “대한민국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두 번이나 이 사안에 대해 유엔의 시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장애인의 권리는 여전히 선 안에 머물러 있다”며 “이번 시외이동권 사례 역시 그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제사회에 한 약속은 단순히 말과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제도로 이행돼야 한다”며 이번 개인진정이 협약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번 개인진정에서 주목할 지점은 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개별적으로 제공되는 ‘편의’가 아니라 사전에 갖춰져 있어야 하는 ‘접근성’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권리협약 제9조와 이에 대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2호에 따르면, 공공에 제공되는 시설과 서비스는 공공기관이 운영하는지 민간기업이 운영하는지와 관계없이 접근 가능해야 한다. 특히 접근성은 장애인 개인이 이용을 요청한 뒤에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요청 이전에 갖춰야 하는 의무로 설명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시설과 서비스는 처음부터 접근 가능하게 설계해야 하고, 기존 시설과 서비스의 접근성을 단계적으로 확보하는 경우에도 ▲명확한 이행기한 ▲충분한 재원 ▲정부와 민간사업자 등 주체별 의무 ▲불이행을 감독·제재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진정인 측은 현재 한국의 시외·광역버스 정책에는 이러한 구체적인 이행기한과 강제력 있는 기준, 충분한 재원과 감독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에 이번 개인진정을 통해 앞으로 새로 도입하거나 교체하는 시외·광역버스는 처음부터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 버스 역시 구체적인 이행기한과 연차별 목표를 정해 단계적으로 접근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완전한 접근성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예약제 등 보완수단을 통해 필요한 노선을 실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담았다.
 
한상원 변호사는 “더 이상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이 어느 버스를 탈 것인지를 증명하고 필요한 노선이 생길 때마다 다시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확보해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이들의 시외이동권을 둘러싼 판단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로 넘어갔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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