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를 통해 장애 이해하기
해외소식 / 캐나다에서 전해온 이야기
본문
캐나다 매니토바 주에 위치한 위니펙에서 지낸 지 4년이 되었다. 이 시간은 내가 한국에서 배워오지 못했던 캐나다의 복잡하고도 폭력적인 식민 역사를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선주민(Indigenous Peoples)1)의 지식 체계를 지워온 식민주의와 환경 부정의를 연구해 온 지리학 연구자다. 이 글은 그 문제의식을 관통하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장애’를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살아가고 연구하는 이 땅, 캐나다의 맥락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이 맥락을 이해할 때야 우리는 비로소 식민주의와 장애가 교차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 <선주민 장애 연구 Indigenous Disability Studies>는 장애를 경험하는 선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책으로 식민주의와 장애 경험, 비장애중심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Ward, 2024).
캐나다는 유럽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오늘날의 캐나다 정부는 선주민의 전통 법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가 아니라2), 그것을 지우고 형성된 정착민 식민 국가(settler colonial state)다.3) 19세기 이전 이 땅은 수천 년 동안 선주민 공동체들의 법, 가르침, 관계, 윤리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이 땅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들소, 순록, 강, 숲-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본격화한 유럽, 특히 영국의 식민 확장은 이 관계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식민주의를 이해할 때 핵심은 단연 토지 수탈(Land Dispossession)이다. 그리고 토지 수탈의 중심에는 항상 자원 착취(Resource Extraction)가 있다. 광물, 모피, 목재, 수력발전, 석유. 이 땅은 끊임없이 개발 가능한 자원으로 재정의되었다.
나는 식민주의를 하나의 나선형으로 이해한다. 그 중심에는 자원착취가 있고, 그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법과 정책, 언어의 억압, 문화 말살, 교육 통제, 노동 착취, 건강 불평등이 뻗어 나간다. 그리고 그 나선형 위에는 장애도 놓여 있다.

식민 정부의 자원 착취 정책은 단지 환경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주민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선주민의 몸과 삶의 방식을 미개하고, 병적이며, 비합리적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토지수탈을 위한 통치와 개입을 정당화했다. 이 정당화 아래,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후반까지 약 150년에 걸쳐 운영된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 제도는 아이들을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분리했고 감금과 학대를 일삼았다.4) 이 정책은 단지 인종 차별적이었을 뿐 아니라,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국민”을 만들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 속에서 특정한 몸은 제거되거나 교정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깊이 비장애중심주의/에이블리스트적인 제도였다.
식민주의로 읽는 장애: 네 개의 타래 풀어내기
식민주의로 인한 상처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래 타래들의 엮임을 보아야 한다.
● 선주민 공동체가 살아온 땅은 오랜 기간 자원 착취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되어 왔다. 오염된 물과 토양, 파괴된 생태계는 공동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쳐 왔고, 만성 질환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기숙학교 제도를 비롯한 식민주의 정책이 남긴 정신적 트라우마 역시 공동체 안에서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 식민주의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는 구조이기도 하다. 많은 선주민들은 학교, 직장, 도시 생활 속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특히 서구 중심의 교육과 노동 환경은 선주민의 지식과 삶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비과학적이거나 게으른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 선주민의 정체성은 개인의 몸이나 개인적 정체성에만 기반하지 않는다. 공동체와 땅, 그리고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지속되는 사회는 몸과 젠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라벨링하며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 이러한 방식은 선주민의 문화, 전통과는 매우 다른 것이며,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정신적 상처로 작용하기도 한다.
● 한편 캐나다 정부의 정책과 예산은 오랜 기간 자원 개발 산업에 크게 의존해 왔다. 최근들어 자원 착취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지면서 복지, 교육, 공공서비스와 같은 사회적 지원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구조적 불평등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더욱 취약한 상황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상처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 장애를 경험하는 많은 선주민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공동체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선주민들의 리더십과 노력들
장애를 경험하는 선주민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피해와 취약성의 프레임 속에서만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리더십과 공동체를 위한 노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선주민 장애인들의 존재와 목소리, 그리고 그들이 지켜내고 있는 공동체의 힘을 더 분명히 보게 한다. 또한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매년 11월에 기념하는 선주민 장애 인식의 달(Indigenous Disability Awareness Month)은 장애를 경험하는 선주민들이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보여주는 리더십과 기여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달은 단순히 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식민주의적 구조 속에서도 그들이 공동체의 돌봄자이자, 활동가, 그리고 변화의 주체로서 만들어온 노력과 힘을 조명한다.
많은 선주민 공동체에서는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공동체와 땅, 관계 속에서 이해되며,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개인의 능력이나 결핍 중심으로 바라보는 서구의 이해 방식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실제로 장애를 경험하는 선주민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 교육, 돌봄, 정책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단순히 지원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더 포용적이고 문화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주체들이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리더십은 고용, 교육, 복지와 같은 제도적 영역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캐나다 전역의 여러 연구와 사례들은 선주민 공동체가 주도하는 프로그램5)과 문화적으로 안전한 접근이 장애 포용 정책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 선주민 장애 인식의 달을 기념하는 캐나다 재활 및 고용 협의회 the Canadian Council on Rehabilitation and Work (Izadi & Al-Azary/CCRW, 2025)
또한 선주민 공동체에서는 건강, 주거, 정신적 건강,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용 지원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서구 사회가 강조해 온 개인 중심의 생산성과 독립성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공동체와 관계 속에서 일과 삶을 이해하는 유연하고 문화적으로 안전한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선주민 장애인들의 경험과 지식이 정책과 제도 속에서 더 중심적으로 존중될 때 가능해진다.
마무리하며
지리학자로서 캐나다의 식민주의를 연구하며 장애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에서 지내며 계속해서 마주하는 특정한 장애 이슈나 흥미로운 움직임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연구와 연구 밖의 활동이 오랫동안 선주민 자주권을 지지하는 데에 집중해 왔다는 점, 그리고 이곳의 장애 문제 역시 식민주의의 역사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글은 자연스럽게 식민주의라는 맥락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캐나다의 식민주의 역사와 현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이 그러한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애를 둘러싼 문제 역시 이러한 역사와 구조 속에서 함께 바라볼 때, 우리는 장애와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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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나다의 선주민Indigenous Peoples은 유럽 식민주의로 캐나다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터틀 아일랜드Turtle Island - 북아메리카를 가리키는 선주민 세계관의 명칭 - 에 살아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이를 원주민으로 번역해 왔지만, 이 표현이 여전히 식민주의적 시각을 반영한다는 문제 제기 속에서 최근에는 선주민이라는 번역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서로 다른 공동체와 민족을 가리키는 Peoples의 복수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한국어 번역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비선주민 Non-Indigenous을 사용한다.
2) 캐나다에서는 선주민의 법과 지식체계를 공식적인 법 체계로 인정받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식민주의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점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과 공동체에서는 이를 지식 Knowledge또는 지식체계 Knowledge Systems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선주민의 지식체계에서는 관계 relationships, 이야기 stories와 구전 전통 oral traditions, 그리고 땅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 land-based identities이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3) 정착 식민주의는 식민주의자들이 자원을 수탈한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정치·사회 체계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선주민의 체계와 삶의 방식을 지워 나가는 식민주의의 형태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원 개발과 인종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식민 지배가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착과 함께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4) 캐나다 정착민 식민 정부에서 운영된 기숙학교 제도로, 이 학교에서는 선주민 언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많은 아이들이 학대와 차별을 겪었다. 이 제도는 선주민의 문화와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동화를 강요하기 위한 식민 정책의 일부였다.
5) 장애 환경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선주민들의 주도하는 다양한 사회 복지, 교육 프로그램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식민주의 탈피를 위한 노력 그리고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슬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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