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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로힝야난민과의 공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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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HCR과 협력 관계에 있는 HI 직원들과 프로그램 수혜자 집을 방문하기 위해 캠프 안을 걷는 모습
 
 
두통이 생길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난민캠프 안에 위치하고 있는 협력기관 Humanity and Inclusion(HI) 사무소 에서 진행된 회의를 마치고 막 일어서려고 할 때쯤, 한 직원이 내게 물었다.
 
“혹시, 우리 프로그램 수혜자 집 방문하고 갈 건가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업관리 측면에서는 현장실사가 필요한 것이 맞지만, 이미 후덥 지근하게 더운 공기 속에서 힘겹게 회의를 끝낸 순간이라, 에어컨이 터지는 회사차로 몸을 던지고 싶은 욕구도 컸고, 무엇보다 난 수혜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고 그래서 늘 망설여지기에 내 머릿속은 이미 그럴싸한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만약, 크게 방해가 되거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이 놀라운 대답이 나의 태연한 표정과 함께 자연스럽게 내 입 밖으로 빠져나와 짧은 침묵을 깨 버렸고, 우리는 곧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사무실 밖을 나섰다. 내가 왜 그랬을까.
 
오늘 캠프에 오기 위해 아침 7시에 사무실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어제처럼 폭우가 내리지 않기를, 무사히 업무를 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쨍쨍한 햇살과 데워진 공기에서 전해져 오는 습한 기분은 캠프 내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기분 나쁜 냄새와 함께 섞여 더 지독한 악취를 만든다. ‘인도주의 활동가 중에 나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하며 짧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임시거주지(Shelter) 들 사이사이 좁은 길을 20분 정도 걸었을까, 6E-3이라고 쓰인 어느 Shelter 앞에 다다랐다.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허리를 숙여 좁고 낮은 Shelter 의 입구를 통과하여 안에 들어오니, 벌써부터 땀이 난다.
 
“Hello.”
 
조금은 느린, 그렇지만 기분 좋은 외침과 같은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니, 8살쯤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Hello, how are you?” 인사하며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는 여전한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전한다.
 
HI 직원이 작년 10월부터 방문재활치료를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9살의 소년, 이름은 Iktar, 그가 4살이었던 2017년 10월,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곳으로 피난 왔다고 한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고, 혼자서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며 간단한 대화도 어렵다고 한다. 작년 방문재활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 일어나지도, 간단한 단어 하나조차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혼자서도 몇 발자국씩 걸어 다닐 수 있고 글쓰기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그는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미리 준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공책과 연필을 끌어와 작은 손으로 글자를 써 나간다. 어느새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Iktar의 가족과 이웃, 협력기관 직원들이 그를 대견해하며 칭찬하고 박수를 친다.
 
뭔가, 그 분위기가 불편한 나는 Iktar와 50대쯤으로 보이는 그의 부모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혼자 생각에 잠긴다. 저분들은 2017년 10월 그 험난한 피난길에 오르면서, 신체적으로 건장한 사람들도 7일을 꼬박 걸어야만 했던 그 거리를 Iktar을 업거나, 안으며 한발 한발 힘겹게 내디뎠을 것이다. 운이 좋아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 겨우 정착을 했지만, 워낙 언덕 지역에 위치한 캠프의 주요 시설들과 Shelter 등의 이용이 Iktar 혼자 이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했었을 것이다. 물리적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는 캠프 환경과 특히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Iktar가 원할 때마다 그들 중 한 분은 늘 그의 곁에 있어야 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럴 것이고.
 
장애를 가진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들은 캠프에 정착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서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리고 또 찌는 듯한 Shelter 안 공기 때문에 대화에 집중하지 못해, 다음 일정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나랑 눈을 마주치지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Iktar의 어머니께서 일어나려는 나를 불러 세운다. “네, 그럼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Shelter 안을 가로질러 작은 문 밖으로 나갔다. 그곳엔 모래 진흙에 반쯤 잠겨 부서진 가족화장실이 있었다. 최근 매일같이 내리는 비로, 크고 작은 산사태가 빈번히 발생해서 많은 Shelter들이 부서지게 되었는데, 이 Shelter엔 화장실이 없어져 버렸다.
 
 
▲ Iftar의 집에 있었던 화장실이 산사태로 무너져 없어진 자리
 
 
지난달 UNICEF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만 명이 넘게 거주하고 있는 이 캠프에서 접근가능한 화장실로 설계되어 보급되거나, 기존 화장실을 수리해서 접근성을 향상시킨 화장실이 약 1,000개 정도라고 하는데, 그것 또한 물리적으로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사람에게만 사용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Iktar와 같이 혼자서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임시로 Shelter에 붙어있는 가족화장실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Iktar의 어머니는, 가족화장실이 무너져 내리면서 Iktar는 다시금 Learning Center(임시교육공간)도 가지 못하게 되었고, 가족은 Iktar를 돕기 위해 어떠한 활동도 못하고 Shelter에서만 머물게 되었다고 말했다.
 
캠프에는 다양한 이유로 혼자서 이동이 불편한 사람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사회기반재활서비스 및 지역주민자원봉사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보급 중에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예상하기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가족화장실 공급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도 아니고,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규정한 Shelter 관련 규격이 정해져 있고, 원칙적으로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것. 지금까지 가족화장실이 보급된 사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해당 캠프의 최고 의사결정자 (Camp in Charge, CiC라고 부름)가 어느 정도 눈감아줘서 가능한 정도라고. 해당 사실을 전해주던 동료가 말을 붙인다.
 
“우리 기관이 활동하는 다른 캠프의 CiC는 좋은 사람인데, 이곳 CiC는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얼마간을 무너진 화장실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침내 만남을 끝내고, 회사차에 올랐다. 냉방병에 걸려도 좋으니 에어컨에 딱 붙어서 회사까지 돌아가고 싶다. 지금부터 한 시간 반 정도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무실로 돌아가겠지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캠프 안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화장실로, 접근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캠프 방문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언제나 기진맥진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보통은 함께 출장을 간 동료들과 그날의 소감을 나누고, 관련된 논의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그날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옆자리에 앉은 나의 방글라데시 동료도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오늘 내가 본 풍경들과 만난 사람들과 기억나는 대화들이 내 머릿속을 다시 한번 스쳐지나간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HI의 사업경과보고서의 지표들도, Iktar의 환한 웃음도, 무너진 화장실도, 코를 버리고 싶게 만드는 캠프 내 악취도 아닌, 우리 파트너 기관 직원이 마지막에 CiC에 대해서 한 그 말 한마디였다.
 
“…. 이곳 CiC는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말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CiC는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캠프 내 주요 의사결정과 캠프 관리의 중대한 책임을 맡긴 공무원인데, 규정과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예외적으로 눈감아 줘야 좋은 사람,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융통성 없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면 뭔가 안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난민이 처한 다양한 어려움은 당사자와 가족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세세하게 알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소위 ‘전문가’ 집단에서 그들의 기준과 분석을 통해 가공된 결과를 ‘해결책’으로 제시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 과정에서 소멸되고 단순화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난민캠프 내에서 장애를 가진 난민들에 대한 보호서비스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고, 그 문제를 제대 로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결책을 논의하고, 그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키려고 애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고질적인 어려움들에 많이 지치지 말고, 하나하나 장애물들을 낮춰야 한다. CiC가 캠프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맞지만, 그를 바꾼다고 해서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화장실이 늘어나고, 모든 교육시설이 장애아동에게 열리며, 캠프 내 모든 주요 정보들이 다양한 유형의 장애를 고려한 매개체를 이용하여 전달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계속, 특정 권력자와 제도가 세워 놓은 걸 림돌에 넘어져 푸념만 늘어놓고, 툭툭 먼지 털어내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 몬순기후에 영향을 받아 자주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산사태로, 더욱 접근 성이 어려워지는 캠프의 모습
작성자글과 사진 제공. 김광희/유엔난민기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사무소 장애통합전문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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