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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고]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그 제도적 개선 방안

본문

1.머리말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라고 약칭함) 축소 방침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2009년 3월 25일 현재 인권위의 조직을 축소하는「국가인권위원회와그소속기관직제」령(이하 “직제령”이라고 약칭함) 개정안이 법제처의 심사를 통과하였다. 이제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공포하면 적어도 현행법상으로는 인권위의 조직은 그렇게 감축되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 인권을 위하여 심각한 사태이다. 즉 이렇게 인권위의 조직이 축소되는 것은 단순히 인권위라는 기구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 자체의 축소를 의미하며, 나아가 정부가 단순히 직제령 개정으로 인권위의 조직을 축소할 수 있게 되면, 이는 인권위 인력의 축소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권위의 독립성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리하여 이하에서는 인권위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정부의 인권위 축소 강행이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으며, 또 그러한 문제점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해 보기로 한다.

2.직제령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권위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권의 본질과 연결된다. 인권은 국가 이전에 먼저 존재하는 것이고, 또 인권은 국가권력이라고 하여 함부로 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을 비롯하여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이다.

인권의 사상은 인간 고유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모든 국가권력은 그러한 존엄성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는 인식에 터잡고 있다. 즉 국가권력에 의하여 좌우되는 인권위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인권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관료기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현 정부는 직제령은 대통령령으로 되어 있고, 또 그 소관부서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라고 약칭함)이므로, 행안부가 자신의 뜻대로 직제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입법, 행정, 사법 어느 부문에도 속해 있지 않으며, 행정부의 조직에 관한 법률인 정부조직법 상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독립 위원회이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조 제2항에서도 명백히 확인되고 있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8조에서 그 ‘조직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러한 위임규정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여 그 세부적인 조직 구성에 관한 것일 뿐, 정부가 자의적으로 인권위의 조직과 인원을 감축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행안부가 법률상 독립기구인 인권위에 대하여 일방적인 조직 축소를 얘기하는 것은 월권이다.

단순히 직제령의 변경만으로 인권위의 조직을 대폭 축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개 하위의 법령으로 상위의 모법 자체를 개폐하는 형국이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번 사태가 설사 문제없이 일단락 된다고 하여도, 이와 같은 문제점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도적 개선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권위의 중요한 직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자체에 규정을 두어, 정부가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세부적인 직제는 다시 대통령령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규칙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인권위는 헌법상의 기관이 아니며 따라서 법령제정권에 한계가 있다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 법령제정권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제령은 학문적으로 법규명령의 일종인데, 법규명령이란 법률의 하위 법규로서 법률이 위임한 사항 혹은 법률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핵심 규정으로 두고, 근본적으로 중요한 직제에 대하여 정하여 둔다면, 그 구체적 집행을 위한 직제 제정권이 인권위에 속하게 됨은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다.

인권위는 비록 헌법에 규정은 없지만, 그 까닭은 인권위가 헌법적 위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연혁적으로 인권위가 현행 헌법이 시행된 후에 생긴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인권위는 입법, 행정, 사법의 권력 기구와 분리된 또 하나의 독립된 국가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회, 정부, 법원이 모두 독자적으로 법규명령 및 규칙 제정권을 가지고 있듯이 인권위에도 그와 같은 권능이 부여됨이 옳다. 참고로 감사원은, 비록 헌법기관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직속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독립성을 위하여 독자적인 규칙제정권을 보유한다.

3.지역사무소
마찬가지로 인권위의 지역사무소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 행안부의 개정안에서는 지역사무소 폐쇄조치가 일단 유보되었지만, 이는 단지 잠정적인 유보일 뿐 언제 다시 지역사무소의 폐쇄를 강행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역사무소는 인권위의 역할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또 인권위에 관한 모든 국제기준들은 지역사무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무소는 하위 법규인 직제령이 아니라 상위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 자체에 규정해 놓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사실 이는 새로운 발상도 아니다. 이미 인권위 출범 당시 모든 법안에 그런 규정을 두고 있었다. 심지어 인권위를 법무부의 산하기관으로 삼고자 하였던 법무부의 법률안조차 지역사무소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 될 뿐이다.

4.예산
조직과 직결된 문제로서 예산을 빼놓을 수 없다. 설사 조직은 그대로 둔다고 하여도 예산을 죄어 버리면, 조직은 무력화될 수 있다. 이번 조직감축 이후에 올 수 있는 또 다른 정부의 조치는 인권위 예산 축소일 것이다.

이 예산권 또한 인권위 출범 당시에 주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법무부는 인권위의 예산안은 법무부의 손을 거쳐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에 대해 인권시민단체들은 인권위가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가져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법 제6조 제5항에서는 인권위 위원장을 국가재정법상 ‘중앙관서의 장’으로 본다고 규정하였다. 즉 일단 인권위의 예산은 법무부의 손을 거치지 않게 된 것이지만, 동시에 정부 예산의 한 부분이 되어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회에 제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 여전히 정부가 인권위의 예산에 간섭하고, 그럼으로써 인권위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소지가 남은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제도개선 또한 절실하다. 그리하여 정부 예산 회계절차 상 인권위가 비록 독자적으로 그 예산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할 수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기획재정부에 의하여 인권위의 예산이 함부로 재단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는 현행 국가재정법상 법원, 헌법재판소 등과 같은 수준에서 예산 편성에서의 독립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즉 정부는 인권위의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 인권위 측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불가피하게 조정이 필요한 때에는 당해 인권위와 미리 협의하여야 하고, 또 인권위의 예산요구액을 감액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에서 인권위원장의 의견을 구하여야 하며, 실제로 인권위의 예산요구액을 감액한 때에는 그 규모 및 이유 등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어려우면 감사원의 수준에서라도 예산에서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즉 정부는 인권위의 예산요구액을 감액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에서 인권위원장의 의견을 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5.인사
또한 핵심적인 사항으로 인사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인권위가 계속 위기를 맞고 있는데, 그에 대하여 인권위원들이 일치된 대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안에 따라 인권에 대한 견해와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개 정부부처인 행안부가 인권위의 조직을 대폭 감축하려는 상황에서조차 의견이 모아지지 못하는 것은 현 인권위의 인적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현재 인권위의 구성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4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이와 같은 규정 자체는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제는 법에 규정된 인권위원의 자질을 공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인권위원들의 임명에서도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어 국민적 검증의 장에서 정말 인권위원으로서의 자질과 경력이 충분한 인물인지 검토될 필요가 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주로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기관장에 대하여 실시되나, 반드시 그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의하여 규정만 있으면 국회의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둘째 문제는 인권위의 인적 구성에서 인권시민단체와의 연결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정부권력기관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인권위가 진공상태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 쪽에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물론 “인권문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는 규정도 그 점을 시사하고 있지만,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보다 명확하게 “인권문제에 대한 현장 활동과 경험이 있는” 인사를 인권위원에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조직의 구성에서도 인권시민단체와의 연결성을 규정해 두는 것이 인권위의 관료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6.맺음말
현 정부는 인권위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보인다. 현 정부에게 인권위는 그저 거북하고 밉살스러운 존재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권위는 어떤 정부이든 그 정부가 권력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등에’ 역할을 해 준다.

즉 인권위는 특정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 국가질서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또 교정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효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한 인권위를 위해 독립성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부의 기도는 용납될 수는 없으며, 나아가 그러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한 입법적 제도개선 또한 필요하다.

작성자정태욱(인하대학교 법학과 교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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