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보조금 횡령, 본질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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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청 공무원 안 모 씨가 저지른 장애수당 횡령으로 떠들썩하다.
약 3년간 26억 4천 4백만 원을 횡령했다는데, 어마어마한 금액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 몫인 보조금을 담당 공무원이 빼돌렸다는 점에서 파장은 컸다.
게다가 여러 보조금 지원 업무를 했던 안 씨가 과연 장애수당만 횡령 했는가하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안 씨가 횡령을 일삼았던 기간은 양천구청이 관할하는 석암재단이 1천 4백여만 원 규모의 장애수당 등을 횡령했다는 서울시 감사가 있었고, 석암재단 생활인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인 시기였기 때문에 장애계가 받은 충격은 더 심했다.
해당구청은 부랴부랴 담당공무원을 징계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석암재단 감사 계획을 발표 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정치권도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복지보조금 횡령을 가중처벌 하겠다는「특정범죄가중처벌법」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의외’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구태여 ‘의외’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다.
아시다시피 복지시설장이 생활인들의 기초생활수급비(이하 수급비)와 장애수당을 횡령해 재산을 축적하거나, 지역사회 이웃들이 지적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모자라 수급비 등까지 빼앗았다는 사건을 하도 많이 접해서, 이번 횡령 건은 새삼스러운 사건은 아니다.
장애수당이나 수급비 횡령 문제가 이렇게 만연해도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였지 않았나. 그런데 담당공무원 횡령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과연 해당구청장이 머리 몇 번 조아리고,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한다고,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보조금 횡령을 막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시다’라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왜냐하면 현재 수급비나 장애수당 관리 체계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누구든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선 수급비와 관련한 복지부 지침에 초점을 맞춰 현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금전관리 어려운 장애인 사정, 정부는 나몰라라
먼저 ‘2009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의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급여관리를 필요로 하는 수급자 범위
○ 정신지체 장애인, 치매노인, 정신질환자, 18세 미만 아동 등 단독가구(이들로만 구성된 가구 포함)를 대상으로 하되,
-장애상태, 의사능력 정도, 가구별 생활실태 등 수급자의 개인별 차이를 감안, 읍면동장(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급여관리 적용여부 등을 융통성 있게 판단
(중략)
(2) 급여관리자 지정
○ 우선적으로 부양의무자 형제자매 등 혈연관계에 있는 자 중 급여 관리와 사용을 지원하기에 적합한 자를 급여관리자(단독 또는 공동)로 지정
○ 부양의무자 등이 없거나 급여관리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회복지기관 재가복지담당자, 의료기관 복지담당자, 교사,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위원, 복지위원, 이웃 등 수급자의 생활실태 파악 및 지원이 용이한 지역인사를 급여관리자로 지정
-원칙적으로 2인 이상 공동 급여관리자로 지정하되, 수급자가 필요한 경우 적시에 급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관리자간 역할 분담
* 적합한 관리자 부재 등 공동관리자 지정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단독관리 가능
(3) 급여관리 방법 및 급여관리 상황 모니터링
○ 급여관리자는 급여를 지출한 경우 그 내역을 기록(영수증 관리)하고 공공으로 확인
-읍면동장(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방문 상담 기록 확인 등의 방법으로 매분기마다 적정관리여부를 확인
* 관리상 편의를 위해 공과금 등은 자동이체를 적극 활용하고, 급여지출 상황은 간략히 작성토록 하여 급여관리자의 부담을 최소화
(중략)
○ 시장 군수 구청장은 급여관리자가 급여를 타목적에 사용하는 등 고의로 수급권을 침해하였을 경우 고발 등 법적 대응
위 수급비 관리 지침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수급자 개인의 급여 관리 능력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융통성’ 있게 적용하라고 한 점 ▲사실상 ‘급여관리자’는 수급자 주변인 누구든 할 수 있다는 점 ▲수급자의 금전 관리보다 관리자의 편의를 더 중시한다는 점 ▲적정관리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처벌규정이 없어 강제성이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보도된 것처럼 공무원이 26여억 원을 ‘꿀꺽’했어도 3년이나 아무도 몰랐는데, 정부는 ‘...(생략) 이웃 등 수급자 실태파악이 용이한 사람’이면 누구든 급여관리자로 인정해주겠다고 한다.
막말로 동네에서 장애 때문에 돈 관리 못하겠다 싶은 사람과 친분만 쌓아놓으면, 당사자의 수급비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당사자는 돈 관계 잘 모르고, 영수증이야 까짓것 꾸며놓기 나름이다. 격무에 시달린다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석 달마다 개인 통장의 입출금 상황을 꼬박 확인할리도 만무하질 않는가. 전담공무원이 금전 관리 감독을 게을리 해도 이를 제재할 조항도 없기 때문에 업무 우선순위 뒤로 밀려날 것은 뻔하다.
복지부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러한 지침을 수 년 간 고수해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수급비 횡령으로 위기에 몰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비리 시설장에게 ‘면죄부’ 주는 복지부
위와 같은 사정은 복지시설 안도 다르지 않다.
최근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곳이 개인운영신고시설인데, 복지부는 개인운영신고시설 입소자의 급여관리자를 대행해 줄 대상을 찾다가, 급기야는 ‘시설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4) 개인운영신고시설 거주자의 급여관리
○ 개인운영 신고시설은 기초법상 보장시설은 아니나, 동 시설에 수급자가 거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 시설장을 급여관리자로 지정
-시설 운영방식에 따라 수급자가 시설입소시 계약에 따라 매달 본인의 생활비를 납부하고 있는 경우에는 급여관리자 지정 불필요
○ 시설장은 수급자의 급여에 대한 지출 관리상황을 기록 관리
-읍 면 동장(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매분기별 급여관리 상황 확인
-‘2009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 발췌
시설장은 시설 내 생활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시설장이 제시하는 계약 내용에 동의해야 입소가 가능한 개인운영신고시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시설장은 현행 위 지침을 근거로 입소계약서에 ‘입소인의 수급비와 장애수당을 원장에게 위임합니다’라는 문장만 써 넣고 서명만 받으면 그야말로 ‘만사 오케이’다.
지침에는 개인운영신고시설에 입소한 수급자의 급여 지출이나 관리를 어떻게 하라는 세부 내용도 없고, 담당 공무원이 방치할 경우 어떻게 제재하겠다는 내용도 없다.
그러니 영수증이나 몇 장 채워 놓으면 되는 것이다.
정말 타인에게 본인 재산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당사자가 돈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누군지, 당사자들이 위임의 내용과 파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했는지 등, 정작 중요한 과정에 대해서는 복지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위 지침이 복지시설 현장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사례를 들면 훨씬 더 감이 올 것이다.
작년 3월 터졌던 개인운영신고시설 ‘소망의 집’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관할 동사무소는 수급비와 장애수당을 원장에게 위임한다는 위임장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틈을 타 시설장 부부는 유령 직원 등재, 영수증 조작을 통해 위임받았다는 생활인들의 생계비와 장애수당을 챙기고 있었다.
조사 결과, ‘소망의 집’ 생활인 중 대부분이 수급비나 위임장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관할 동사무소에는 ‘소망의 집’ 생활인 금전 관리 감독에 대한 서류는 없었다.
결국 생활인들은 매달 수급비와 장애수당을 모두 시설장에게 제공하고도, 축사보다 못한 곳에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삶을 연명해야만 했다.
이는 비단 ‘소망의 집’에만 일어나는 특별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복지부 관리 지침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것을 아는 이가 단지 소망의 집 시설장만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복지지원금 횡령, 사전에 차단할 시스템 절실
최근 연구소에 상담을 의뢰한 김철수(뇌병변, 가명) 사례에서도 위 상황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충북 개인운영신고시설인 A시설에서 6년간 생활하다가 자립한 김 씨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본인이 수급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김 씨는 6년이나 본인 동의도 없이 시설 측이 본인이 받아야 할 보조금을 임의대로 써버렸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할 동사무소 담당 공무원을 만나, 그간 A시설을 관리한 내용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담당 공무원은 “개인운영신고시설이기 때문에 관리 대상이 아니다. 관련 지침도 없다. 있다면 한 번 직접 찾아봐라.”며 ‘2009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 를 들이밀었다.
필자가 지침을 찾아 제시하자 “이런 내용은 처음 봤다.”며 다른 공무원에게 “조건부 신고시설과 개인운영신고시설 같은 말이야? 그럼 동에서 이런 지침 업무 하고 있는 곳이 있나? 난감하네. 이 항목은 처음 봤는데, 이걸 3개월마다 어떻게 확인해? 보여줄 자료가 있어야 보여주지. ** 2동도 마찬가지지. 이게 관리가 되나? A시설에서 제출한 서류 없는데.”라며 통화를 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내 돈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예민한 일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에게 내 돈을 맡겨야 한다면, 관건은 결국 관리자가 정말 나를 위해서 돈 관리를 하는지, 속이는 것은 없는지가 될 것이다.
더욱이 그 대상이 수급자라면, 복지부는 더욱 엄격하고 섬세하게 위 내용을 검증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급비는 사회적 약자의 생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 수급비 지침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전 관리를 정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급여관리자에게 너그러운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 머리만 좀 굴리면, 돈 관리 어려운 사람들의 수급비 정도는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고 단언한 것이다.
횡령이 드러난 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장애나 억압적인 상황 등 때문에 드러나지도 못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당사자가 원치 않는 것을 관리자가 구입하거나, 당사자 동의도 없이 맘대로 써버리거나, 당사자 핑계로 관리자가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상황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분명 복지보조금 지원 취지에 반하는 것은 물론, 당사자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현 지침으로는 이 문제들을 걸러낼 수 없다. 이는 결국 가해자만 바뀐 또 다른 비리와 횡령으로 드러날 것이다.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보조금 횡령시 처벌 수위에만 몰두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사전에 감시하고 차단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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