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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애인시설서 양배추만 뜯어먹길 강요하는 제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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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싸구려 입맛이어서인지 그 맛없다는 군대음식에도 별다른 불만 없이 잘 생활했습니다.
최악으로 손꼽히는 일명 ‘똥국’이라 불리는 된장국에도 밥 말아서 잘 먹었으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먹고 싶지 않은 반찬이 있었으니 바로 양배추 김치입니다.
차라리 그냥 양배추는 된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이 양배추 김치라는 놈은 김치 맛으로도 먹기 뭐하고, 양배추 맛으로 먹기도 뭐하고... 그 기묘한 맛 때문에 아주 싫어라 했던 메뉴 중 하나였답니다.

병역의무를 마친지 어언 10여년이 넘었건만 오늘 한 기사를 읽으면서 예전 그 맛없었던 양배추 김치 맛이 올라오는 것 같아 영 입맛이 씁쓸하네요.

제주 뉴시스에 따르면 제주시가 과잉 생산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는 양배추 농가를 위해 양배추 소비촉진 확산운동 일환으로 관내 제주장애인요양원을 비롯한 43개 시설에서 양배추를 급식반찬으로 제공하기 위해 구매했다고 합니다.

제주시 소재 사회복지시설에서는 1차분으로 양배추 2천500망사 20톤 (900만원 상당)을 주문해 시설생활인들에게 급식반찬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제주시노인회에서도 무료급식, 경로식당, 식사 배달사업에 필요한 양배추 700여 망사를 구입했다고 하네요.

이 많은 양배추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인터넷에서 양배추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을 찾아보니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으며 생각했던 것 보다 다양한 요리법이 존재해 놀랐습니다. 엄청난 양의 양배추를 사갈 때는 다양한 방식의 먹을거리 형태로 제공해 질리지 않고 영양가 높은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서겠죠.

하지만 다른 기관도 아닌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물을 섭취해야 할 노인요양시설이나 장애인생활시설서 대규모로 구입한 것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삶아서 먹어도 맛있고 생것 그대로 먹어도 맛있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다이어트 하는 것도 아니고 ‘색다른 한 끼 반찬’을 몇날 며칠 먹으라는 것 자체가 가히 고문일 텐데 자신의 의사표현을 당당하게 밝히기 어려운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부식거리로 제공한 점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지나친 비약일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장애인생활시설비리 현장을 취재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 “매일 나오는 장아찌 반찬이 너무 싫어요.”, “일 년 내내 똑같이 나오는 희멀건 된장국좀 안 먹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이야기에 덧붙여 “이제 제발 양배추 좀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나올까 우려스럽습니다.

이에 대해 제주시 사회복지 담당 관계자는 ‘섬의 특성을 고려한 고통분담의 방법’이라고 설명했으나 그 말이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은 이유는 다이어트도 하고, 고통분담도 나눌 수 있는 공무원들이 앞장선 게 아니라 ‘아쉬운 대로라도 먹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 노인 등 소외계층의 식대를 쥐고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농가를 도울 수 있는 방법, 고작 이런 식밖에 없는 걸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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