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축소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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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걸음 자료사진) | ||
지난 참여정부에서 약속했던 20명의 인력증원이 새 정부 들어서면서 백지화되더니, 인권위 위원의 자질 문제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이제는 다른 위원회와의 통합설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인권위의 대구, 부산, 광주 등 지역사무소 폐쇄를 결정했다. 특히 정부의 인원감축 계획의 일환으로 인권위 인원의 49.5%를 감축할 계획이다. 대대적인 인권위의 축소이다. 머지않아 인권위 폐지론까지 등장할지도 모른다.
결국 현 정부의 발걸음대로라면, 인권위 인원감축, 지역사무소 폐쇄 그리고 인권위 폐지의 행보를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인권위의 이러한 축소가 우리나라 인권운동에 있어서도 커다란 위기이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는 데 있다.
행정안전부의 인력증원 백지화에서 시작
민주화나 인권향상보다는 개발과 발전을 우선시하는 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인권위는 불필요한 조직이며 걸림돌일 것이다.
지난 해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폭력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받은 것도 인권위에 대한 불만의 요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인권위의 권위도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권위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 독단으로 지역사무소 폐쇄와 인원감축 그리고 통합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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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호 기자 | ||
그러나 당시 참여정부의 행정자치부는 인력 증원이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부했고, 장애인차별금지실천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의 강력한 반발과 요구에 2008년도에 인권위에 20명의 증원시켜줄 것을 약속하게 됐다. 물론 인권위법의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계의 입장으로는 20명의 증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증원이라는 점에 일단 만족하며 증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계의 바람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행정안전부에서 증원 백지화를 들고 나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2008년도에 장애인차별조사관 등의 인력 보강 없이 기존의 인력만으로 진정조사 및 심의 업무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심각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에 따라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이 급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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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차별사유별 진정사건 연도별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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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
병력 |
2 |
8 |
16 |
7 |
21 |
30 |
31 |
14 |
|
성별 |
2 |
9 |
34 |
25 |
55 |
44 |
75 |
55 |
|
성적지향 |
1 |
3 |
2 |
1 |
5 |
4 |
3 |
2 |
|
성희롱 |
|
2 |
1 |
|
62 |
104 |
163 |
116 |
|
용모/ 신체조건 |
|
2 |
4 |
6 |
45 |
10 |
20 |
13 |
|
인종 |
|
1 |
|
|
1 |
1 |
4 |
5 |
|
장애 |
13 |
20 |
18 |
54 |
121 |
115 |
246 |
530 |
[표1]에서 보듯이 다른 차별사유로 인한 진정은 2007년도에 비해 2008년도에 들어와서 감소세가 뚜렷한 반면,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은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홍보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향후 장애차별로 인한 진정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러한 장애차별 진정을 제대로 신속하게 처리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 증원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지난 해 국가인권위원회가 530건의 장애 차별 진정 사건 가운데 2008년도 12월까지 종결된 진정 건수는 287건에 불과했다. 전체의 54.2% 정도만 종결이 된 것이다. 나머지 45.8%의 사건은 해를 넘길 수밖에 없다. 차별 진정을 하고도 1년을 넘게 기다려야 차별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심각하고 중대한 차별의 경우 이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물론 중대한 차별의 경우 법원의 구제조치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인권위의 심의를 기다리기 위해서 1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현재 인권위의 장애 차별 전담 인력이 두 배 이상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행정안전부는 정부 조직 규모의 축소라는 방침 아래 기존의 5본부 22개 팀 4소속기관인 조직을 1관 2국 9과로 축소하고, 인력도 208명에서 106명으로 줄이라고 제시했다. 이에 따라 대구, 부산, 광주 등 3개 지역사무소가 폐쇄된다.
현재도 장애 차별 진정 건수를 절반 정도 밖에 종결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인력을 반으로 줄인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2008년도에는 1년 정도 기다리면 됐지만, 올해부터는 인권위의 조사결과를 기다리기까지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인권위가 강력히 항의하자 행정안전부는 “인권위의 업무가 독립적이지 조직·인사·예산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인권위 역시 정부예산으로 운영되고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직원이 근무하는 조직이니 행정안전부가 조직 관리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인권위의 독립성을 절반만 인정하며, 인권위를 국가기관의 하나로 보고 간섭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통합은 성격이 다른 두 위원회의 통합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 추진하는 것처럼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통합마저 이루어진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에 따르면 인권위와 국민권익위원회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업무와 권한이 중첩되며 2007년도에 인권위가 접수한 진정사건 6천226건 가운데 92.5%인 5천759건은 국민권익위원회도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인권위와 국민권익위원회의 업무 가운데 92.5%가 동일한 영역이므로 두 위원회를 통합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인권위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전혀 성격이 다른 위원회라는 데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전신은 바로 국가청렴위원회이다. 그리고 국가청렴위원회는 부패방지에 필요한 법령, 제도 등의 개선과 정책 수립·시행을 목적으로 2002년 1월에 설립되었으며, 이후 2008년 2월에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와 합쳐져서 국민권익위원회가 되었다. 따라서 국민권익위원회의 일차적인 목표는 고충민원의 처리와 이와 관련된 불합리한 행정제도 개선, 공직사회 부패 예방·규제,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부터의 국민의 권리 보호이다.
반면에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권리협약 제33조 제2항의 해석에 따라 개별 국가의 사법적, 행정적 맥락에 따라 기존의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 차원에서의 장애인권리협약의 증진, 보호, 감독 등 모니터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할과 업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결코 담당할 수 없는 일들이다.
결국 완전히 다른 성격의 두 위원회를 통합하겠다는 것은 인권위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 조은영 기자
인권위의 축소와 통합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가장 중요한 ‘차별 예방을 위한 홍보와 교육’, 그리고 ‘차별 진정에 따른 권리 구제’는 결국 인권위의 역할에 달려 있다. 물론 홍보와 교육은 장추련 등 장애계에서도 가능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홍보와 교육은 역시 인권위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권리구제에 대한 인권위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 차별에 대한 시정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두고 있다. 장추련에서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시정기구를 요구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시정기구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일원화한다는 시정기구 일원화 정책과 맞부딪쳤고,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인권위 내에 소위원회로서 장애인차별시정기구를 설치하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인권위가 축소되는 것은 곧 장애인차별시정기구의 축소를 의미하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권리구제 기능의 약화를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구조 안에서도 진정에서 종결까지 절반 이상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보다 인력과 구조가 축소되고 통합마저 된다면, 차별받는 장애인들의 고통은 더욱 길어질 것이며, 그 고통은 더욱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무소의 폐쇄로 인해 지역의 장애인들은 중앙에서 조사관이 내려가고 다시 조사결과를 서울로 가져가서 심의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당연히 지역사무소가 있을 때보다 늦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통합 역시 마찬가지다.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장애로 인한 차별과 인권침해 등 장애차별 진정은 국민고충과 같은 민원으로 처리되어 버릴 것이다. 장애인이 당하는 차별이 인권침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장애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계가 7년간 피땀으로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 피땀이 완전한 결실을 맺기도 전에 정부의 시정기구 축소 및 폐쇄 의지에 따라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인권위 축소에 대한 정책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인권위의 인력감원은 단순한 국가공무원의 인력감원과 다르다. 그것은 장애인을 비롯한 이 땅의 차별받고 인권 침해 받는 모든 사람들의 구제수단을 축소시키고 폐지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차별에 있어서는 더욱 결정적이다. 더 이상 장애인은 차별을 참을 수 없다.
인권 침해와 비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인권위의 장애차별 담당 인력을 증원시키고, 16개 시도에 지역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만이 장애인의 차별을 하루라도 빨리 막는 길이다. 정부와 여당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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