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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아나운서가 거리로 나온 까닭

[미디어 관련법 진단](6) - 공영방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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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당분간 뉴스에서 여러분을 뵐 수 없습니다”

“조합원인 저는 이에 동참해 당분간 뉴스에서 여러분을 뵐 수 없게 됐습니다. 방송법 내용은 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는 절차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모두 힘든 때, 행여 자사이기주의 그리고 방송이기주의로 보일까 걱정되지만 그 뜻을 헤아려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지난 25일 MBC ‘뉴스데스크’ 크로징 멘트, 박혜진 아나운서의 말이다. ‘뉴스데스크’ 게시판에는 ‘뉴스를 보며 감동했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는 등 지지하는 덧글 140여 개가 올라왔다.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 내용, 절차, 한 번의 토론도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문과 재벌에게 방송 소유 허용하는 것 찬성하지 않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전달하지 못하지만 현장에서 시민들과 부딪히면서 저희가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이야기, 행해지는 모든 이야기, 공감대를 형성해서, 힘을 얻어서 파업을 이끌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파업 둘째 날 거리 선전전에 나선 박혜진 아나운서는 완군 ‘미디어몽구스’ 기자가 내민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진성호 의원은 2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9시 뉴스데스크 말미에 앵커가 ‘파업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부터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방송이 과연 공영방송인지 의심이 든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어떤 이익과 대치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파업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입장을 파악하고 현업으로 돌아가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감동이지만 때 늦은 감 없지 않은

한나라당의 ‘7대 언론악법’과 공영방송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 미디어 관련 법 제개정의 요점은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자본의 방송 진출 여건 완화, 인터넷 통제에 있다. 자본을 위한 미디어 시장 재편과 방송에 대한 정치적 장악을 목적으로 한다.

공영방송 주체들은 이같은 미디어 관련 법 개정 반대에 나섰고, 파업이라는 원초적인 저항의 방식을 선택했다. 자본의 위협과 정치적 폭압에 맞서는 모든 저항에 있어 당사자의 투쟁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저항의 당사자로서 진실을 담아 던지는 한마디는 예외없이 사회구성원의 가슴을 움직인다. 연대를 촉발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7대 언론악법’ 개정을 단지 한나라당만의 의지에 따른 추진으로 볼 수 있을까. 한미FTA 협상 결과에 오롯이 반영된 자본을 위한 미디어 시장 재편 시나리오를 돌아보면 답은 명백하다.

‘7대 언론악법’에 따른 자본의 미디어 시장 재편이 한미FTA에 따른 외자의 미디어 시장 진출 허용과 맞물리면 미디어에 대한 모든 자본의 진입장벽이 붕괴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올 초 발표한 ‘한미FTA 협상의 분야별 평가와 정책과제’에서 “방송.통신 시장개방은 외국기업이 간접투자의 형태로 국내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며 “정보통신서비스분야의 개방을 통해 새로운 성장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KIEP는 우리 나라 정보통신서비스 시장 규모에 대해 1990년대 이후 연평균 20%의 성장으로 2002년에 43조 원의 시장으로 성장했으나, 2003년 마이너스 성장, 2004년 3.4% 성장 등 포화 상태로 진단하고, 개방을 통해 성장의 모멘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KIEP는 “문제는 케이블방송과 지상파방송의 경우 크게 몇 개의 기업이 과점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현실”이고 “어떤 과점기업은 PP뿐만 아니라 종합유선방송사(MSO)로서 역할을 하면서 시장을 수직적으로 과점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는 시장경쟁을 촉발시켜 방송 소비자의 이익증대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외국기업에 의한 간접투자는 일부 영세한 PP의 시장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미FTA 방송.통신 분야 협상 내용은 100% 미디어 상업주의를 반영한다. 방송법, IPTV법, 공영방송법 개정을 통해 지상파방송의 과점을 해체.재편하고, 한미FTA에 따른 완전 경쟁체제가 구축되면, 융합 환경에서 미디어 공공성은 박물관의 유물 신세로의 전락이 불가피하다.

한미FTA가 체결된 2007년 4월. 공영방송 당사자들이 이같은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대응했다면, 미디어 시장 재편 시나리오의 시작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아니라 자본가의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직시했다면, 오늘 이처럼 힘들게 ‘7대 언론악법’ 저지 싸움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말하자면 공영방송의 뉴스 아나운서들이 2007년 4월 한미FTA 협상 체결에 반발하며 클로징 멘트를 했다거나, 말하자면 당시에 방송인들이 나서서 한미FTA 협상의 반공공적, 반사회적 성격을 고발하는데 좀더 분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다.

‘미디어 관련법 진단’ 여섯 번째 순서로 공영방송법을 짚어본다.

공영방송법, ‘1국(공)영-다(多)민영’ 체제 구축

지난 25일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미디어특위가 22일 회의를 갖고 공영방송법안을 잠정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토록 되어있는 KBS 등 공영방송 사장 선임권을 공영방송경영위원회가 맡도록 했다. 공영방송경영위원회는 여야가 각각 2명, 대통령 1명 추천으로 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임기는 3년을 보장했다.

공영방송의 운영은 수신료 80%를 기반으로 하고 광고수입이 전체 재원의 20%를 넘지 않도록 했다. 공영방송이 기존에 갖고 있던 광고의 대부분은 코바코 해체, 민영미디어렙 도입과 연동해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IPTV 등 새로운 방송시장으로 유입한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규정을 적용하면 MBC는 자동으로 민영방송으로 분류되며, KBS2도 민영화가 불가피하다. 1국(공)영-다민영 체제가 확립된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내용의 공영방송법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참고로 공영방송법의 모태는 지난 2004년 11월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 등이 17대 국회에 제출한 국가기간방송법으로 △KBS와 EBS를 공영방송으로 규제 △KBS와 EBS의 예결산 국회 승인 △KBS 이사회 폐지와 9명으로 구성되는 경영위원회 설치 △KBS 사장과 감사는 경영위가, EBS 사장은 국회 추천 및 방송위원장(현 방통위원장) 임명 △KBS 광고 수익은 전체의 20%, 수신료 현실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병국, 공영방송은 하나만 남기고 IPTV 시대 상업방송 경쟁력 강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7대법안과 내년 2월 처리를 목표로 하는 공영방송법을 종합컨대, 공영방송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철학이 확인된다.

지난 26일 오전 불교방송의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출연한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장은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세웠다. 정병국 의원은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을 인식하고도 총파업을 한다면 “그야말로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고, 인식하지 못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 발전에 의한 미디어 빅뱅 시대에 대한 인식의 오류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IPTV에서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우리 나라가 이미 선두 주자를 뺏기고 5-6개 국이 벌써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고 환기한 후 “이렇게 변화되면 채널은 의미가 없어지는데, 지금 현재의 법은 지상파 중심의, KBS, MBC, SBS만 있었던 80년대의 법”이라며 법 개정의 필요를 강조했다.

MBC를 대기업과 보수 신문에 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MBC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MBC와 같은 상업방송을 하는 방송사를 위한 법”이라고 응대했다.

정병국 의원은 “현재 KBS나 MBC나 SBS, 모두가 공영이다 민영이다 얘기를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상업방송을 하고 있는데, 다만 공영이다 민영이다 나누는 것은 MBC나 KBS가 소유구조가 공적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상업방송을 하는 KBS를 일단은 공영방송법으로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하게끔 묶어두고, 대신 KBS가 가지고 있던 광고 시장을 일반시장에 내줌으로 해서 상업방송사들이 제대로 된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분명히 했다.

계속해서 “지금 현재 MBC의 소유 구조를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손을 댈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MBC나 KBS의 대주주가 정부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방송의 행태는 상업방송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MBC는 손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병국 의원은 “소유구조는 공영적 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그대로 운영되지만 자유롭게 상업방송을 할 수 있도록 코바코 법도 복수 체제로 운영을 하면서 만들어주고, 그래서 시장을 오히려 열어주는 것이지 MBC를 어떻게 하겠다 하는,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병국 의원은 소유 구조에 따라 공민영을 나누고, 공영 구조라 하더라도 자유롭게 상업방송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미디어의 상업적 측면을 강조했다. 코바코 해체도 이 연장에 있으며, 신문과 자본의 방송 소유 진입에 제한을 없앤 것도 한 맥락이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MBC는 어떻게 하지 않고 그냥 두더라도 자연스럽게 민영방송으로의 길을 걷게 된다.

1공영 KBS는 최근 시사보도 프로그램 재편, 대통령 라디오 연설, 새해 법질서 캠페인 기획 등의 사례에서 보듯, 국.관영방송으로의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재편이 예상된다.

또한 채널 4-500개의 IPTV 시대를 말하지만 IPTV법에 미디어의 공공성은 일체 고려되지 않았다. 융합 환경 자체를 시장으로 인식하는 자유주의 시장방임형 미디어 철학의 압축판이라 하겠다.

최문순, 공공서비스 내용 강조한 ‘공공방송위원회’ 제안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월 28일 미디어행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공영방송의 역할 모델과 합리적인 규제를 담은 ‘공공방송위원회’를 제안했다.

최문순 의원은 “융합 환경,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도래로 인한 공영방송의 정체성 위기, 재정적 위기,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산에 따른 공영방송 지원의 정당성 위기 등”을 거론하고 “공공성의 범위를 최대한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영서비스방송’의 개념 정립을 시도했다.

최문순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공영방송’은 ‘공공서비스방송’을 하는 모든 지상파를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 경우 EBS, 아리랑TV, KBS World 뿐 아니라 MBC, SBS 등도 모두 해당된다.

여기서 공공방송위원회는 ‘공공서비스방송’의 정책방향과 규제를 담당하게 된다.

이같은 최문순 의원의 주장은 법적 위상, 재원 조달 방식, 소유 구조, 이념적 정체성, 공공서비스 정의 등 공영방송을 규정하는 여러 잣대 중 ‘공공서비스’의 내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의제 미디어 발전의 맥락에서 적극 검토할 만한 구상이다.

정세적으로는 상업성을 강조한 한나라당의 미디어 정책에 대한 막대 구부리기 효과도 있어 보인다.

‘대의제’ 미디어의 위기, ‘직접민주주의’ 미디어가 갈 길은

미디어행동은 올 초 워크샵에서 미디어 영역에 대해 공영-민영-공공 미디어 등 3대 기초 영역을 설정한 바 있다.

워크샵에서는 공영-민영의 전통적 구분이나 네트워크-플랫폼-컨텐츠라는 수평적 규제 방식, 방송-사적통신-융합미디어라는 수직적 규제 방식 등이 모두 이용자의 커뮤니케이션 참여 및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부차적으로 놓고 있다고 평가됐다.

공영-민영-공공 미디어 정의와 관련, 공영미디어는 ‘지상파 방송 및 공적 지원을 받는 플랫폼과 네트워크, 컨텐츠로서 영리에 연연하지 않고 공공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로, 민영미디어는 ‘기업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상업 미디어 영역으로서 영리를 우선하는 미디어’로, 공공미디어는 ‘아래로부터의 참여적 자율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이용자 및 비영리적 컨텐츠 생산주체 및 플랫폼 활성화 미디어’로 구분했다. 나아가 이 구분으로부터 진흥과 규제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7대 언론악법’과 공영방송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등 한나라당의 미디어 정책 구상이 법제도로 정착되면 이같은 분류가 갖는 현실적인 의미는 사라진다. 공영방송의 영향이 대폭 축소될 뿐 아니라 법제도로 보장되는 공공미디어는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편 워크샵은 공영미디어를 대의제적 시스템으로, 공공미디어를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대의제 미디어는 자본의 영향력 하에 민영 미디어의 하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강력한 투쟁을 동반하지 않는 한 직접민주주의 미디어는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된다. 시민참여방송 기금 지원 중단, 인터넷언론 진흥 기금 삭감, 공동체라디오 지원 중단, 인터넷 통제 따위의 해프닝이 이미 그 징후를 예고한 바 있다.

박혜진 아나운서와 공영방송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대의제 미디어 체제의 존립과 유지가 사회적인 문제로 됐음을 웅변한다.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를 체감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연봉 수천만 원의 밥그릇 지키기’ 따위의 공세에 휘둘리면 안 된다. 우리 사회 1%를 제외한 모든 밥그릇 지키기 투쟁은 정당하다. 공영방송 주체들의 밥그릇에는 밥 만 담겨 있는 게 아니라 자본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할 ‘대의제 미디어’의 가치도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1국(공)영-다(多)민영-무(無)공공’의 미디어 질서 재편이 예고되는 지금,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최소한의 직접민주주의 미디어의 작동을 가능케 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실현과 방책은 무엇일까. 촌급을 다투는 총파업 현장을 지켜보며, 독립미디어운동 주체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한 연말이다.

작성자유영주 기자  www.yyj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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