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살인사건, ‘묻지마 범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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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묻지마’가 아닌 ‘왜’를 물어봐야 할 때
안타까운 사건이 또 발생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고시원에 살던 한 청년이 불을 지르고, 그 곳에 함께 살던 이웃들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 것. 이 사건으로 인근 영동시장 먹자골목 식당에서 주로 일하던 중국 여성 이주노동자 3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했다.
이번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정 모 씨는 경찰조사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가 싫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답에 경찰은 정 모 씨의 행동을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고, 사회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진 개인의 충동적인 범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많은 언론들도 정 모 씨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느니, 정신과 병력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하면서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지고 있는 말을 묻어버리고 있다. 물론 정 모 씨의 범행은 피해자는 물론 이 사회에 씻을 수 없는 또 한 번의 큰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정 모 씨의 행동이 그저 우연히 한 번 발생한 일이 아니기에 왜 정 모 씨가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올 해 들어 정 모 씨와 같은 방식의 사건은 4차례나 발생한 바 있다.
손미아 강원대 예방의학과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묻지마 살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더욱더 심각해 지는 양극화가 만들어가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이 그를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손미아 연구원은 “극단적인 빈곤에 있어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한국사회가 만들어 낸 사건”이라며 “이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에 대한 측면으로 봐도 절대적 빈곤층의 경우 모든 질병의 발생률이 극단적으로 높게 발생하고 있지만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단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이를 통해 보건소 등 공공보건의 지원과 실업급여 등 물질적인 측면에 대한 지원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주노동자들
한편, 이 번 사건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중국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매번 죽음을 맞고 나서야 사회의 관심을 받는다. 주변 시장에서 일하던 중국 여성 이주노동자들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올 해 초 이천 냉동창고에서 발생했던 화재사건에서도 그러했듯이 죽음을 맞아서야 그 삶이 사람들의 입에 오른다. 이들은 매일을 불안정한 일자리와 단속으로 죽음 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영섭 서울경인지역이주노조 사무차장은 “지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도 주변 고시원에서 살았었다”라며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이주노동자 신분에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싼 가격으로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고시원이라든지 쪽방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제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회사 측에서 기숙사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만 이도 형편없는 상황이며,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일만 시키려 하지 이들의 주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라며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고시원이라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건이 터지면 단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지원을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정적 일자리가 없으니 고시원에서 살 수 밖에”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월 17만 원을 주고 고시원 주인의 눈을 피해 두 명씩 작은 방에 살고 있었다. 어느새 고시원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공간이 아니라 보증금이라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어 매일 매일 버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집이 되었다. 찜질방이 그렇고, 지난 18일 화재로 4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한 컨테이너 촌, 겨울이면 시혜적 시선으로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는 쪽방촌이 그렇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없으니 작은 돈으로 보증금 없이 있을 수 있는 고시원이나 쪽방 같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라며 “임대주택 보급률이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있는 집을 개조해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부수고 아파트를 짓는 식의 개발정책이 주택문제에 있어 양극화를 더욱더 심각하게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싼 가격의 집마저 뉴타운을 위시로 한 재개발 정책으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최예륜 사무국장은 “빈곤층의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고 정부 정책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투기를 더욱 활성화하는 식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잠잘 공간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박탈감과 절망감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며 “주택이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국가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어떤 정신 나간 한 개인의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도 가지지 못해 고시원과 쪽방을 전전해야 하는, 돈을 벌기 위해 타국에 와 일을 해야 하는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의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 달라”는 울부짖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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