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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장애인단체 너무 쉽게 생각했다

[초점] 장애계, 장애인개발원 원장 선임 둘러싸고 복지부와 줄다리기

본문

   
장애계가 장애인개발원 원장 선임 문제를 둘러싸고 보건복지가족부와 대립하고 있다.
원장 선임에 있어 복지부의 부당한 외압을 주장하며 변승일 농아인협회 회장이 14일간의 단식농성을 이어갔고, 범장애계를 아우르는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려졌으며, 복지부 앞에서의 대규모 시위도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외견상으로 보면 장애인 당사자 원장 선임을 원하는 장애계와 복지부 관료 출신을 원장에 선임하려는 복지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줄다리기라고 규정짓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늘 그렇듯이 복잡한 내막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계가 왜 개발원 원장 선임에 목을 매는지, 또 복지부는 왜 개발원 원장 자리를 포기 못하는지, 그리고 매우 드문 일에 속하는 장애계와 복지부와의 대립은 왜 촉발됐는지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시각이 가능하다.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개발원 사태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개발원장에 복지부 출신 인사 내정된 의혹 짙어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복지진흥회가 그 전신이다. 장애인복지진흥회는 장애인 체육업무를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한 뒤, 복지부 산하 장애인 복지정책 수립과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의 중심적 역할 수행을 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해왔다. 그 결과로 인원 증원 등을 거쳐 지난 4월 11일 장애인개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쉽게 얘기하면 앞으로 노동부 산하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기관이 복지부 산하 장애인개발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렇게 복지부의 장애인 정책 시행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기관이 출범하면서, 당연히 초대 원장이 누가 선임될지가 관심사로 제기됐다. 차흥봉 전 복지진흥회 회장은 전 정권 사람이라는 이유로 후보군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복지진흥회가 장애인개발원으로 명칭을 바꾼 4월 초 장애인개발원 초대 원장에 복지부 관료 출신으로 보건산업진흥원장을 역임한 비장애인 이용흥 씨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장애계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접한 장애계 한편에서 장애인 기관의 장은 장애인이 맡는 게 맞지 않나 라는 설왕설래가 시작됐고, 바로 지체장애인협회를 중심으로 장애인 개발원 바로잡기 공대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공대위와 장애인단체총연맹은 5월 중순 비슷한 시기에 ‘개발원 밀실인사 즉각 중단하라.’ ‘장애인개발원 원장 공개모집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각각 발표해 복지부 방침에 반기를 들게 된다.

이 무렵 복지부의 이봉화 차관이 전면에 등장했다. 복지부 낙하산 인사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문건에 따르면, 5월 중순 경 복지부 이봉화 차관이 권인희 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용흥 전 원장은 개발원으로 가기 위해 보건산업진흥원을 사임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인사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압력과는 별도로 장애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5월 29일 개발원은 복지부의 추인을 받아 6월 18일까지 개발원 원장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당시 다섯 명의 인사들이 공개 모집에 응했는데, 다섯 명의 인사 중 장애인은 네 명, 비장애인 후보는 한 명이 개발원 원장 선임에 서류를 제출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개발원 원장 선임에 응모한 인사의 면면은 방귀희 한국장애인문인협회 회장, 이경혜 부산점자도서관 원장, 이완우 나사렛대 교수, 임통일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회장. 그리고 문제의 이용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전 원장이다.

그리고 6월 27일 개발원 원장 선임을 위한 서류 및 면접 심사일을 하루 이틀 앞둔 25일과 26일, 다시 이봉화 차관이 등장한다.

역시 비대위 문건에 따르면 이 차관은 먼저 25일 변승일 농아인협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복지부가 이용흥 씨를 처음으로 추천해서 밀고 있으니 이번에는 회장님이 적극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이어 심사를 하루 앞둔 26일에는 권인희 시각장애인연합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지 않느냐. 지난 번 전화한 대로 그렇게 해 달라. 개발원이 잘 되려면 그래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변승일 회장 단식농성 14일, 장애계에서 처음 있는 일

이런 복지부 차관의 무언의 압력이 개입한 가운데, 마침내 6월 27일 장애인개발원에서 초대 원장 선임을 위한 공개 심사가 열렸다. 그리고 막상 뚜껑을 열자 이용흥 전 보건산업진흥원 원장이 장애인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거기다 2위와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 점수를 받고, 사실상 차기 개발원 원장으로 선임되는,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계획된 이변이었는지 모를 대이변이 일어났다.

당시 심사 뒷얘기를 들어 보면, 심사위원 일곱 명 중에 장애계, 구체적으로 장애인 심사위원이 네 명, 비장애인 심사위원이 세 명이었다. 네 명의 장애인 심사위원 면면은 권인희 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과, 변승일 농아인협회 회장, 고관철 자립생활센터 총연합회 회장, 그리고 오혜경 가톨릭대 교수였다. 단순구도로 보면, 장애인 비장애인 4대 3 구도에서 결론은 장애인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복지부에서 미는 이용흥씨에게 높은 점수를 줘서 이 씨가 초대 개발원 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심사결과가 이번 사태의 핵심논란 사항인데, 권인희 회장과 변승일 회장이 소속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복지부 이봉화 차관이 권인희 회장과 변승일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한 것처럼,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이용흥씨가 개발원 원장으로 선임되는, 어처구니없는 심사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회장과 변 회장에 따르면, 심사 당시 이용흥 씨는 장애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뿐 아니라 기본적인 장애계의 정서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졌는데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6월 27일 실시된 개발원 원장 심사결과에 대해 변승일 회장과 권인희 회장이 납득할 수 없는 심사결과라고 강력 항의한 뒤 서명을 거부하고 퇴장한 후, 이어 7월 1일 변승일 농아인협회 회장이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개발원 장애인 당사자 선임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복지부 외압설을 폭로한 후 단식농성에 들어감으로써 개발원 사태는 전면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변승일 농아인협회 회장은 그 날 이후 단식농성을 장장 14일간 이어갔다. 이런 긴 기간의 단식농성은 장애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서 장애계 안팎의 큰 주목을 끌었다. 참고로 단식 농성 기간 중 있은 취재에서 변승일 회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같이 개발원 원장도 장애인 당사자가 선임돼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고용촉진공단은 이사장을 선임할 때 심사위원이 장애인 두 명, 비장애인 다섯 명 이었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에 비해 개발원은 심사위원이 장애인 네 명, 비장애인 세 명이기 때문에 숫자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면접과정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핵심적인 대답 없이 딴 이야기를 한 이용흥씨가 최고점을 받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복지부의 압력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보는데, 그 이후 3일간 고민을 했다. 그 결과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간다면 끝까지 장애인 당사자 주관의 개발원이 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단식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복지부는 단식을 풀고 논의하자고 하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핵심은 두 가지다. 낙하산 인사 하지 말 것과 왜 차관이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는가이다.”

“복지부는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줬으니 이를 합산해 선정하면 끝난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공정한 게임이 안 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복지부는 차관이 관례적으로 전화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현안과 관련해 차관과 통화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은 압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복지부 입장

장애인 당사자로의 개발원 원장 선임을 요구하며 14일간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변 회장은 7월 14일 심장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시 복지부 이봉화 차관이 등장한다. 변 회장 쪽 관계자에 따르면, 7월 12일 이 차관이 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장애인 단체장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전제한 후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구조상 장애인개발원 이사회에서 신임원장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복지부에서 원장 선임에 관여할 수 있는 게 없다. 변 회장이 개발원 이사니까 이사회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한편 7월 11일 53개의 범장애계와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장애인개발원장의 복지부 부당인사 압력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한다. 비대위는 발족 선언문에서 “장애계는 개발원 선임과 관련해 장애계와의 신뢰구축과 소통, 장애문제에 대한 다양한 경험, 전문성 등을 갖춘 장애인당사자를 선임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복지부는 장애계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사원칙조차 무시한 채 밀실인사와 낙하산 인사, 조직적 인사개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복지부의 잘못된 인사문제와 무차별적인 권력남용, 장애를 비하하는 차별적 행위 등을 바로잡기 위해 비대위를 구성하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비대위는 복지부 출신 인사가 후보철회를 하기 전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는 일종의 대정부 투쟁 선언을 한 다음, 7월 23일 복지부 앞에서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연다.

그런데, 그 전날인 22일 복지부 이봉화 차관은 국회에서 이뤄진 긴급현안 질의에서 박은수 의원이 개발원 인사 개입 여부를 묻자 “그런 적 없다.”고 답변한다. 복지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은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의논은 한 적이 있지만 인사에 개입한 적은 없다.”는 단 한마디인 것으로 읽혀진다.

이런 복지부의 부인 속에 비대위는 7월 23일 집회를 갖고, 미리 배포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유인물에서, ‘개발원장 선임과 관련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취한 행동은 장애인 비하적이고 반인권적인 장애 문제의 표출이었다. 이봉화 차관은 채용심사 전에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장애인 후보들이 특별히 뛰어난 분이 없는 것 같다고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중략) 보건복지가족부는 여전히 압력이 아니라 상의 차원이었고, 장애인 단체장에 대한 예우라는 억측만을 내놓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장애인개발원장 인선 문제와 관련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해 장애계 지도자들과 480만 장애인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인사문제와 복지부의 무차별적 권력 남용을 스스로 인정하고 바로 잡을 것을 요청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가 장애인 단체를 종속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

한 장애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배경을 “복지부가 장애인 단체를 종속적인 관계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단정했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장애인 단체가 대부분 복지부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복지부가 하자는 대로 군말 없이 뒤따를 것이라고 오판했다는 것이다.

이런 복지부 입장은, 장애쪽 감수성을 지닌 당사자를 원장으로 선임해야 한다며,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강화 되고, 자기 발전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력이 커진 장애인 단체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래서 예전의 지리멸렬한 장애인 단체가 아닌데, 복지부가 이번 일로 장애인 단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장애인개발원이 앞으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 전달체계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는 전제 하에, 수장이 누가 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장애인 당사자로 원장을 선임하기 위해 장애인 단체가 복지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번 사태 해결의 공은 개발원 이사회로 넘어간 상태이다. 하지만 개발원이 복지부 산하 기관임이 분명한 이상, 성격상 신임 원장 선임에 있어서 복지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발원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장애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인 강영우 미국장애인특별위원회 차관보이다. 장애계 사람들은 강 차관보를 거론하면서 미숙하더라도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 기관의 장이 되어야 정책의 집행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복지부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지 지켜볼 일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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