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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던 우리 현호가 일어섰어요!

[보조기구로 일어서는 사람들] 보조공학기기 지원통해 걷게된 현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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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의학적 소견으로는 불가능이란 진단이 나왔는데, 뒤늦게 시작한 치료를 통해 걸음걸이를 시작한 소년이 있다고 했다. 그런 소식을 몇 차례 들은 적은 있었지만, 당사자인 그 주인공을 직접 만나는 건 색다른 경험이 분명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그 어린 친구를 만나러, 경기도 의왕시 어느 초등학교 인근의 가정을 방문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얼굴을 익혔기 때문일까? 현관문을 열자마자 오늘의 주인공 현호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현호의 반응은 남달랐다. “아저씨는 어느 방송국이에요?” -말의 의미를 몰라 아주 잠시 주춤하는 사이, 바로 옆에 서 계시던 엄마가 한마디 거들어 주셨다. “얘가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이후로는, 모두 다 방송국에서 찾아오는 줄 알아요.”

그래서 월간지라는 책 안에 너의 얼굴을 커다랗게 넣어 줄 거라 했더니, 현호는 김이 빠진 듯 컴퓨터를 향해 돌아섰다. 친구들한테 자랑할 준비를 나름대로 잔뜩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호가 지금 상당히 피곤한 몸 상태라서, 가만히 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 취재의 주인공인 박현호 군 대신 어머니 박향숙 씨와 마주앉았다. 옆집 이웃을 대하듯 맞이해 주신 어머니 덕분에, 정말 편안한 취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 함께걸음(이하 함께) : 현호의 장애는 무엇인가.
▶ 박향숙 씨(이하 어머니) : 뇌병변장애이다.

▷ 함께 장애가 언제부터 어떻게 진행된 건가.
▶ 어머니 진행은 아니고…, 현호가 쌍둥이인데다 미숙아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양수를 과다 흡입하는 바람에, 호흡장애를 일으켜서 뇌손상이 갔다. 다행히도 쌍둥이 동생은 모든 게 괜찮은 편이다.

▷ 함께 태어날 때부터 눈에 띄는 증상 같은 게 있었나?
▶ 어머니 6개월까지는 쌍둥이가 똑같이 성장해서 잘 몰랐다. 뒤집기까지는 두 아이가 같이 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기어 다니고 일어서려는 과정을 거치는 동생과 달리, 현호의 증상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몸의 크기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 함께 그럼 그 또래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놀이문화 같은 건 하지 못한 건가?
▶ 어머니 똑같이 하진 못했다. 그래도 현호가 참 다행스러웠던 건 늦게라도 따라갔다는 거다. 다른 아이들이 특정 시기에 할 만한 언행을 몇 달 후에 해서 그렇지, 어느 정도 늦는다는 점 빼고는 해야 할 것들은 다 했다. 단지 시간적으로 그 진행이 늦어졌을 뿐이다.

   
▲ 현호군이 착용하고 있던 스텐더 ⓒ채지민 객원기자
▷ 함께 현호가 다니는 학교는?
▶ 어머니 특수반이 따로 있는 일반 초등학교에 다닌다. 담당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 더불어 공익요원까지 포함해 세 분이 담당하고 계신다. 현호 같은 친구들도 있고, 지적장애와 발달장애 등 여러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함께 다닌다.

▷ 함께 현호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 어머니 제왕절개 수술을 했기에 당시에는 몰랐는데, 현호가 태어난 지 5분 이상 호흡을 안 했다고 한다. 호흡을 5분 정도 안 했다는 건 신생아들 대부분 사망하거나, 생존한다 해도 평생을 누워 지내야 하는 경우라 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의 현호는 인지능력과 운동기능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다만 엄마 입장에서 안타까운 건, 장애가 눈(시력)에 많이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눈만 더 좋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었을 텐데….

▷ 함께 담당 의사들조차 치료가 안 될 거라 진단 내렸다고 하던데.
▶ 어머니 보통 이런 증상의 아이들은 첫 돌이 지날 즈음에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애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며 지냈다.

서울 모 대학병원에 갔을 때, 의사한테 핀잔 비슷한 얘기까지 들은 바 있다. 왜 이제야 왔냐는 식이더라. 그런데 그 의사는 우리 사정을 하나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 아닌가. 부모가 방치했다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그런 말을 들으며… 솔직히 힘들었다.

▷ 함께 경기도재활공학센터를 알게 된 계기는?
▶ 어머니 휠체어나 보조기 같은 건 국가에서 얼마라도 지원이 되지만, 현호한테 꼭 필요한 기구들은 모두 사비(私費)를 들여야 하는 품목들이었다. 빠듯한 생활 여건에서 백만 원이나 몇 백만 원을 빼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현호가 다니던 복지관의 선생님 한 분이 현호한테 꼭 필요한 스탠더(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가 재활공학센터에 있다고 알려 주셨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한테는 무료대여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소개와 도움으로 연락을 하게 됐다.

   
▲ 스텐더를 착용하고 있는 현호군 ⓒ채지민 객원기자
▷ 함께 그 기구를 직접 사용하게 됐는가?
▶ 어머니 현호를 한번 데리고 오라 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독일제 스탠더가 있었다. 우리 돈으로 오백만 원 정도 하는 제품이라 했다. 현호의 사이즈에 딱 맞는 크기로 되어 있는 제품이었다. 진짜 좋은 성능의 그 스탠더를 2년 가까이 대여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리의 힘이 몰라보게 많이 생겨났다.

▷ 함께 기존의 국산 제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 어머니 국산 제품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상태에서 서 있기만 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현호가 대여해서 쓴 스탠더는 이동이 가능해서, 집이 좁다 해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나름대로 놀기도 했다. 한 곳에만 있으면서 한 곳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차이점이다. 그게 달랐다.

▷ 함께 그렇다면 현호의 원래 상태는 어땠나?
▶ 어머니 기어 다니는 게 전부였다. 다리는 거의 안 쓰고, 손과 팔꿈치만으로 집 안에서 이동을 했다. 그래서 상체는 좋은 편이다. 다른 애들에 비해서는 팔의 기능이 괜찮다.

▷ 함께 현호의 현재 시력은 어느 정도인가?
▶ 어머니 안경을 쓰고도 0.1에서 0.2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현호가 사시까지 있어서 두 번이나 수술을 했다. 그런데 현호의 사시는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중추, 그러니까 뇌에서 이미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이다. 다행인 것은 안경에 프리즘을 넣어 맞춰 줘야 했었는데, 이번에는 프리즘을 빼고 난시와 근시를 동시에 교정하는 일반 안경으로 바꿨다. 선생님 말로는 좋아졌다고 한다.

▷ 함께 스탠더를 사용한 이후 현호가 어떻게 바뀌었나?
▶ 어머니 그 스탠더를 하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고, 자기 스스로 다니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가출(?)을 두 번이나 했다. (웃음)

▷ 함께 현호한테 ‘가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건 뜻밖의 표현이다. 어떻게 가출이라는 걸 했나?
▶ 어머니 집 바로 앞 복도에서 떠들며 놀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들리는 상태에서 애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너무 놀라 쫓아나가니까, 자기 혼자 난간을 잡고 나가서 소독차를 따라간다며 저 앞까지 가 있었던 거다. 거리상으로는 집 건물과 가까웠지만, 혼자서 나가겠다며 진짜로 나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함께 그럼 두 번째 가출은 언제였나?
▶ 어머니 현호한테 눈으로 보는 훈련을 시킬 겸, 학교에서 바둑을 배우게 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너무 더워서 오늘 하루는 쉬자고 말한 뒤 깜박 잠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 보니까 애가 없는 거였다. 뛰어나가서 동네 사람들한테 현호를 봤냐고 다그쳤더니, 세탁소 아저씨가 현호를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줬다고 했다. 엄마가 피곤하시니까 그 아저씨한테 자기를 데려다 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는 것이다.

▷ 함께 그 이후로 어떻게 됐나?
▶ 어머니 그 사실을 전해들은 아빠한테 크게 혼나기는 했지만…, 나는 솔직히 너무 기뻤다. 재활공학센터의 어느 선생님한테 하소연 겸 해서 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덩달아 기뻐하시더라.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 자주 그럴까 봐 걱정된다는 게 문제이다. (웃음)

   
▲ ⓒ채지민 객원기자
▷ 함께 지금은 무슨 기구를 사용하는가?
▶ 어머니 스탠더와 워커(선 자세로 걷는 연습을 하는 보조기구)를 3,4년 정도 했는데, 이젠 그 단계를 넘어섰기에 센터에 반납했다. 지금은 다리에 힘이 생기는 과정이니까, 이젠 직접 걷는 방향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 함께 앞으로는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 어머니 병원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아무것도 안 잡고 걷는 걸 원하느냐, 아니면 보조기구를 잡고 걷는 걸 원하는가. 현호가 그냥 걷게 된다면 배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삐뚤빼뚤 걷게 되고, 허리가 휘면서 장기를 누를 경우도 생긴다 했다. 그래서 불안정한 열 걸음보다는, 보조기구를 잡고 스무 걸음을 걷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 다음에 더 업그레이드된 치료법이 개발될 게 아닌가. 가급적이면 휠체어를 안태우려 한다.

현호는 목발 잡고 걷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된 게 너무 좋다고 했다. 학교에 혼자 가고 싶고, 가족들과 산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언젠가 갔던 인근 산의 이름을 계속 기억하는 것이었다.

좋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현호.
앞으로 거리에서는 물론, 산 정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현호를 반길 날이 어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p.s. 사실… 현호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는 아빠처럼 서서 ‘쉬’를 하는 것이었단다. 현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다. (마음 가득히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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