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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장애인들의 개인주치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함께걸음 의료생협 한의원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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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걸음 한의원 ⓒ채지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산하 함께걸음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이 지난 2월 22일, 오랜 기다림 끝에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조합원들의 십시일반 출자금과 성원을 모아, 독자적인 한의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진료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름도 아주 간단하고 친숙하다. ‘함께걸음 한의원’ -  <함께걸음> 독자라면 단 한번만 듣고도 평생 잊어버릴 리 없는 한의원 이름이 될 것 같다.

이 지면을 통해 진작 소개했어야 함이 마땅한 공간이기에, 늦은 감 있는 미안함을 애써 감추며 종종걸음으로 찾아갔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상계역을 나와 상계중앙시장 방면으로 걸어가니, 시장 입구 건물 2층 외벽에 깨끗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함께걸음 한의원’.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기존의 선입관을 깨버리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확 잡아들였다. 아이들을 위해 아주 예쁘게 꾸민 소아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테이블 몇 개 들여놓고 분위기 좋은 카페라 소개해도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정겨운 실내 전경이었다.

의료생협과 관련된 대담을 나누기 전에, 일단 한의원에 들어왔으니까 한의사 선생님을 만나 뵙는 게 순서인 것 같았다. 안내를 받으며 원장실 겸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느낌이 다시 한 번 찾아들었다. 아주 젊은 여자 선생님이 원장실 의자에 앉아 계셨기 때문이다.

한약재 냄새 가득한 옛 분위기를 떠올리다가 신세대 카페 같은 인테리어와 마주쳤듯이, 연로한(?) 한의사 선생님을 마주할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캐주얼한 복장이 더 잘 어울릴 듯한 젊은 원장님 박수현 선생님께 첫 질문을 드렸다. 미리 준비했던 질문이 아닌, 젊은 원장님을 뵙자마자 떠오른 궁금증이었다.

일반적인 다른 한의원에 계시거나 운영할 수 있으실 텐데, 의료생협 산하 함께걸음 한의원에 참여한 취지나 의미가 있으신가요?
박수현 원장(이하 원장) : 저는 예전부터 건강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주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죠.

그런데 그건 치료 중심의 일반 한의원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었는데, 의료생협을 알게 됐고 의료생협의 지향점과 미래를 이해하게 됐어요.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일들이 환자와 주민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건강을 지키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 한다는 점을 알게 된 뒤 반했죠.

‘반했다’는 표현이 무척 신선한데, 그 표현 그대로인가요?
원장 : 네, 실제로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가장 컸죠. 저는 반했으니까요. (웃음)

   
▲ ⓒ채지민
원장으로 실제 운영하시면서 어떤 면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되시나요?
원장 : 개원한 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여기에 와서 처음 느끼는 건 신뢰 관계가 깊다는 점이었어요. 일단 제가 원장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제가 주인이 아니고, 의료생협 조합원님들이 주인이시잖아요.

저로서도 진료할 때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하지 않게 됐다는 건 당연한 점이죠. 그런 걸 믿으며 환자분들이 오시는 거고, 가족주치의 개념을 실천하고 있기에 즐겁게 진료를 진행할 수가 있어서 좋아요.

주로 어떤 환자분들이 많으신가요?
원장 : 일단 한의원의 위치가 재래시장 입구에 있기에, 조합원 아닌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으세요. 의료생협으로 탄생한 의원이라고 해서, 조합원만 진료하는 ‘닫힌’ 공간은 아니니까요.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부인과(科) 관련된 여성분들도 많이 오시는 것 같고요. 여기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중심으로 시작된 의원이기에, 장애아를 가진 어머님들도 많이 찾고 계시는 편이에요.

조합원 중심의 한의원인데, 일반 한의원과 다른 장점 같은 게 있나요?
원장 : 물론이죠. 실제로 있었고 저도 정말 좋았던 부분인데, 함께걸음 한의원에는 병원운영위원회라는 조직이 있거든요. 거기에 국립재활원에서 장애예방팀 강사를 하시는 분을 위촉하며 모셨어요.

그 분이 개원하기 전 여기에 오셔서 세세한 모든 부분들을 점검해 주셨어요. 전동휠체어를 타고 활동하는 분이셨죠. 한의원 시설과 내부 전체를 장애인 눈높이로 일일이 확인해 주셨는데, 병실 침대가 높다는 점을 곧장 지적해 주시더라고요.

환자분들이 옮겨 다니기엔 불편함이 뒤따른다는 점이었죠. 그런 의견이 나오자마자 다른 조합원인 회원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톱으로 모든 침대의 다리를 자르고 장애인 눈높이에 맞는 설비로 맞춰주셨어요.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의료생협이기에, 각각의 조합원들 품앗이만으로도 모든 세세한 부분들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모양이었다. 진료 시설의 눈높이를 장애인의 눈높이에 정확히 맞춘다는 것, 그건 일반 병의원과는 다른 특징이 분명했다.

원장 : 다른 병원이나 한의원이라면 간호사들이 환자분을 일일이 안고 옮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혼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게 너무 좋다고 말씀하세요. 다른 병의원에 갈 때는 그런 게 미안해서라도 방문하는 게 주저됐다는 장애인 환자분들의 말씀이 정말로 실감나는 대목이기도 하죠. 그건 솔직히 저 자신도 확인하지 못했던 사항이니까요. 아주 작은 부분인데도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던 그런 시설 보완을 대화와 점검으로 해결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한)의대를 같이 졸업한 다른 동료나 일반 개업의(醫) 선후배들은 의료생협에 투신한 원장님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원장 : 대부분 많은 지지를 해주세요. 의료생협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기는 하죠. 하지만 평소 저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제가 이런 곳에 있다는 걸 ‘너라면 잘 해낼 것이다.’ 하며 응원을 보내 주시거든요.

제가 이 공간에 동참할 때 이미 다른 지역 의료생협의 역사와 과정을 모두 관찰했고 그 시행착오까지도 봐왔기에,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진짜로 많은 격려를 보내 주고 계세요. 저 역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에서 잉태되고 산고를 거쳐 출산한 함께걸음 의료생협이 그 첫 신생아를 ‘함께걸음 한의원’으로 이름 지었지만, 그 ‘잉태’와 ‘산고’와 ‘출산’의 과정은 결코 녹록한 나날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을 책임지며 앞장 서 활동했던 의료생협 사무국장님과 의견을 나눴다.

   
▲ 함께걸음 의료생협 사무실 전경 ⓒ채지민
실무를 담당하며 오랜 기간 직접 부딪치셨으니까, 의료생협 설립 과정에 가장 어려웠던 점을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봉심 사무국장(이하 국장) :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웃음) 우리가 연구소에서 노원 지역으로 옮겨 나올 때, 당장 거처할 공간마저 없었어요. 사무실을 구해서 나올 여건이 아니었거든요. 노원 지역의 시민단체 분들이 작지만 크나큰 도움을 주셨어요. 책상 두 개의 공간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의료생협의 틀을 다지기 위해 뛰어다녔죠.

하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는 갈등이나 시행착오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운영자금의 부족 문제가 항상 발목을 잡았죠. 조합원들이 계속 증가하고 새로운 도우미 활동가들이 충원되는 가운데, 조합원 여러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꼭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전해 주셨어요. 물론 저절로 얻어진 건 하나도 없을 만큼 가시밭길의 나날이었죠.

이제 독자적인 한의원을 개원했고 작지만 의료생협의 사무실 공간도 확보됐는데, 지금 현재 주력하는 사업 분야는 무엇인가요?
국장 : 의료생협은 단순한 협동조합이 아니라 공동체 개념이에요. 저는 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내 아이의 문제, 내 미래와 노후의 문제, 내 현재의 문제들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의료생협 안에서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조합원들끼리 아이들을 서로 돌봐 주는 품앗이 도우미를 지금 현재 실시하고 있어요. 서로의 집 공간을 제공하며 교육과 놀이를 지도하는 것이죠. 그런 예처럼 서로 비슷한 문제를 가진 조합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면서, 소모임 등을 만들며 도움과 지원의 공동체를 단계별로 실현해가고 있어요.

한의원 개원이 하나의 커다란 성과라면, 다음의 성과는 어떤 분야의 무슨 일이 될까요?
국장 : 한의원을 개원했으니까, 다음 작업은 양의원을 설립하는 것이에요. 공동체적 개념으로 믿고 찾을 수 있는 1차 진료기관 폭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죠. 그 다음엔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을 의료생협 안에 만들 겁니다.

생협 안에서 아이와 육아의 문제를 풀었듯이, 편안한 노후를 위한 문제도 이 안에서 풀어갈 거예요. 누구나 지역적인 고향은 이미 떠나왔지만, 이 의료생협의 울타리 안에서 조합원 모두의 고향을 새롭게 건설해 갈 겁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릴게요.
작성자채지민 객원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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