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일기>다섯 마리의 한우
고품질한우생산과 브렌드화가 살 길이라고 떠들고들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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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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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소' 자료사진.ⓒ부안21 | ||
다섯 마리의 소가 며칠 새 최소 이백만원 이상 하락했으니 재산 변동 폭이 굉장한 셈이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농사만으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어 몇 해 전부터 소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처음 거름이나 할까 싶어서 소 한 마리를 대출금으로 장만했는데 한우유기축산을 꿈꾸며 지금 송아지까지 다섯 마리가 되었습니다. 곧 소규모축사 신축에 들어갈 것이고 한우입식자금 대출도 확정돼 몇 마리 더 늘리면 새로 나올 새끼까지 합해져 여름에는 열 마리가 넘는 소를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출금을 과연 갚게 될지 의문입니다.
브루셀라 소독차 오신 아저씨 하시는 말씀이 몇 년 전 한우 열세마리를 7천5백만 원에 구입해서 지금 30마리 가까이 되는 데 있는 소를 다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장 비쌀 때 사서 지금 바닥을 향해 가고 있으니 참 난감할 지경인데 대출금 상환일이 닥쳤다면 자금력 없는 농가는 바로 부도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료 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더 막막한 상황이지요. 제가 처음 사료를 살 때 2006년 1월 한 포대에 6500원 정도 하던게 지금은 9500원을 넘어섰으니 축산 농가들의 어려움은 말 할 것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월반장만 되어도 한 턱 내는게 요즘 세상인데 대통령씩이나 되었으니 한턱 아니라 두턱을 낸다한들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문제는 인심은 대통령이 내고 주머니는 상관없는 나같은 사람이 비었으니 일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게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낙농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어쩌고 저쩌고....’ 나와 남편은 잠깐 뻥했습니다. 낙농가는 젖소에서 젖을 짜 원유를 공급하는 농가입니다. 소고기 수입과는 별 관계가 없는 농가까지 신경쓰는 우리 대통령의 넓은 오지랖으로 봐야 할 지 아님 한우와 낙농도 구별 못하고 기분에 한 턱 크게 쓰고 와서 위로랍시고 하는 것으로 봐야할 지.
사실 한우의 값은 몇 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미FTA협상 이후 하락했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로 수입이 몇 차례 중단되면서 농가들에게는 가능성 있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자체에서도 한우를 권장하며 여러 지원 사업을 하고 있었고 농가들도 그렇게 당해 보았으면서도 정부를 믿는 마음이 있어 이번에 한우 입식자금 신청에 진안군에서만 30명이 넘는 농가가 신청했고 소규모 축사 지원 사업에는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우리 집을 포함한 농사꾼들이 정말 순진하고 어리석습니다.
계획이야 물론 몇 년 고비 잘 넘기면 국민들이 우리 한우를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믿음으로 몇 년만 버티자는 것인데 당장 몇 달 후를 알지 못하고 이 지경이 났는데 몇 년후를 무슨 수로 믿을 수 있다는 말인지. 또 그 몇 년을 사료값, 축사 확장, 유기축산에 대한 투자와 연구, 대출금 상환까지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지금 이대로라면 의문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소를 다 팔면 처음 시작했던 두 마리 빚은 겨우 갚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과연 팔리기나 할지. 그동안 들어간 수고비는커녕 사료값은 꿈도 못 꿀 상황입니다. 게다가 농민으로서 우리의 장기적인 삶을 위한 다른 아이템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축산 농가가 종류와 규모에 상관없이 우리와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고품질한우생산과 브렌드화가 살 길이라고 떠들고들 있지만 그 두 가지는 상대적인 평가 틀이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농가는 대책이 없습니다. 보통 한우 3평당 1마리가 적정축사면적이라고 하는데 유기한우는 9평에 1마리가 인증기준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 가격은 30%정도 높게 형성된다고 하니 경제적으로는 안 맞는 계산이지요. 뿐만 아니라 유기사료와 유기조사료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 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5월이 되면 축사신축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미 자재도 조금 사 놓았고 백 만원이 넘게 들어 신고도 미리 마쳤기 때문입니다. 축사가 완성되면 덕분에 저렴해진 송아지도 몇 마리 살 것입니다. 몇 년 동안 저 놈들 보면서 우리 가족의 미래를 함께 보아왔습니다. 부디 몇 년을 잘 버틸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얼룩이 - 우리 집에 제일 처음와서 한우농가의 꿈을 심어준 놈.
칡소(얼룩소)라고도 하는 전통 한우의 피를 받은 잡종이지만 성격이 소탈하고 털털하고 과묵하다. 짚이나 사료를 먹을 때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바닥에 흘리는 게 더 많고 아무나 잘 따른다. 우리는 이놈이 출산의 고통으로 울 때까지 벙어리임을 의심하고 있었다.
우리 소림이는 이놈을 아빠라고 생각한다. 가장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큰언니 - 우리 집에 두 번째로 온 놈이다. 성격이 까칠하다고 해야 할지 깔끔하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매일 밥 주는 주인한테도 이마를 잘 내주지 않고 먹을 때도 정말 새색시같다. 꼭 음식을 조금씩 남겨놓고 사람한테는 정말 까칠하다. 지금 두 번째 임신 중이고 6월 출산예정이다.
3번소 - 얼룩이의 큰 딸이다. 얼굴생김새와 체형은 엄마를 많이 닮았는데 얼룩덜룩 털색은 전혀 닮지 않았다. 뭐든 잘 먹고 털털한 성격도 엄마를 닮은 것 같다. 호기심도 많아서 두 번이나 우리를 뛰쳐나와 애를 먹였다. 지금 첫 번째 임신 중이고 6월 출산예정이다.
4번소 - 큰언니의 첫 딸이다. 아직은 어려서 겁이 많다. 내가 한번 이마라도 다독여줄라치면 저만큼 도망가버린다. 여름이 되면 발정이 날 것 같다.
5번소 - 얼룩이의 둘째아들이다. 얼굴생김새는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는데 얼룩덜룩 털색만 엄마를 닮아서 보면 볼수록 송아지라기보다는 당나귀 같다는 느낌이다. 지금 6개월 정도 돼서 크기도 당나귀만하다. 청일점이어서 우리 집과의 인연이 짧을 듯싶다.
작성자이민영 기자 icomn@icom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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