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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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충청]
▲ 정민영 씨 ⓒ미디어 충청
가랑비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근육병 근육병을 앓고 있는 정민영씨는 장애인이다. 그가 앓고 있는 병은 희귀병으로 시간이 갈수록 근육의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처음엔 다리 근육이 약해져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혼자 서 있기도 앉아 있기도 힘들어진다.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근육이란 모든 근육의 힘이 약해지면 결국 각 장기가 마비되고 근육세포가 퇴화되어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씨는 “근육병은 고치기 힘들지만 지속적인 물리치료로 병의 진행정도를 늦출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희귀질환 등록제도가 생기면서 지원이 조금 나아졌지만, 간병비 30여만 원으로는 근육장애인들이 살아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경제 활동을 해야하는 장애인들의 경우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진행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난다. 특히 성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하던 근육병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몸으로 느끼게 되면, 이미 근육들은 만신창이가 된 후다.
정씨 역시 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근육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해 일을 하던 20대까지 병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20대를 넘기면서 서서히 근육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근육병은 유전이거나 돌연변이다. 우리 집은 모계유전으로 어머니가 나를 낳았고 나의 누이들의 아들 중에도 나와 같은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있다. 나의 조카나 나도 어렸을 적에는 근육병인지 몰랐다. 병원을 네 군데나 다녔지만 두 군데는 나를 그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허약한 정도라고 진단했다. 그만큼 이 병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치료할 병원을 찾으려면 서울로 가야만 한다. 더 큰 문제는 유전이다 보니 결혼 후 근육병장애아를 낳으면 잘 살다가도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나의 누이 역시 고비가 있었다.”
가족 중에 근육병을 앓는 장애인이 있으면 한 가정이 흔들리거나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씨는 “유전적인 결함은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만 근육장애가 한 개인의 불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함께걸음 자료사진>
혼자서 앉지도 다리를 들지도 못해, 체계적인 지원 필요해 근육병이 진행되면 기본생활에 필요한 도움이 절실해진다. 자립생활 3년차 정씨가 휠체어를 타고 문밖을 나서기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4시간 정도가 걸린다. 8시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가기 까지 2시간이 걸리고, 휠체어에 앉기 위해 1시간을 쓰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 데 또 1시간이 걸린다. 말이 좋아 4시간이지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실까지 가는 사이 정씨의 몸은 땀투성이가 된다.
“예전에는 운전도 했는데 근육 힘이 약해지니까 운전도 못한다. 그러니 가족 중 한 명은 반드시 24시간 같이 있어야 했고 나를 돌봐주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가족들에게 무얼 해주는 게 아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허리 힘이 없어서 누군가 앉혀 줘야만 앉을 수 있고 잠을 잘 때도 수시로 자세를 바꿔주어야만 다리 저림을 없앨 수 있다. 생각해봐라.
사람은 잠을 잘 때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며 잠을 자는데, 나 같은 근육병 환자들은 손을 드는 것도 다리를 1cm만 옮기는 것도 어려워서 밤마다 누군가가 자리를 바꿔주어야만 한다. 어떤 때는 다리가 너무 저려서 끙끙대면 가족들이 신경질을 내곤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한 밤중에 두 세 시간씩 일어나 자세를 바꿔준다는 것은 고역이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는 나를 시설에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장도 내 삶도 포기하고 시설에 짱 박히고 싶지는 않았다. 1년을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면서 내가 가진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고 싶었다. 또 기관이나 일부 시설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근육장애인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나의 자립에 대해 반신반의 할 때 나는 자립을 택했다. 힘들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살다가 가고 싶었다.”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정씨에 의하면 2007년 4월 손을 짚고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배정된 활동보조인서비스 시간은 0시간이었다. 때문에 정씨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립생활을 하면서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됐다.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어이없었다.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추라고 하니 말이 되나.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보니 대전시는 다른 예산은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중증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 예산들은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시가 중증장애인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시 뿐만이 아니라 국가에서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푼 두 푼 모아서 근육 장애인을 위한 단체를 만들고 복지회를 통해 어렵게 사업계획서가 채택되면 다시 또 예산을 따 내야만 근육병 질환과 질환자의 현황 등에 대해 조사할 수 있다. 만약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병도 잘 모르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했을 것이다.”
▲ <함께걸음 자료사진>
“나는 죽어야만 연금 받을 수 있어” 현재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자와 가족의 수는 2만 여명 이상이지만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지원은 전무한 상황이다. 정씨는 “근육병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나는 국민연금 가입자였다. 근육병이 진행된 후 연금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장애가 연금가입보다 먼저 생긴 거라서 지금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내가 죽거나 이민을 가거나 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보장하겠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평균수명이 비장애인들보다 짧은 것으로 볼 때 나는 죽어야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자립생활에 꼭 필요한 주택문제 역시 심각하다. 장애인이 살기에 편리한 생활물품이나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특수주택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소득 수준이 최저생계지 이하로 낮음에도 염구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다.
소득이 아예 없거나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야만 그나마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40만원을 지원받는 장애인이 힘들게 일자리를 찾아 20만원을 벌면 지원금은 20만원으로 준다. 때문에 장애인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민영씨는 “근육장애인이 환자가 아닌 장애인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며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지원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나 역시 집회나 운동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었지만 부당함을 겪으며 살다보니 우리가 이야기하고 싸워야만 겨우겨우 우리의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알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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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3일 4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공동투쟁단 출범식(가운데 정민영 씨) ⓒ미디어 충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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