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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악용하는 공소시효, 지적장애 특성 고려해야

[목소리 높여] 18년 동안 가한 학대, 공소시효 때문에 일부만 유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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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동안 지적장애인 부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계비를 횡령한 가해자에 대해 법원이 유죄판결을 했다.
당시 이 부부는 가해자 박 모 씨가 운영하는 양계장(1만2천여 마리 규모)에서 18년 동안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부부는 매일 15시간 이상 기십 포대 분량의 계분을 청소하고 6천개 이상의 달걀 관리를 하는 등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일했다.

가해자는 이 부부의 장애특성을 이용해 임금 착취는 물론 이들에게 비인간적인 의식주를 제공했으며, 기초생활보장수급비와 장애수당 등까지 횡령했다.

  undefined       ▲ ⓒ전진호 기자     지적장애인에게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생활은 ‘범죄’

지난 2006년 이러한 상황을 제보 받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부부의 인권확보를 위한 활동을 진행해 왔다. 우선 연구소는 가해자 박 모씨를 상대로 지난 2006년 7월 근로기준법 위반과 횡령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대구지방법원은 2007년 9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판결한 바 있다.

대구지법은 가해자 박 씨가 부부와 그 아들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에 대해 2001년 7월경부터 2006년 4월경까지의 금액 1천949만1천828원을 횡령했고, 2003년 12월경부터 2006년 7월경까지의 부부 임금 3천623만7960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유죄를 선고 했다.

이에 대해 가해자 박 씨가 항소를 했지만, 올해 1월 10일 항소가 기각돼 결국 박 씨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연구소는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지적장애가 있는 부부를 학대하고 착취해 온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사실 지역사회에서 이웃이나 친인척 등이 ‘보호’라는 미명 하에 지적장애를 악용해 잇속을 채우는 상황이 사회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피해자들은 몇 십년동안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인 학대 등을 당해왔지만, ‘장애인’에게는 가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치부됐던 것이다.
이는 분명 한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는 학대며,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범죄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지적장애인에게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생활이 ‘학대’며 ‘범죄’임을 알리는 사회적 경종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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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진호 기자  
 
지적장애 고려한 적극적 법해석 절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년 동안이나 지적장애인 부부의 인권을 유린했던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 한 것은 부부의 피해와 비교해 너무 미약한 판결이다.

부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생활보호대상자였으며 이후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였다. 하지만 생계비는 가해자가 임의로 사용했으며, 부부는 생계비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1년 이후의 생계비 횡령에 대해서만 유죄를 판결했다. 또한 부부가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던 18년의 세월 중에서 법원은 고작 3년간의 임금 체불만 유죄로 인정했다.

관련법 상의 공소시효 때문이라는데, 이는 지적장애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실제로 가해자 박 씨는 연구소가 고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생계비 횡령금의 공소시효가 적용되는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만 피해자 통장에 입금해 유죄를 피해가려는 뻔뻔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장애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용하는 현행법의 한계를 가해자들이 오히려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연구소는 2007년 11월 서영현 박호균 변호사(법률사무소 히포크라)의 지원으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 소송을 냈다.
가해자 박 씨를 상대로 18년 동안 지적장애가 있는 부부의 생계비와 임금을 빼앗고 학대했던 것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4억8천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공익 소송을 진행 중인 것이다.

가해자는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지만, 몇 십 년 동안 당한 인권유린의 피해는 판결과 동시에 끝난 것이 아니다. 현재 이 부부는 18년 세월동안 잠시도 서 있기 힘든 양계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호 장비 하나 없이 일을 했으며, 교대할 수 있는 다른 인력조차 없어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

그 후유증으로 현재 중증의 협심증, 뇌졸중, 치아 손상, 신경기능 이상 등의 각종 질환이 나타나 부부는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가해자 박 씨가 이 부부에게 했던 인권유린은 후유증까지 남아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 약자인 지적장애인이 당한 인권유린을 법으로도 구제받을 수 없다면, 장애 특성과 법의 한계를 악용해 부를 축적한 가해자들에게 결국 면죄부만 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작성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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