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에서 중증으로 운동 주체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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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탈시설화는 바로 자립생활내지 독립생활 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펼친 장애인 운동의 뚜렷한 성과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자립생활에 운동에 대해 언급하기 전 한 가지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자립생활 운동의 모델이 일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걸음은 15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 일본 장애인 운동가들과 교류를 계기로 일본에서 자립생활 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됐는지, 자립생활 운동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소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역시 좌담회를 개최했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장애인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계기로 주변에서 지지자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이 차별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지요.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을 줄이는데 힘을 합하려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의 경우 장애인에게 많은 액수의 연금이 주어지지만 소득이 높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서로 돕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회는 중증장애인들이 일하고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빼앗고 있지 않습니까?
자립생활운동은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공동사업장도 자립생활과 노동을 함께 지향하지요. 일본의 자립생활운동은 생활방식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강조합니다.”
“장애인이 서비스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은 진정한 자립생활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회에 참가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 참된 의미의 자립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립생활운동이 구체화 되면서 필연적으로 경증이 아닌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 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한국의 장애인 운동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2003년 쯤이었다. <함께걸음>은 ‘한국 장애인 운동, 그 진보의 역사를 말한다.’ 라는 기획을 통해 새로운 운동 양상을 집중 점검했다.
당시 <함께걸음>은 “현재 한국 장애인 운동은 또 한 번 새로운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장애인 운동은 더‘진보’된 운동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인권운동은 세계적인 추세며 당분간 장애운동의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다.”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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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걸음 자료사진> | ||
이들이 장애인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면서 장애인 운동은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80년대 장애인 운동은 대정부 투쟁으로 나타나며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에 힘을 쏟는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차별 및 인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장애인 운동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중증장애인 중심의 당사자주의 운동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운동은, 법·제도화 투쟁에서 생존과 밀접한 생활문제 해결로, 사회복지 관련 종사자나 전문가, 경증장애인 중심에서 중증장애인 당사자 주도로, 재활 패러다임에서 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중증장애인들이 있는데, 그 동안 경증 장애인들은 특수교육진흥법이나 장애인고용촉진법 등이 제·개정되면서 교육과 취업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었던 반면, 학교나 직장에 접근조차 불가능한 중증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의 짙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증장애인들에게 자기 선택권(혹은 결정권)을 바탕으로 중증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자립생활 이념은 중증장애인들이 사회로 진출하는데 중요한 이념적 발판이 되고 있다.”는 게 <함께걸음>의 진단이었다.
흥미로운 건 <함께걸음>이,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 운동을 집중 조명하면서, 중증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의 또 하나로 전동휠체어 보급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전동휠체어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 운동의 결정적인 수단이 됐다.”고 <함께걸음>은 쓰고 있다.
그리고 당시 함께걸음은 이 기획에서 장애인 운동의 지향점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사무국장 박옥순 씨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장애계는 이제, 추상적인 인권이라는 말을 당분간 접고, 대신 차별 금지를 사용해야 한다. 아니, 구체적인 차별을 드러내고, 이를 금지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인권을 말해야 한다. 과거, 인권을 화두로 한 여러 제도들이 진정한 의미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나아가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애 차별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그 이름 자체가 우리 사회에 장애인 차별 금지라는 명백한 선언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쭙잖게 인권 또는 권리라는 단어로 혼란을 야기하기보다는 차별금지로 분명한 인권의 지점을 각인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 <함께걸음 자료사진>
당사자주의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한 가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장애인 운동에서 중증장애인 중심의 장애인 운동이 본격화 되자 장애계에서 장애인 당사자주의 운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라는 논쟁이 불붙었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4년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말한다’는 기획을 통해 이 문제를 집중 점검했다. 먼저 함께걸음은 ‘당사자주의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서 “장애계에 당사자주의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당사자 입장에서, 당사자성에 근거해서…라는 말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주의가 장애인 당사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함께 일하는, 아니 그 입장을 같이 한다는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인지 등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다음 장애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장애를 치료와 재활의 개념으로만 인식하게 되면, 장애인은 서비스와 정책에 있어 대상자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내 몸이고 자신의 장애에 관한 한 가장 전문가지만 과거 개별적 모델로만 접근했을 때 장애인은 제공해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수혜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당당한 자기 삶의 주체자로서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가 해결한다는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지적과, “당사자주의란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로 나서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비장애인은 당사자가 될 수 없다.
사회적 개념에서 장애란 장애로 인한 억압과 차별의 정도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고 일상에서 체화된 공통된 경험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주장을 비롯해서, “당사자주의는 일차적으로 강조되고 관철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무기가 될 수는 없다. 장애대중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장애인임을 앞세워 부패한 소수 기득권자들이 또다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당사자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라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당사자주의 운동과 연계해서 <함께걸음>은 ‘장애운동과 노동운동, 연대할 수 없는가,’라는 제목 아래 사회복지노동조합과 장애인 운동의 관계를 따져 묻기도 했다.
<함께걸음>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동조합은 대체로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노조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출발 배경은 비민주적 운영구조와 비리문제, 인권침해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제기의 통로나 주체로써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라고 전제한 후 “권리가 상충되는 지점이 있을지라도 당사자주의를 내세우는 장애인 운동이 노동조합을 대립적인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지 같이 대안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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