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존재하는 한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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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아동 부모로 구성된 교육권연대의 삭발식 모습 <함께걸음 자료사진>
부문 운동에 대한 관심 놓치지 않아 <함께걸음>이 관심을 가진 부문 운동으로 장애인 부모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함께걸음>은 부모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 기획에서 쏟아진 말들은 다음과 같다.
“초창기 부모들은 조직 활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내 문제 중심으로 발언했고, 그게 해결되면 끝이었다. 주도했던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명망가 중심이었으며, 또 경증의 지체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때문에 중증이라 할 수 있는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은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소외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며 과거 부모조직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또 “이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 또한 부모운동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부모모임이 어머니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남편, 다른 형제들을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하겠다.
내 문제니까 내가 총대를 메고 우리 식구 중 나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가부장제도 속에서 여성, 어머니가 갖고 있는 인지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후 부모운동이 적극성을 띠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뚜렷한 목표점을 갖지 못한 채 전 생애에 걸친 포괄적 영역에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활동방식은 성공하기 어렵고, 부모의 결속과 교류, 아이의 교육권확보를 위한 사회적 활동, 정책 활동 등을 통해 중증장애아 부모들이 생각하는 희망은 무엇인가가 부모운동의 핵심이며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여성 운동도 <함께걸음>의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였다. <함께걸음>은 “장애인 역사에서 95년을 기점으로 확실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계 내의 여성운동 흐름이다.”며, 장애여성의 문제를,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노동능력이라는 말로 장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의 문제로 재해석하고. 이중적인 차별상황에 놓인 장애여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했다.
먼 과거지만 함께걸음은 1996년, ‘가정 내의 장애여성 차별실태’라는 보도를 통해, 설문에 응한 장애여성 전체 응답자의 67%가 가정 내 폭력을 경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69%에 이르렀고, 가사문제에 있어서 56.1%의 장애여성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도맡아 하는 반면, 10.6%의 장애여성은 아예 가사노동에 접근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또, 장애여성의 결혼 및 임신, 출산, 육아의 문제 등도 지적되었는데, 가족 내에서 이러한 차별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애여성의 경우 소득보장 즉, 경제적인 자립이 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장애 여성이 당면해 있는 열악한 현실을 짚은 다음, 장애 여성 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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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통합과 자기결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함께걸음 자료사진> | ||
<함께걸음>은 지적장애인 운동을 위해 “흔히 자립생활을 지체장애인에게만 국한시키는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지적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통합과 자기결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호체계와 전문인의 역할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전문교육자들과 지적장애인간의 권력구조의 개선을 통해 그들을 위한 보호사업이라는 개념은 지양되어야 하며 그들과 함께 라는 표현마저도 거부되어야 하고, 지적장애인들의 욕구와 희망만이 방향제시점이 되어야 한다.
지적장애인들의 선택의 가능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기회를 마련해 주며, 그들의 모든 요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맡겨주는 것이다.”고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을 실었다.
그런 다음 몇 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지적장애인 운동 단체인 피플 퍼스트(People First)를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피플 퍼스트가 요구하는, 지적장애인들,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줄 것, 그들이 스스로를 대변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을 옳다고 믿어줄 것 등이 <함께걸음>이 동의하는 지적장애인 운동의 원칙이었다.
차별이 존재하는 한 싸울 수밖에 없다
짧은 지면에서 20년 이어져 온 장애인 운동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음을 고백한다. 차제에 본격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20년 전과 비교해서 장애인 운동이 확실히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장애인 운동이 서 있는 지점은 어딜까.
“지금은 장애인 당사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통한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도 나의 싸움을 대리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내 문제를 가지고 내가 직접 싸우기 때문에 비타협적이고 직접적인 운동이 되는 거다.”
“90년대 초반에는 사회적 여건상 싸움을 하러 나올 수 있는 경증장애인들이 장애인 전체의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당시의 의제들은 장애인 전체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일정정도 타협이 가능하고 빗겨 서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이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운동 여건이 조성되었고 이에 따라 당시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그들이 당면한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다.
지금은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당사자가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타협의 지점은 없다. 비록 몇 백 명에 지나지 않지만 중증장애인들이 의제를 선점해서 이끌어가고 있고, 의제의 내용자체가 비타협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는 중앙집중식의 정책이 이루어졌으니 중앙에서 힘을 모아 싸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지방분권화 시대를 맞아 모든 것이 지방으로 이양되고 있다. 이젠 장애인들이 지방에 요구할 것들이 생긴 것이다.”
이밖에도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특수교육법」 제정 등으로 또 한 번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기도 하다.
▲ <함께걸음 자료사진>
장애인 운동, 그 너머에 뭐가 있을까작년 4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개최한 장애인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토론에서 사회자는 서두에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을 끊임없는 속도와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단 시간 내에 더 많은 부가가치, 자본을 생산하는 자가 사회가 일컫는 소위 능력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어떠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이 질문은 장애인 운동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명박 정부라는, 분배나 복지보다는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정부가 탄생하면서 장애인 운동에 더 아픈 질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차별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은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싸움이 됐든, 무엇이 됐든 <함께걸음>은 그 싸움을 운동이라고 부르고, <함께걸음>이 존재하는 한 그 운동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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